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남긴 시대적 아픔

속초아바이마을

by 속초순보기

속초 아바이마을 해설 현장에서 돌아오는 길, 가슴 한편으로 그리움과 따뜻함이 잔잔한 물결처럼 스며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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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닷바람에 실려 온 갯내음마저 포근하게 느껴지던 그 순간, 나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낯선 길 위에서 다시 만난 듯한,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을 넘어, 누군가의 따뜻함을 통해 어머니의 숨결이 내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날의 근무지는 속초 아바이마을이었다. 파도 소리가 간간이 밀려오는 차가운 바닷바람과 아바이순대의 구수한 냄새가 골목골목 뒤섞여 흐르는 곳. 그 길목에서 아바이마을 안내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장소를 찾는 표정이라기보다, 흐릿해진 기억의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더듬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바이마을은 처음이신가요?”

나직한 물음에 노부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아주 많이 와본 곳이라며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해설사로서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이려 하자, 그들은 이미 마음속에 지도를 그려놓은 듯 익숙하게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고는 수십 년의 세월을 꾹꾹 눌러 담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전쟁이 참 무서워요.”

그 말은 뉴스 속 화면에 박제된 단어가 아니었다. 포화의 한복판을 몸소 통과해 온 사람만이 뱉어낼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이었다. 다시 그런 날이 올까 봐 문득문득 두렵다는 그 고백 앞에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념의 상처와 갈등의 편린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노부인이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실향민 가족이지요?” 단번에 들켜버렸다. 나의 억양과 말투, 그리고 눈빛에 서린 슬픔의 무늬에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느끼고 계셨다.


어머니는 육 남매 중 막내였다. 큰외삼촌은 동해북부선 철도 기관사로 양양과 원산을 오갔고, 그 인연으로 원산에 터를 잡으셨다. 전쟁 전, 양양이 북측 치하에 있던 시절이었고, 직업을 따라 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 평범한 선택이 평생의 운명을 갈라놓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전쟁은 짧으면 삼일, 길어야 석 달이면 끝날 줄 알았다고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양양 집을 지켰고, 큰오빠가 운전하는 기차를 타고 잠시 원산으로 놀러 갔던 둘째 외삼촌과 이모들은 그대로 그곳에 남겨졌다. 그렇게 한 가족은 남쪽에 남은 자와 북쪽에 남겨진 자로 쪼개져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어머니는 평생 고향 양양을 떠나지 못했다. 집을 떠나지 말아야 가족들이 찾아올 수 있다며,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 된 어머니는 북에 있는 오빠와 언니를 그리워하는 것이 어머니의 전부가 되었다. 결국 어머니도, 그토록 염원하던 가족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가족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굽어 있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한 흉터로 남아 있다.

나는 이 개인적인 가족사를 노부부에게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직접 겪지 못했기에 그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가늠할 수는 없노라는 진심도 보탰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노부부는 침묵 끝에 나직이 읊조리셨다.

“그래서 전쟁은 절대 다시 일어나선 안 돼요. 겪어본 사람은 알아요. 그 고통이 얼마나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히는지.”

헤어지기 전, 노부인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셨다.

“고생 많았어요.”

실향민 가족으로 살아낸 세월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안다고,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다 이해한다며 내 어깨 위로 ‘토닥, 토닥’ 위로를 건네셨다. 그 투박하고 따뜻한 손길에서 나는 어머니를 느꼈다. 다정하게 내려앉던 그 미소가 노부부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해설사로서 역사를 설명하러 나간 길이었지만, 오히려 한 시대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비로소 나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내 안의 슬픔을 위로받고 돌아온 선물 같은 하루였다. 마치 어머니가 노부부의 손길을 빌려 토닥여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겨울 따스한 빛을 가만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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