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크리스마스 선물 배달은 우체부 아저씨
군입대후
아이가 태어나고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여전히 나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생활을 했다. 산골의 하루는 짧고 밤은 길었다. 처음 나무로 불을 지필때는 아궁이에서 연기만 나더니, 이젠 능숙하게 불을 때고, 그 불에 밥도 하고 반찬도 하는것이 익숙해졌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는 동네 사람들이 시내에서 사람이 들어왔다고, 구경 와서는 불을 땔 줄 아느냐?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냐, 애가 애를 낳았구먼.. 하면서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불도 잘 때고, 며느리로, 엄마로 어느 정도 틀이 잡혀 가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틈틈이 밭에 나가서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였다. 농사일을 할 때면 손이 빨라, 어머님이 한 시간 할 일을 나는 30분이면 다 해치웠다. 내가 아이를 핑계로 밭으로 나가지 않으면 , 어머님은 " 자가 나오면 순식간에 다 심는데..." 하셔서 , 냅다 뛰어나가 순식간에 심어 버리기도 했다.농사일과 결혼생활에 대해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던 내가 이젠, 척척해 내어 집안에서 점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산골의 겨울은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어머님이 겨울 동안 밑반찬으로 먹기 위해, 깻잎 김치를 비롯하여 장아찌를 담아 놓았기 때문에 군불에 밥만 해 먹으면 되었다. 가끔 어머님은 장에 가셔서 내가 좋아하는 생선을 사다 주셨다. 친정집에서 먹던 그 생선처럼 싱싱하지도 않고, 맛은 없었지만, 나는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늘 바다냄새가 맡고 싶고, 바다의 생활이 그리웠다.
한겨울 따뜻한 해가 비치는 오후 2시면 아이는 마당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며,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외양간의 송아지에게 지푸라기를 가져다 주며 좋아했다. 이를 바라보던 어미소는 아이를 향해 큰숨을 푸우 하고 내쉬어서 아이를 울리기도 하였다. 부모님은 늘 조심조심 다녀라, 조심조심 ~~ 하시면서 마루에 앉아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며 흐믓하게 바라 보시곤 하셨다. 그러다 아이가 넘어져 머리에 혹이 생기면 재빠르게 부엌으로 들어가 된장을 손가락을 찍어와 아이의 이마에 발라 주셨다.
몇일 있으면 크리스마스라고 흑백 티브이에서는 캐롤이 흘러 나왔다. 어린시절 크리스마스날 산타클로스 선물을 기다리다 잠이 들어, 선물을 받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롯 선물은 못 받아도 크리스마스 날이면 엄마가 주머니속에서 크리스마스 사탕이라며 꺼내 주시던 기억도 떠 올라, 아이에게만은 선물을 해 주고 싶은데, 읍내로 나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면서 마루끝에 앉아 있었다.
한 겨울이 되어도 우체부 아저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집앞을 지나쳐 윗동네까지 다녀갔다. 오늘은 남편으로 부터 편지가 올라나... 크리스마스인데 선물은 아니더라도 편지 정도는 보내 주겠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오토바이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고 점점 빠르게 다가오더니 집 마당으로 들어 섰다.
아저씨는 누런 포장지가 터지지 않게 테이프에 꽁꽁 묶여진 선물 꾸러미를 내밀었다.선물을 싸고 있는 테이프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군대가 남편으로 부터 온 아이의 크리스 마스 선물이었다. 돌지난 아이가 볼만한 그림책 전집이 었다. 가격을 보니 8,000원으로, 군대의 월급이 2,000원이라고 했으니, 몇달을 모아서 아이의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냈던 것이다.
군대에 있어도 아이를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을 읽으수 있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을 받는 날부터 아이와 나는 책을 들여다 보며, 동물흉내도 내고, 자동차소리도 내며, 아이와 함께 책을 보기 시작했다.
둘째 계획은 속절없이 흘러 가고 있었다. 남편이 군에 입대하는 날부터 나는 매일 날짜를 세었다. 총 870일을 근무 해야 전역을 할 수 있는데, 남은 날짜를 세어 보니 455일이 남아 있었다. 태중 6개월이 되어야 군 면제가 가능하다고 하니, 대충 잡아도 270일 남게 되었다. 제대를 시키려면 빨리 아이가 생겨야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집안일, 농사를 거드는 일, 육아에 대해서 어느정도 익숙해 지고 , 여유가 생기자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 했다.
점점 산골의 생활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멋진 캐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걸 생각하니, 나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는 어르신들만 있어서 소통을 하고 지날만한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가족 뿐이었다. 점점 우울 해지면서 친정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하늘 밖에 안보이는 산골에 살다보니 탁트인 바다도 보고 싶어졌다.
저녁을 먹고 입고 나갈 만한 옷을 준비해 두고, 아이는 일찌 감치 재웠다.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입을 오물 거리며, 웃으며 잠들어 있는 아이를 쳐다 보았다. 문밖에서는 겨울바람이 쏴아 하고 불며 나무가지들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마당의 어미소가 내가 문을 열고 댓돌위로 내려서자, 큰눈을 꾸뻑거리며 쳐다봤다.
댓돌위에서 뒤돌아 다시 한번 아이를 살펴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웃음띤 얼굴로 제 엄마가 집을 나가려는 것도 모른채 입가에는 미소를 띈채 자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을 보니 친정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 여자는 일부 종사를 해야한다" 집을 나서 봤자 딱히 갈데도 없고, 친정으로 간다고 해도 받아 주지 않을텐데... 댓돌위에 주저 앉아 기우는 달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온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의 옆에 누웠다.
힘든 겨울이 가고 다시 바빠지는 봄이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