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80년대 거리에서 한 번쯤 마주칠 법한 펑크머리를 하고 있었다. 눈을 반쯤 가릴 듯 내려앉은 앞머리, 귀밑을 지나 어깨로 흘러내리는 장발은 그 시대의 흐름을 맞추어 가는 듯했고, 붕 떠 있는 히피 감성은 자유를 몸에 두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헤어스타일에 둔감한 내 눈에는, 그저 산에서 방금 내려온 듯한 도사처럼 보일 뿐이었다. 머리를 기르거나 수염을 기르는 사람을 유독 좋아하지 않던 내게 그는 첫인상부터 가장 멀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람과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던 나는,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와야 겨우 반응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내게 그 남자는 같은 반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늘 교탁의 정면이 보이는 앞줄 중앙에 박제된 듯 앉아 수업을 들었고, 그 곁에는 고향의 흙냄새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둘은 무언가 급히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처럼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주말에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차비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특별히 귀를 기울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들의 목소리는 내 귓가로 자연스레 흘러들어왔다.
둘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갑자기 뒤를 돌아 나를 향해 말했다. “차비 좀 빌려주면, 갔다 와서 갚고… 쫄면도 사줄게요.”쫄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낯선 음식에 눈만 깜빡이는 나에게 그는 신이 난 듯 설명을 덧붙였다.
국수보다 굵고 탱탱한 면발에 고추장 양념을 비벼 먹는데, 속초에서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뒤, 수업이 끝난 오후 우리는 쫄면집으로 향했다. 대원극장 옆, 늘 사람들이 들고 나는 붐비는 거리 한편. 속초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나치는 곳이었다. 3번 버스를 타고 극장 앞에서 내리니, 마치 거미줄의 중심처럼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분식집 문을 밀고 들어가자,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라면과 김밥을 먹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앉아 쫄면을 주문했다.
“어떤 음식일까.”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쫄면은 낯설지만 묘하게 입맛을 당기는 빛깔이었다. 길고 탱탱한 면발은 고추장 양념에 반들거렸고, 잘게 채 썬 양배추가 흰 눈처럼 그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긴 면발을 건지자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쭉 이어졌고, 쫄깃함이 넘쳐나 옷 여기저기에 빨간 반점을 남기기 일쑤였다. 첫 데이트라 불러도 좋을 순간이었는데, 나는 그만 엉뚱하게도 쫄면과 실랑이를 벌이며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쫄면은… 남자와 먹을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색한 식사 이후부터 우린 하루의 절반을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하고, 붕어빵 하나를 둘이 나눠 먹고, 버스를 타고 고성이나 양양으로 무작정 떠나가고 했다. 멀게는 오대산까지 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갔다. 그렇게 우린 연인이 되었고, 결국 부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부부의 인연을 청실홍실에 빗대곤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연을 묶어준 것은 전통의 붉은 실이 아니라, 쫄면 한가닥이었다. 쫄면의 양념처럼 강한 흔적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도, 때로는 코끝을 찡하게 시린 매운맛처럼 눈가에 물기를 맺히게 하는 날이 있었지만 그 길고 노란 면발이 끓는 물속에서 얽히고설키며 서로 질기게 끓어 당기듯, 함께 한 인생이 수많은 곡절 속에서 뒤엉켜 흔들렸지만 결코 끊어 낼 수 없는 하나의 실타래처럼 이어졌다.
나는 오늘도 웃으며 말한다. 쫄면 한 가닥에 인생을 건 여자가 바로 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