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초보 해외여행자라면

by 속초순보기

속초에서 인천공항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자동차로는 3시간 50분 정도가 걸린다.

거리가 꽤 되다 보니 해외로 떠날 때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출발하거나, 아예 전날 미리 공항 근처에 도착해 숙소를 잡는 경우가 많다.이런 사정으로 오후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약하고, 여유롭게 속초에서 출발했다.


처음으로 떠나는 일본 도쿄 자유여행. 오후 4시 30분. 나리타행 비행기를 타기 까지 나는 수첩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수첩에는 공항에서 호텔가는 방법, 일본 교통패스, 비짓재팬 웹사이트 사용법까지 꼼꼼하게 적어 두었고 언어는 대화정도는 가능하기에 안심은 되었다.


공항에서 설렘가득한 여행자의 표졍을 보고 있자니 , 나는 과연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 올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분초를 다투며 이륙하는 비행기 만큼이나 자주 올라왔다. 게다가 혼자라는 사실은 더욱 더 불안감을 가중 시켰다.혹여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호텔 근처만 둘러보고 돌아오자…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나리타 공항은 혼잡했다. 입국신고는 웹으로 미리 해두었지만, 기계 앞에 서니 내가 정말 잘 입력했는지 불안이 밀려왔다. 다른 이들은 종이 서류로도 수월히 통과하고 있었기에, ‘굳이 웹으로 했어야 했나…’라는 아쉬움이 들면서 기계앞에서 쫄아 드는 기분은 어쩔수 없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동판매기 앞에서 탑승권을 교환하거나 구매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자동판매기에 한국어 안내가 있다’는 정보를 믿고 차분히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20여 분을 기다린 끝이라 기대 반, 안도 반이었다. 그런데 막상 화면을 켜보니… 어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국어’라는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한국어로도 안내된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지?


당황한 마음에 되돌리기 버튼을 몇 번이나 눌러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자꾸만 손에 땀이 났고,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화면 앞에서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어떡하지… 이러다 기차도 못타는 것은 아닐까?’

‘숙소까지 못 가게 되면 어쩌지?’머릿속은 금세 복잡해졌고, 처음 겪는 낯선 상황 앞에서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언어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절박하게 느껴질 줄이야…


국내여행을 할때 여행지 도착하면 가정 먼저 하는 일이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지역정보를 먼저 챙기던 습관이 떠올랐다. 그래, 지금처럼 당황할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우선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자. 다행히도 지하철 탑승권 자동판매기 근처에 JR 인포메이션 센터가 보였다.


안도의 숨이 쉬어지며 ‘그래, 거기 가서 물어보면 분명 해결될 거야.’ 물론 문의를 하고 돌아오면 다시 줄을 서야 할 테고, 다시 처음부터 과정을 반복해야 했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이대로 계속 기계 앞에서 헤매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결심한 나는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인포메이션 센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아뿔사!‘설마... 벌써 문을 닫았다고?’확인하려고 몇 번이고 문 근처를 들여다보았지만, 셔터는 냉정하게 내려와 있었다.

그럼 이제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밑이 꺼지는 듯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낯선 곳에 도착해 익숙해지기까지, 외국에서는 적어도 하루는 걸린다는 게 나의 경험이다. 그런 나에게 지금 이 공항은 단순한 출국장이 아니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혹시 이대로 길을 찾지 못하고 공항에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올라왔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탑승권 구매에 도전했다. 이번엔 옆 기기에서 표를 구매하던 일본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다행히 그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티켓을 발권할 수 있었다. 마치 어두운 터널 끝에 빛이 비치듯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특급열차 탑승장으로 향했다.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고 나니 그제서야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제대로 티켓을 산 게 맞을까?"

외국인은 할인받을 수 있다고 메모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산 건 단지 왕복 티켓이 저렴하다는 말에 혹해 선택한 일반권이었다.


수첩엔 분명 외국인 전용 할인 티켓 정보가 있었는데… 정신없이 헤매다 보니 결국,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만 것이다.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주쿠역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 수첩에 빼곡히 적어둔 길 안내를 다시 펼쳐 들고,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신주쿠역은 출구만 200개 가량이 되고 , 이용자가 워낙 많아 기네스북에 등재 되어, 자칫 잘못하면 출구를 찾는 데만도 한시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곳이다.다행히 이번엔 수첩에 적힌 대로 출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나리타공항에서 출발해 2시간 만에 신주쿠에 도착했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동쪽 출구로 나와 지상으로 올라선 순간, 나는 말 그대로 넋을 잃었다. 대형 건물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불빛,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분주한 사람들의 목소리… 세상이 온통 빛과 소리로 뒤덮인 듯했다. 구글지도를 켜고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지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와 골목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쉽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취객들의 고함소리와 음악소리는 혼을 다 빼놓았고,위축되게 만들었다.신주쿠의 골목길 중엔 여행자가 조심해야 할 구역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중 한곳을 지나고 있었다.

어서 빨리 숙소에 도착하자는 생각에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 이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도, 곧 마무리되겠지.이번 여행엔 짐도 최소화했다. 3박 4일 일정에 작은 배낭 하나만을 등에 멨다.

그런데 그 순간 !!

누군가의 손이 내 목덜미 아래로 쑥 들어와 가방을 움켜쥐었다.가방을 낚아채려는 듯한 강한 힘에 몸이 뒤로 휘청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손을 힘껏 뿌리쳤지만, 그 손은 여전히 가방끈을 움켜쥐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내 쪽으로 달려드는 그 사람을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달렸다. 다행히도 그는 비틀거리고 있었고, 곧 그가 취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도 나처럼 외국인이라는 점이었다.뒤에서 휘청거리며 따라오던 그를 따돌리려,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나갔고 무조건 택시 한 대를 세웠다. 더는 도보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처음으로 홀로 떠난 자유여행,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고난이 따랐다.여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핑크빛 이야기로 가득했는데, 나의 여정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첫날부터 실수와 고생이 이어졌다.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나는 비싼 기차표를 사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신주쿠에 도착했으며, 도착하자마자 예기치 못한 취객의 가방 날치기 시도까지 겪었다.호텔방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온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에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나와 같이 여행경험이 없거나 초보 여행자에게는 오전 도착이 절실히 중요하다는 것을.낯선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쏟아지며, 언어의 장벽과 길을 헤매는 당황스러움이 뒤따른다. 이러한 어려움에 맞서기 위해서는 충분한 낮 시간이 필수적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뿐만 아니라 , 밝은 빛 아래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여유가 생긴다. 길을 잃어도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길을 찾을 가능성이 높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진다.


반면, 어둠이 내려앉은 낯선 도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문을 닫아 버린 인포메이션 센터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남겨진 여행자는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그 불안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준비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비싼 티켓을 사고, 낯선 길을 헤매며 예상치 못한 위협을 겪었던 첫날 밤은 화려한 기대 대신에 고립감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초보 여행자에게 오전은 단순한 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낯선 세계와 마주할 용기를 주고,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대처할 지혜를 선사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여유로운 오전의 햇살 아래 차근차근 낯섦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통해 본 '우아한 카페에서의 여유'나 '낯선 도시에서의 설렘'은 초보자의 경험과는 다를수 있다.정보가 빼곡한 수첩이 무용지물이 되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잘 찾아가던 길 찾기가 두려운운 벽처럼 다가 올수 있다.


공항에서 수첩을 손에 쥔 채 떨던 순간, 셔터가 내려진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그리고 낯선 손아귀에 잡힌 가방까지.초보 여행자라면 특히 60대 초보 여행자라면 무조건 오전에 도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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