앞집 아이들과 아저씨, 그리고 나

by 속초순보기


우리 동네는 이상할 정도로 담도 마당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다.앞집, 옆집, 뒷집, 모두 담이 없고 마당도 없다.우리 집 또한 예외는 아니다.대문은커녕 마당조차 없이, 현관문을 열면 바로 골목이 얼굴을 들이민다.


그런데 앞집만은 조금 다르다.그 집은 희한하게도 담과 마당이 있다.그러나 대문은 없다. 그러니까,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그 집 안마당까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처음엔 그런 구조가 낯설었다. 담이 있으면서 대문이 없다니. 경계는 만들어두고 출입은 열어놓은 셈 아닌가.왜 그렇게 해놨을까, 이유를 곱씹어 보곤 했지만,결국 나는 생각을 접었다. 사실, 대문이 있었더라도 그 집의 대문은 몇 날 멀쩡히 버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집에는 아이가 무려 여덟이었다.거기에 어른 둘까지 더하면 열 명이 오고 가는 집이다.열 사람이 하루에 두 번만 드나들어도 대문은 매일 열리고 닫히기를 스무 번씩은 해야 한다. 그런 대문이 오래 버틸 리 없다. 그러니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미리 그걸 안 것처럼, 그 집은 처음부터 대문 없이 열려 있었다.


앞집 아이들은 이상할 만큼 서로 닮았다.남자애들은 머리를 바짝 밀어 까까머리였고,

여자애들은 상고머리에 짧은 앞머리로 눈만 덩그러니 돋 보였다.아이들이지만 눈동자가 유난히 동그랗고 크고, 어쩐지 겁을 주는 눈이었다. 살가운 눈이 아니라, 말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묘한 눈빛. 그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볼 때면 나는 어쩐지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 눈빛은 어디서 왔을까.그건 분명히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아저씨의 눈, 그 영롱하지만 섬뜩했던 눈빛과 꼭 닮아 있다.아이들은 그의 아버지와 똑같이 닮은 눈으로 담너머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여덟명이나 되는 아이가 비슷한 얼굴을 하고 동시에 우르르 마당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마치 어디선가 복제된 사람들이 달려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첫째와 둘째, 막내와 그 바로 위 아이,그 정도만 키의 차이로 어렴풋이 구분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해서 누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앞집 아주머니도 가끔 그런 말을 했다.“얘네들 말이야, 혹시 한꺼번에 둘씩 낳은 거 아닐까? 이상하게 닮았어.”“동전을 찍어내도 한두 개는 다르게 나오는데,어찌 이렇게도 똑같을까…” 아이들 어머니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 나는 뭐 크기가 다른 똑같은 인형처럼 느껴졌다.나는 그 집을 이렇게 기억하게 되었다.‘아이들이 많고, 모두 무섭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집도 담이 없는 집이다. 세상과 나눌 경계도, 바깥을 막을 울타리도 없고, 마당도 없다. 앞집은 다르다. 앞 집은 정면을 담으로 막아 세웠고, 측면이 골목이고 대문이 나 있다.그러니까 골목 하나를 두고 앞집 측면이 우리 집 정면을 향해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집의 대문이 우리 집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나는 그 앞, 우리 집 대문 앞 자그마한 공터에 늘 메여 있는 강아지다.줄에 매인 채,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누가 우리 집에 다가오는지, 또 누가 앞집에서 나오는지, 이 두 방향의 흐름을 눈으로 좇는다.가끔은 문득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우리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앞집을 지키려고 하는것인지.위치로 보면 앞집을 지키는 듯도 하고, 의무로 보면 우리 집을 지키는 셈이기도 하다.


이 묘한 경계의 지점에서 나는 오늘도 묶인 채, 앞집의 동태를 살핀다.


앞집 아이들의 소란한 움직임은 내 하루의 절반을 채운다. 그 집 마당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물을 엎어 버린 아이, 뛰다가 이마를 까는 아이, 그런 아이를 위해 된장(깨진 이마에 장을 바르던 시절) 을 뜨러 갔다가 장독대를 깨뜨리고 꾸지람을 듣는 아이, 밥 먹으라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는 곳.


앞집의 소소한 일상이 모두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나는 꼬리로 웃으며 그 광경을 구경한다.앞집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무료한 일상 속에서 하늘만 올려다보다 목이 굳어버렸을 것이다.매일이 같고, 변화라곤 그림자의 방향밖에 없는 세상에서 앞집은 나에게 하나의 연극 무대다.나는 무대 앞 고정석에 앉아 있는 관객처럼 단 하루도 지루할 틈 없이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음악이 들려온다. 눈을 뜨기도 전 깨우는 그 소리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고, 그 음량은 땅을 울릴 만큼 크다.음악은 대체로 쿵짝거렸고, 그 소리는 담을 넘고, 골목을 휘돌고, 마침내 동네 전체가 전쟁터처럼 쿵쾅거렸다.

그 시작은 어느 날이었다.트럭 한 대가 앞집 대문앞에 멈춰 섰고, 남자 어른 몇명이 커다란 박스를 대문 앞에 내려놓았다. 그 뒤로 들락거림이 반복되었고, 박스는 어느새 집 안으로 옮겨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쿵작 거리는 음악이 담 너머로 튀어나오듯 퍼졌다.


나는 처음엔 그것이 뭔지 몰랐다.음악이란 클래식이나, 행진곡처럼 격식 있고 무게감 있는 소리뿐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그날 처음 들려온 그 음악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돌아가는 삼각지~ 흑산도 아가씨~’한 번 들으니 귀에 착 감기고, 두 번 들었을 때 입이 따라가고, 세 번 들었을 때 어느새 몸까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전축을 자랑하는 것에 나는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우리 집엔 없는 것.그 집에는 있는 것.여덟 명이나 되는 아이가 드글거리는 집인데도 전축이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부러웠다. 전축이 있는 집이라면, 맛있는 음식도 많을 것 같고, 그 집과 함께 살면 입이 심심할 틈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집 아이들의 행색을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을 접었다.앞집 아이들은 언제나 단벌이었다. 헐렁한 티셔츠에 무릎 나간 바지, 기운 곳이 손가락보다 많았고, 운동화를 신은 적이 없고 늘 까만 고무신이었다. 머리는 바짝 밀려 있었고, 눈은 항상 크고 동그랗게 떠 있었다.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아이들과 비교해 봐도 늘 한 겹쯤 없어 보였다.그런데도 그 집엔 전축이 있다.



앞집 아이들은 저마다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어떤 아이는 내 앞에 조용히 앉아 말을 걸었다. "배고프지?”“너도 덥지?”가끔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줄기를 따라 손을 슬쩍 내리기도 했다. 작은손길은 따뜻했다. 나는 꼬리를 한두 번 흔들어 인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몇몇 아이들은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휙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무줄놀이며 술래잡기에 정신이 팔렸다.아예 나를 투명한 존재처럼 여기는 아이도 있었고, 심지어는 내게 “앞집 똥개”라며 소리치는 아이도 있었다.그 말을 들으면 꼬리는 축 늘어지고, 마음 한구석이 얼얼해졌다.

‘네 꼬락서니는 어떻고?’한마디 쏘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말을 전달할 수도 없어 그저 흙바닥을 몇 번 긁고 만다.



그런 와중에도 유독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막내였다.걸음마를 겨우 뗀 아이는, 뒤뚱뒤뚱 몸을 이끌고 내게로 다가온다. 얼굴엔 밥풀이 말라붙어 있고, 손에는 무엇을 만졌는지 알 수 없는 먼지와 풀잎이 묻어 있다.그 아이는 내 등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꼬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때론 눈이 마주치면 작은 손을 내 얼굴에 대며 웃었다.어떤 날은내 밥그릇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망설임 없이 손을 넣어 밥 한 조각을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그 광경을 대문 안에서 지켜보던 둘째 언니가

다급히 달려 나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거기 손 넣지 말랬잖아! 퉤퉤 해 빨리 !!” 내뱉는 말에 나는 움츠러든다.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먹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왠지 나쁜 짓을 한 것을 방관한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앞집의 절대 권력자는 단연 아저씨다. 그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었다.아이들이 마당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고,골목으로까지 번져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는 날도 많았다. 골목은 이웃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바람도, 빛도, 웃음도 그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골목 어귀에 모습을 비추는 순간, 세상은 한 번에 정지한다.그 많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적막뿐이다.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도통 알 수가 없다. 마치 마당에 작은 문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휙 하고 사라지고는, 어디에서도 기척이 없다.


잠시 후,보자기에 싸인 도시락을 들고 아저씨가 나타난다.성큼성큼 대문을 들어서는 걸음엔 개선장군의 권위가 물씬 풍긴다. 하기야 팔 남매의 아버지로 집안의 가장으로 당연한 권위일수 있다.


집으로 들어가서는 어김없이 전축을 튼다.처음엔 그 노래도 참 신선했다. '돌아가는 삼각지', '영시의 이별 '.... 하루 이틀쯤은 귀에 꽂히고 따라 흥얼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자, 이젠 음악이 아니라 소음, 아니, 소음조차 넘어선 지진처럼 울렸다.골목바닥부터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은 내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든다.그 반동에 맞추어 아이들은 점점 더 숨어 버리는 듯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숨을 공간이 있나?어쩌면, 아이들에겐 아저씨의 무서운 눈빛과 권위만으로도 문이 닫히는 곳이 있는 건 아닐까.



아저씨의 눈빛은, 마치 날이 선 유리조각에 햇빛이 비친 것처럼 투명하지만 날카롭고, 서늘하다. 쳐다보고 있자면 기묘하게 얼어붙게 만든다. 그리고 위압감마저 장착하고 있다.


아저씨는 매일 술을 마셨다. 어떤 날은 반주 정도였고, 어떤 날은 고주망태였다. 말이 뒤엉켜 입에서 나오는지 코에서 나오는지 모를 상태가 되어 비틀비틀, 게걸음처럼 옆으로만 간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아침이면 아저씨의 눈빛은 언제나 다름없다. 전날의 술기는 흔적조차 없고, 눈빛은 조금도 탁해지지도 않았고, 그 서늘한 눈매도 그대로였다.우리 집 주인아저씨만 해도 술을 마시고 나면 이삼일은 눈이 풀려 있는데 말이다.


매번 말짱 한 눈으로 돌아오는 나는 아저씨와 눈을 가능한 한 눈을 마추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아저씨가 대문을 열고 나오면 고개를 홱 돌리거나, 텃밭에 날아든 참새를 쫓기도 하고, 햇빛 속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를 응시하기도 한다. 아무리 내가 딴청을 피워도 아저씨의 서늘한 눈빛은 여전히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늘 딴청만 부리며 눈길을 피해왔던 무심함을 눈치챈 것일까. 아저씨가 조용히 내 앞에 다가와 앉았다.말 한마디 없이, 그 특유의 서늘하고 무서운 눈으로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겁이 덜컥 났다. 무언가 해코지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괜한 불안한 마음이 파고들었다.뒷걸음질 쳤다. 꼬리는 본능적으로 말려 들어갔고,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았다.낑낑거리며 아저씨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짧은 줄에 매인 강아지일 뿐이었다. 달아나려 해도, 벗어나려 해도 한계는 너무 명확했다.주변을 둘러보아도 도움을 청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여름의 골목, 그 땡볕 아래에서 땅 위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 묘하게 현실감 없는 배경음처럼 들려왔다.그 순간,아저씨가 내 눈을 뚫어지게 보며 입을 열었다.“이 강아지, 복날에 푹 삶아 먹으면 좋겠다.”말끝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거기에 뜨거운 물까지 연상되니 온몸이 마치 끓는 가마솥 안에 들어앉은 듯했다.


‘그러면 그렇지…역시 저 아저씨 눈엔 살기가 서려 있어…’


두려움은 꼬리를 붙잡고 흔들었고, 눈물 섞인 눈빛으로 간절히 우리 주인님이 어디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다시 물었다.


“우리 매일 보면서, 넌 왜 나 아는 척 안 해?”복날 이야기에 잔뜩 기가 죽어 있던 나는 그 말에 되려 얼이 빠졌다.‘이건 또 무슨 소리람…’아저씨는 눈을 찡긋이며 말했다.“우리, 앞으로 눈인사라도 할까?”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날에 삶겠다는 말을 하던 그 입에서 갑자기 눈인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한참을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아저씨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일 우리 집 지켜줘서… 고맙다.”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내 기를 죽이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 말 한마디에, 아저씨의 눈빛이 어딘지 다정하게 느껴졌다.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아주 작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게 우린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 난 우리 집보다 그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되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첫여행지가 서울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