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말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남편을 보고, 나는 너무 흥분해서 그가 내 남편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제일 먼저 외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 아범이 왔어요!"
집 뒤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님은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아버님도 그 뒤를 이어 뛰어오셨다. 부모님께서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오게 되었느냐? 휴가를 받았느냐? 군 생활은 힘들지 않느냐?" 남편은 부모님 차지가 되어 있었다.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빨리 대화를 끝내고 부엌으로 들어와주길 바라면서 귀는 마당을 향하여 열어 두었다. 럴 때는 아이가 울던지, 옹알이를 해서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보행기에서 바나나킥 과자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엄마의 사정 따윈 아무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남편은 원주로 출장을 오면서 하루 외박 허가를 받아서 왔다고 했다. 내일 저녁까지는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서운함이 밀려 왔다. 그래도 그 순간 만큼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 하기로 했다.
밥상을 가운데 두고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아이의 동그란 눈은 낯선 사람인 아빠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남편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이 광경을 외양간의 어미소와 아기소가 커다란 눈을 한 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후,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폈다. 누우려고 하니 아이가 나를 잡아끌었다. 이불을 잡아 끌어 당기며 이불 한 귀퉁이로 손을 잡고 끌었다.
아이가 질투를 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낯선 사람과 있는 것에 대한 경계를 하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아이를 빨리 재우기 위해 이불 한 채를 더 펴고 그곳에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이 드는 동시에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끄고 10분이 지나자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잦아지더니 아예 숙면의 세계로 들어갔다.
다음 날 남편은 느긋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이를 안고 마당을 거닐며 말했다. "나무에 고야가 달렸구나. 익으면 엄마에게 따달라고 해서 맛있게 먹어. 알았지? 딸기도 익어가네. 다람쥐가 와서 먹기 전에 우리 아이가 먼저 먹어야 할 텐데..."
이어 " 저기 봐라, 아기소랑 엄마 소가 같이 있지? 우리 공주님도 엄마랑 늘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프지 말고. 응? 아빠는 갔다가 다시 올게...."
남편은 마당의 풍경을 설명해주며 아이에게 부탁했다. 아이는 아빠 품에서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아빠의 물음에 알 수 없는 말로 대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니 행복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가슴까지 올라오더니 금세 안타까움으로 변하면서 슬퍼졌다. "아이의 어린 시절에 아빠가 없겠구나. 남편도 딸아이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마당에서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가 자장가로 들렸는지 아이는 잠이 들었다. 남편은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눕히고 본인도 누었다.
팔로 머리를 괴고 자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살펴보는 남편의 얼굴에도 슬픔이 스며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남편도 잠이 들었다.
고목의 대추나무에서는 한여름의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녀는 마주 보며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오후가 되자 남편은 다시 군부대로 귀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나는 아이를 안고 동구밖까지 배웅을 나갔다. 남편은 나와 아이를 번갈아 한 번 안아 주었다. 나는 편지하라며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다녀간 후 나는 매일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렸다. 하루는 길 모퉁이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마자 뛰어나가 우리 집에 뭐 오는 것이 없냐고 물어봤다. 없었다. 그다음 날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체부 아저씨가 "이거 한 번 읽어볼래요?" 하며 신문을 건네주었다. 반장님 댁으로 가는 신문인데 몇 일째 쌓여 있어서 그냥 가져왔다는 것이다.
마루에 앉아 신문을 펼쳐 뒷면부터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온 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전혀 몰랐다. 깊은 산골이라 문명의 혜택을 볼 수도 없었지만, 남편이 군대 간 870일 동안은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아이를 키우기 위한 시간이며, 지금의 시간이 나중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으로 생각 하기로 했다.
신문의 헤드라인만 읽으며 한 장 한 장 넘겼다. TV 프로그램에는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 소개가 있었고,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러다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를 발견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나를 향해 비치는 것 같았다. "870일에서 180일을 빼면 된다! 오, 신난다! 바로 이거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바로 군대 간 남편 제대시키기였다.
그 순간, 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할 날이 청사진 처럼 펼쳐 졌고, 그 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단함도 이결 낼 수 있을것만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