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6개월 만에 만났다.아이에겐 아빠의 면회가 첫번째 외출이었다.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고도 하고 싶었는데 , 다시 먼길을 돌아 집으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움이 컸다.
면회를 다녀오면서 어머니와 아무말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다. 어머니도 아쉬워 하는 눈치셨다.
남편을 만나러 갔다 오는 길이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이 안되었다.
남편이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잡고, 그다음에 결혼을 해도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하다고 부모님 맘 아프게 하면서 이렇게 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엄마가 샘통이라고 하는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2월의 해는 짧았다. 2월은 3월부터 시작하는 농사 준비를 하는 달이었다.
따뜻한 아랫목에는 싹을 틔우기 위한 고추씨가 차지했다. 고추는 방에서 발아를 시킨 후, 모판에 심고, 그다음 하우스로 옮겨 심는다. 어느 정도 고추의 키가 자라면 밭으로 나갔다. 총 4회의 과정을 거쳐 밭에 심어진다.
매화나무에 꽃봉오리가 피고 있었다. 선명한 꽃봉오리들이 하루가 무섭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햇살을 받은 매화의 꽃봉오리는 더 선명하고, 이와 함께 봄 햇살을 받은 아기의 볼 색깔도 붉어졌다.
한방 중에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마당에 나가 하늘을 쳐다봤다. 달빛은 마당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직은 차거운 밤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내가 쳐다보는 달을 남편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중천에 떠있는 달이 더 가깝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와 아이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고, 남편이 없어도 시간은 흘러갔다. 3월이 되자 점점 농사일로 바빠져, 부모님은 밭으로 나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나는 아이와 둘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당 앞 비닐하우스에서는 새싹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이에 질세라 아이도 쑥쑥 컸다.
아침부터 아이가 잘 먹지도 않고, 칭얼거렸다. 손을 짚어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아침을 드시자마자 밭으로 나가고 아이와 나는 늘 하던 대로 방에 있었다. 아이는 점점 더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이의 몸은 점점열이 심해졌다. 털컥 걱정이 되었다. 집안에 아이를 위한 비상약은 없었다.
아이를 업고 달래면서 밭에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다. 나에겐 육아에 대한 최고의 상담사는 어머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어머님은 아이의 상태를 살피더니 윗방으로 들어가 네모 상자를 들고 나오셨다. 네모 상자에 있는 어른용 진통제를 꺼내 주시면서, 반알만 물에 타서 아이에게 먹이라고 했다. 어른용 진통제를 먹여도 괜찮을까 생각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먹였지만 불안했다.
약을 먹고 나서 2시간이 지나도 아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어머님은 아이들은 다 아프면서 큰다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죽겠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이 서운하게 들렸다.약을 먹여 놓고 어머님은 다시 밭으로 나가셨다. 어머님이 마당을 나서 안 보이게 되자, 나는 아이를 들쳐 없고 집을 나섰다. 아이를 데리고 읍내 병원으로 갈 참이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계속 열이 나는지 몸 전체가 점점 뜨거워졌다. 읍내 병원으로 가려면 2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별수없다는 심정으로 뛰다시피 고개를 넘어 큰 도로까지 걸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야 하는데, 20분 이상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걸어서라도 읍내를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점점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아이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열이 심하면 머리에 이상이 온다는데... 나쁜 생각들로 머리가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꺼림직한 기억을 뿌리치듯 나는 빨리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하여 무조건 뛰어 들어가 의사선생님에게 보였다. 의사선생님은 입고 있던 아이의 옷을 모두 벗기더니 열이 나는 아이를 이렇게 싸매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나무랐다. 육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이는 어떻게 낳느냐는 뼈 때리는 소리와 함께. 진찰을 받고 주사를 맞히니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이젠 다시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해는 져서 점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슨 걷지 못해 귀신이라도 씌인양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고개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날은 어둑어둑 해졌다. 뒤에서 자꾸만 나를 붙잡는 것 같아 오싹해졌다. 무서웠다.
등에 있던 아이가 열이 떨어지면서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고개를 넘어 인가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어머님이 마중을 나와 계셨다. 집에 도착하여 발을 보니 상처투성이였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이 돌멩이에 상처를 입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까닭모를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쏟아졌다. 엉엉 울었다. 지 눈 지가 찔러서 고생한다는 엄마의 말씀도 생각났다. 군대에 있는 남편의 얼굴도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겠지 하는 생각도 났다. 엄마가 되어 봐야 엄마를 이해한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었다. 다행히 밤은 칠흑같이 어두워 나의 눈물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아기와 넘었던 고개를 함께 걸으며 추억으로 채워 나가기로 다짐했다.
뒷뜰에서 달래와 냉이를 캐어다 무치고, 담주변을 따라 심어져 있는 두릎을 따다 데치고,어린 키다리순을 나물로 만들고,돌나물를 따다 물김치 담그고, 봄은 둘러만 보아도 자연반찬들을 선사해 주었다. 나는 그저 고추장과 밥만 챙겨 상에 올리면 근사한 진수성찬이 되었다. 밥상은 봄나물 대신 하우스에서 파종하여 밭으로 이식한 각종 야채들이 밥상에 오르기 시작하는 여름을 향하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매일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날 그날 일어나는 모든일들을 써서 부대로 보냈다. 미쳐 편지지를 살수 없을때는 잡지책의 글자위에 동그라미를 쳐서 수수께끼 같은 편지도 썼고, 달력의 뒷면에 쓰기도 하고, 흰 여백이 있는 모든 종이는 나의 편지지였고, 그곳에는 그날의 일상과 아이의 성장과정을 빼곡히 적은 텍스트들이 있었다.
아이는 이제 혼자 앉자 놀기 시작했다. 아이가 혼자 앉기 시작하니 집안일 하기도 수월해졌다. 일을 할때는 옆에 앉혀 놓고 하는일에 대해서 시시콜콜 아이에게 들려 주었다. 물론 아빠에게서 온편지도 읽어 주었다.
아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알수 없는 말들은 계속 쏟아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부모님에게 아이의 말을 전달하는 통역사 역할도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밥을 짓다가 밖을 쳐다보니 신랑이 부엌을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놀래서 물바가지를 뒤업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