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입대를 하고,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올 겨울은 다른 해 보다 엄동설한이 될 것이라고 뉴스에서 예보를 했다. 산골의 겨울준비는 대략 11 월이면 마무리되었다. 어머니는 장날마다 읍내에 나가 쌀과 공산품들을 사다가 쟁였다.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손님 대접용 술도 준비하고. 아이의 주전부리도 준비가 되었다.
겨울나기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난방용 땔감이었다. 산골의 모든 집들은 난방을 위해 땔감으로 나무를 준비했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는 장작들이 켜켜이 싸여 갔다. 그러나 우리 집은 예외였다. 땔감용 나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 여름부터 아버님은 집안일을 하시다 건강을 잃으셨기 때문이었고, 뒤를 이어 집안 살림을 책임지던 남편이 군대를 갔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힘닿는 데로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불쏘시기 정도의 땔감이었다. 집 뒤의 산이 아버님 소유였지만,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지.. 하는 말처럼 산에 아무리 아름드리나무가 있어도 집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난방용 땔감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안방은 부모님과 아이들 고모(당시 초등학교 5학년)가 함께 쓰고, 나와 아기는 사랑방을 쓰고 있었다. 두 군데의 방의 난방을 위해서는 땔감이 더 필요했다. 부모님 두 분이 마련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어느 날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방에는 아이의 큰아버지의 결혼식을 앞두고 친척분들이 오셨다.
아버님의 건강 상태를 아시고는 친척분들도 우리 집 난방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겨울 난방이 걱정은 되었지만 딱히 방법도 없고, 어른들 이야기, 특히 시집 어른들의 이야기라 참견을 하지 못하고, 간간히 문밖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친척 어르신들도 딱히 방법이 없는지 한숨소리만 흘렸다.
그때 한분이 겨울 동안은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보내라고 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친정으로 가라 하면 한겨울 엄동설한에 아이를 업고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친청엄마는 3년 동안 집안 창피하니 집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때 시 어르신 중 고모뻘 되시는 분이 “ 할 수 없네.. 한방에서 겨울을 나는 수밖에”라고 말씀하셨다. 주위에 계시던 친척분들 모두 “ 그래, 그러면 되겠네요”라고 동의를 했다. 그러면서 나를 설득하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면서도 나에게 의견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큰아버지의 결혼식을 앞두고, 친척들과 남편 가족들은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시작하려는 부부에게 온통 관심이 쏠렸다. 앞날을 축복해주는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 있는 아이를 쳐다보며 군대 간 남편이 보고 싶어 져서 울었다. 남들처럼 군대 갔다 오고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친정엄마가 알면 “ 정말 고소하다” 하실 것 같았다.
이틀 후 아이의 큰아버지의 결혼식이 읍내의 예식장에서 이루어졌다. 가족들은 일찌감치 시내를 나가고, 부모님은 이웃집 경운기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갔다. 나는 결혼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남게 되었다.
아이와 둘이 남겨진 나는 앞으로 겨울날이 걱정이었다. 아이를 목욕시키려 해도 나무가 필요하고, 아이를 따뜻한 아랫목에서 재우고도 싶은데.... 라며 생각해 보아도 걱정이었다. 군대 간 남편이 그동안 집안의 기둥이었구나 생각하자 보고 싶어 졌다.
결혼식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한방에서 지내겠다고 이야기하자.. 며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군대를 입대한 겨울부터 한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아랫목에서부터 아이, 나, 시누이, 어머니, 아버지의 순서대로 자리가 정해지고 겨울 내내 이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한방에서의 생활은 불편함보다는 좋았다. 아이를 키우는데도 수월했고,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들을 들으며, 겨울밤은 깊어갔다. 나는 특히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정리해보면 남편은 어리 때부터 장난꾸러기였다고 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친구들과 노는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했다. 천진난만하면서 장난꾸러기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친구들과 싸우고 맞고 들어온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화가 나 남편의 친구들이 미워지기도 했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남편 군부대로 면회를 가기도 어려웠다. 아이를 업고 재를 넘어가고, 직통버스가 없으니 2번을 갈아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면회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울 동안은 면회를 간다는 것은 마음속에서만 태산 같았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불쑥 남편이 나타나 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있어야 남편이 제대를 하고, 집으로 올 수 있을 텐데, 면회도 못 가고 매일매일 야속한 시간만 흘러갔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남편이 어느 날 또 불쑥 찾아왔다. 지난번처럼 우리 집 식구들은 기뻐서 난리가 났다. 단 한사람 아이만은 제 아빠를 멀뚱멀뚱 쳐다만 볼뿐, 관심도 없었다.
남편의 부대는 양구에 있었다. 남편은 행정병으로 보직을 받아 몇 달에 한 번씩은 출장이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외박 하루는 허락되어 집으로 올 수 있다고 했다.! " 야호 신난다!! 역시 하늘은 나의 편이다, 하루라도 빨리 둘째를 만들어 남편을 집으로 오게 만들어야지 " 얼굴에는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나의 속셈을 모르는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겨울 내내 한방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나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비어 있던 사랑방을 덮이려면 , 2시간 이상은 걸렸다. 어쩔 수 없이 남편도 한방에서 자기로 했다.
아랫목으로부터 순서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나와 시누이 사이에 남편이 끼였다. 남편을 제대를 시키려면 매일 봐도 모자랄 판에 ㅠㅠㅠ 어떻게 둘째를 만들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니 가능도 할 것 같았다. 친정부모님도 우리들과 한방에서 지내도 8남매라는 많은 자식들을 생산했는데, 불가능할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밤이 점점 깊어질수록 마음은 급해졌다. 식구들의 잠드는 소리를 들으려 귀를 크게 열어두고 있었다. 먼저 아이의 고모가 잠이 들었다. 이어 어머님과 아버님의 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부모님은 일부러 자는척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잠이 드셨다. 아이를 다 재우고 뒤돌아 남편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런데 아뿔싸!! 남편도 코를 골기 시작했다. 툭툭 쳐서 신호를 보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만 골아 댔다. 코를 골 아대는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며칠을 밤샘 작업하고, 양구에서 원주에 들리
읍내에서 에서부터 걸어 들어왔으니 누구라도 그럴만하다.. 그럴만하다... 며 ,나를 위로하는 사이에 아침이 되었다. 그러고는 남편은 아침밥을 먹고 가버렸다.
이제 겨울도 다 지나가려고 했다. 겨울 내내 얼어 있던 샘물이 녹아 마당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봄이 오면 사랑방에 불을 안 넣어도 되니, 하루라도 빨리 봄이 오길 기다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