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부 아저씨가 주고 간 신문을 자세히 보던 나는 탄성을 질렀다. 신문 지면 일부에 살포시 들어앉은 문구가 내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유명 인사들의 대부분 군 면제를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우리 남편은 아이 낳고도 군대를 갔는데 도대체 이것들은 뭔데... 하면서 한자 한자 읽어내려 가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1. 신체 조건 부적합 : 이미 군대를 갔으니 패스 !!
2. 질병 유무 : 대한민국 건장한 남자로 이미 아이도 나았잖아!! 패스 !!
3. 혈혈단신 : 부모님 계시고, 우리아이도 있으니 이것도 패스 !!
4. 금메달리스트 : 군대 가기 전에 이미 가정을 만들었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를 일등으로 산골이라는 골인
지점에 넣었으니 금메달 리트트가 맞네 맞어 !! 그런데 나라에서 준게 아니고 내가 줬으니 패스 !!
5. 가계곤란 : 가계곤란? 이게 뭐지?
군 면제 조건에 하나하나 이유를 붙여가며 신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이해가 되었지만, 가계곤란이라는 항목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직장도 없고, 혼자서는 아이를 키울 수도 없고, 그렇다면 남편이 경제 활동을 해야한다 !! 아 맞다 이거네 이거 하면서 무릎을 탁 쳤다. 4번째 조건 가계곤란을 적용하면 남편은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신했다.
군 면제 조건이 실려있는 지면을 가위로 잘라 책갈피에 고이 접어 두었다. 닷새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장날 읍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할 예정이었다.
남편을 따라 산골로 들어와서 딱 한 번 아이가 아플 때를 제외하곤 읍내를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재를 넘어야 하고, 이웃집 경운기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읍내를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번 장날에는 꼭 읍내를 나가야 했다. 장날이 되어 나는 아이를 업고, 어머님을 따라 이웃집 경운기에 올라탔다.
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길가의 노란 국화에는 벌들이 날아들었다. 이와 조화를 이루는 듯 가을 하늘은 높고 더없이 고왔다. 가을 단풍이 들면 단풍잎을 주워다 그늘에서 말렸다. 날이 추어지기 시작하는 11월이면 친정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모여 앉아 창호지 사이에 단풍잎을 넣으며 문을 바르던 생각이 떠올랐다.
방문 창호지를 바르고 나면 누가 더 예쁘게 발랐느냐며 어머니에게 꼭 여쭈어보곤 했다. 그럼 어머니는 다 예쁘다고 말했다. 그럼 우린 그런 게 어디냐면서 우리끼리 서로 예쁘게 발랐다며 뽐내기 시작했다. 방문을 바르고 나면 방안은 은은하면서도 훈훈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직도 엄마는 단풍잎을 주워 말리실까 생각을 하니 친정집 식구들이 그리워 졌다. 한번도 보지 못한 아이를 친정식구들은 보고 싶어할까..생각에 빠져 있다보니 읍내 장터에 도착해 있었다.
장터에는 몰려든 장사꾼들과 농산물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농산물을 일치 감치 팔아 버린 아저씨들은 주막에 모여 한 잔씩 하는지 떠들썩했다. 한쪽에서 도박꾼들이 손님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아동복을 죽 늘어놓고 파는 곳도 있었다. 아이의 겨울옷을 준비해야겠다 생각하며 읍사무소로 향했다.
장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읍 사무소가 있었다. 읍사무소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민원실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쭈삧거리며,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왔다고 했더니, 약간 나이 지긋하신 분이 대뜸 " 누구요? " " 저의 남편요...." 관공소에는 처음 와 본터라 주눅이 들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뒷줄에 앉아 있던 병사 담당 분이 앞으로 나오며 딱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서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참 안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말하는것도 창피하기도 하고 주눅도 들어 있던 터라 나는 신문에서 오려낸 종이를 보여 주었다.
아!! 이거... 안되는데요.... 저혼자 아이키울수 없는데,, 왜요? 군대간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다 가야 하고, 독립가구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이랑 생계를 같이 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 었다. 순간 이럴줄 알았으면 주민등록을 따로 해놓는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기운이 탁 풀리고 눈앞이 노래졌다. 몇일동안 행복했던 날들이 암흙의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겁먹은 소처럼 눈만 껌벅껌벅 뜨고 있었더니 담당자는 내 몸을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훑어보는 담당자에게 모멸감을 느낀 나는 점점 더 기운을 잃어갔다. 등에서 자고 있던 아이를 포대기로 감싸려고 하자 아이가 깨어 울기 시작했다. 읍사무소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한테 쏠렸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이를 달래려고 허겁지겁 읍사무소 문을 열고 나왔다.
잠시뒤 담당자가 따라 나오더니 아이가 둘이면 군 면제가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아이가 둘이 되려면 남편은 자연히 군대를 제대한다고 했더니 태중에 있어도 된다고 했다. 조금전 나를 훓어본 이유가 내가 임신중인지 알아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정말요!! 정말요!! 풀렸던 다리가 기운을 찾기 시작하고,마음속엔 희망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나는 무엇인가를 성취한 기분이 되어 어머님이 계시는 장터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미 남편은 내옆에 와 있었다. 어머님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군대 간 남편이 어떻게 둘째를 낳지?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