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2달에 한번 꼴로 집에 다녀갔다. 어떻게든 둘째를 만들려는 계획은 순탄치가 않았다.
겨울에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생활하고, 난방이 필요 없는 여름에는 남편의 외출도 줄었다. 업무차 외출 나왔다가 집으로 오게 된 남편은 잠만 자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 보는 아빠일지라도 아이가 제 아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쩌다 담너머로 군복 차림을 한 사람을 보면 아빠라고 말도 했다. 이제 제법 커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나와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일하는데 와서 훼방도 놓았다. 아이가 혼자서 마당 밖을 벗어 나는 일도 많아졌다.
우리 집은 앞, 뒤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속의 동물 친구들이 자주 나타나 앞마당을 제집 놀이터처럼 쓰고 사라졌다. 동물 친구들 중 다람쥐라는 녀석은 마당에 넣어 놓은 농작물을 흩트려 놓거나, 광에도 들어가 먹을 거리에 이빨 자국을 내고 사라 지기도 했다. 늘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이는 다람쥐를 특히 좋아했다.
아이가 7개월쯤 되던 봄에 읍내 장터에 가서 딸기 모종을 사서 뒤뜰에 심었다. 매일매일 물을 주고, 딸기가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 아이와 나는 아침 일어나자마자 딸기밭으로 가서 살폈다. 하얀 꽃이 피고, 딸기가 열리고, 알이 점점 굵어
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간식은 주로 감자를 삼아 으깨어 먹이기 기도 하고, 옥수수를 푹 삶아 툭툭 터쳐 먹이는 게 다였다. 그래서 딸기가 익으면 제일 먼저 아이에게 주고 싶어,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정성을 들여 키우고 있었다.
식구들 모두가 매일 딸기밭에 달려가서 인지 아이도 잠에서 깨어나면 내 손을 이끌고 딸기 밭으로 향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알이 굵어 가는 동안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무엇보다 기쁜것은 아이도 딸기와 함께 쑥쑥 커간다는 것이었다. 군대가 남편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침부터 오월의 햇살이 뜨거웠다. 딸기가 잘 익었겠구나 생각하며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손을 잡고 뒤뜰로 향했다. 뒤뜰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고, 아이도 뒤뚱거리며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입안에서는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 눈을 찡긋하면서 한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거리는 아이의 얼굴도 상상이 되었다.
“ 어!! 딸기가 없네. 어떻게 된 거지? ” 그동안 온 식구가 한마음이 되어 키웠던 딸기가 싹 사라졌다. 아이가 딸기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 질듯 했다. 딸기가 없어졌다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달려왔다.
아버님이 원인을 찾기 위해 딸기밭은 뒤지기 시작하더니, 반쪽 남은 딸기를 들어 올리며, 다람쥐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반토막 난 딸기를 보니, 다람쥐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이놈의 다람쥐!! 나타나기만 해 봐라!! "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다람쥐에게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
아버님은 이런 산골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매일 지켜보던 아이가 안쓰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간식거리가 남아 있었다. 앵두였다. 딸기가 익기를 기다렸듯이 아이와 나는 앵두가 발갛게 익어 가길 기다렸다.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보니, 다람쥐 녀석에게 분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앵두를 따는 날 아침, 아이를 앞장 세우고 탐스럽게 열린 앵두나무 밑으로 향했다. 앵두나무가 보이자 입에선 벌써부터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의 입도 오물오물거렸다. 앵두나무 앞에 서자 앵두는 감쪽같이 없어지고, 나무 밑에는 하얀 쌀알 모양의 낱알들이 수두룩했다. 이게 뭘까? 온몸의 기운이 쏙 빠지는 것 같더니,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았다.
다람쥐가 앵두를 따먹고 씨만 뱉어 놓고 간 것이다. 그동안 마당과 광에 드나들며, 나쁜 짓을 해도 봐 준 것도 억울 해지고, 화가 나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앞뒤 생각도 없이 창고로 달려가 쥐덫을 찾아
가지고 와서 걸리기만 해 봐라 하는 심정으로 앵두나무 밑에 쭉 돌아가며 쥐덫을 놓았다. 다람쥐가 덫에 걸리면 지난 딸기 도둑 사건까지 포함해서 죄를 물어 흠씬 패 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같이 마당을 드나들던 다람쥐가 그날부터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달음박질치듯이 가을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는 제법 혼자서도 잘 놀고, 말도 늘었고, 다람쥐는 여전히 집 마당과 광을 드나들었다.
산골에서의 가을은 도시의 가을보다 짧았다. 짧은 가을 동안 부지런히 움직여서 가을걷이도 하고, 겨울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늘 바빴다. 가을걷이는 어느 정도 끝나 들깨 수확만 남았다. 들깨는 산골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농작물이었다. 겨울 내내 필요한 영양분을 들깨에서 얻었기 때문이었다. 들깨로 죽을 쑤기도 하고, 나물반찬에도 쓰고, 각종 전도 지지고, 반찬이 없을 때는 계란 프라이 하나에 들기름 한 숟가락 넣어서 밥과 함께 썩썩 비벼 먹으면 한 끼를 해결할 수도 있는 들깨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농산물이었다.
아이는 밭가에서 놀고 부모님과 나는 들깨를 꺾어 단을 만들고 담을 따라 세워 놓았다. 깨를 햇볕에 잘 말리면 올해 농사는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깻단 주위를 무심코 보게 되었다. 볼이 미어터질 듯 빵빵한 다람쥐가 깻단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무엇을 먹는 것이 보였다. 도망이라도 칠까 조심조심 다가가 살펴 보니 다람쥐가 깨 낱알을 먹고 있었다.
딸기와 앵두 사건이 겹치면서 분했던 감정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작대기를 들고 깻단을 향하여 달려갔다. 하지만 약싹 빠른 다람쥐는 일시에 도망을 갔다. 점점 더 화가 치밀어서, 창고로 달려가 쥐덫을 모두 꺼내왔다. 깻단 주위를 돌아가며 촘촘하게 쥐덫을 놓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붙잡아 복수를 하려고 결의를 다졌다.
다람쥐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벌여야지 하며, 쥐 덫에 걸리기를 기다렸다. 깻단 위로 잘도 피해 다녔다.
이번에도 다람쥐의 승리로 끝났다. 결정적일 때마다 나타나서 피해를 입히는 다람쥐!!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분이 풀리지... 하면서 분을 이기지 못하자 아버님이 다람쥐 낚시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다람쥐 낚시?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고, 어떻게 다람쥐를 낚시하는지 궁금했다. 아버님은 장날 낚싯대와 참치 통조림을 사 오셨다. 낚시 바늘에 참치를 미끼로 꿰어 깻단 위에 던져 놓고, 미끼를 물면 낚싯대를 걷어 올리라고 하셨다. 다람쥐가 참치가 를 좋아해서 비싸지만 참치를 사 왔다며 잘 잡아 보라고도하셨다.
바다가 고향인 나는 낚시는 제법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다람쥐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님이 가리켜 준대로 낚시에 참치 미끼를 꿰어서 낚싯대를 던졌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람쥐가 와서 참치를 물었다.
고기를 낚아채듯 낚아 올렸다. 좋아하는 먹이 앞에서는 앞뒤 분간도 안 하고 덤비는 것은 나랑 똑같았다. ㅎㅎ
쥐덫에도 안 걸리던 영리한 다람쥐가 낚시에 걸린 것이다. 다람쥐 낚시는 깨가 다 마를 동안 며칠
이나 계속되었다. 참치 미끼에 잡힌 다람쥐는 커다란 고무 통에 집어넣어 놨다가, 들깨 수확이 끝난 후 산에 놔주었다.
아이는 통에 잡혀 있는 다람쥐를 보며 좋아했다. 가끔 동네를 드나들던 다람쥐 장수가 다람쥐를 사 가겠다고 했으나 아이가 좋아하는 다람쥐를 팔 수가 없었다. 팔린 다람쥐는 어느 가정집으로 가 하루종일 쳇바퀴를 돌려야 했기 때문에 더욱 팔 수가 없었다.
그나 저나 겨울이 오면 또 한방생활이 시작 되는데, 둘째는 언제 만드나...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