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무렵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당시는 시골 마을이었고, 병원이란 건 먼 도시의 이야기였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그렇게 다리는 걷지 못하는 것으로 굳어져 갔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는 규모가 있는 곳이었고, 마침 부속병원이 있었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선택은 단순한 생계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그 일을 택하신 게 아닐까.
그 무렵 병원에 입원했고, 일 년이 지나서야 내려진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아버지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몸에 깁스를 한 뻣뻣한 나를 없고 병원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다시 걷게 되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운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두발로 세상을 디딜 수 있는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후로도 왼 다리는 늘 약했고, 대신 오른 다리의 발가락에는 늘 피멍이 들어 있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운동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배구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늘 눈으로만 지켜봐야 했다.못 한다는 걸 알면서도 더 간절했던 건 아마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었으리라.
세월은 흘렀고, 나는 어느덧 예순이라는 나이를 넘겼다.요즘 속초 해변에는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형형색색의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모습은 늘 부럽고 또 멋져 보였다.해보고 싶다는 생각,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에서 커졌다.
‘지금 아니면 평생 못 해볼지도 몰라.’그 생각 하나로, 결국 나는 도전했다.
보드 위에 일어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약한 왼 다리는 여전히 힘을 받을 수 없었고, 일어서 기 위한 균형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강사님의 애쓴 노력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나는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 보드 위에 엎드려 파도를 향해 나아갔고,
때로는 올라앉아 푸른 물결을 마주했다.함께한 젊은 친구들은 내 도전을 응원해 주었고, 그들과 함께 웃고, 서툴고 어설픈 몸짓에도 잘했다면 말해주는 그 따듯함에 도전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도전을 보고 쓸데없는 일이라거나, 균형조차 잡지 못하면서 하필이면 균형이 전부인 서핑에 도전하다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언제나 ‘해낸 것’보다 ‘해보려 한 것’에서 시작된다는걸.
시작은 불완전하고, 도전은 언제나 어설프다.하지만 어설픔 속에서 우리는 삶을 배운다.나의 다리는 아직도 약하다. 앞으로도 운동을 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얻었다.넘어져도 부끄럽지 않고, 못한다고 숨을 이유도 없다.
이제 나는 남은 인생,안 해본 것들을 하나하나 해보려 한다.젊을 때 놓쳤던 것,두려움에 미뤘던 것,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까지 이제는 내 앞에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쌓인다.
그게 작고 사소한 일이든,다시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든,내가 한 번이라도 마음을 품었던 일이라면 이제는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도전은 결과를 묻지 않는다. 얼마큼 해보려고 했는지 묻는다. 그 물음에 답하며 다음 도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