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랑호 산책을 했다. 설악산 능선을 따라 설경이 장관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눈부신 산세와 얼어붙은 호수의 빛을 눈에 담으며 셔터를 연신 누른다.
그들에게 호수와 어우러진 설경은 낯선 경이며, 한 번 뿐일지도 모를 ‘처음’의 순간이다.
낯섦은 감각을 예민하게 깨운다. 그래서 그들의 눈동자에는 지금의 풍경이 또렷하게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나 속초에서 마흔 해 넘게 오늘 같은 풍경을 보아온 나에게 영랑호는 여행지가 아니다. 유년의 놀이터였고, 사춘기의 방황을 받아주던 쉼터였으며, 어른이 된 지금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일상의 자리다.
학교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썰매를 지치며 해가 지는 줄도 몰랐다. 호숫가 넓은 빈터는 남학생들의 함성이 가득한 축구장이 되곤 했고,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한때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와 씨름하며 '기다림'을 배우던 곳이기도 했다.
내게 영랑호는 눈으로 보는 풍경이기 이전에, 몸으로 겪은 계절의 축적이었다.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려고 해서 그리 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설악산을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감싸고 뛰는 러너처럼 발끝만 보고 걷고 있었다.
너무 자주 보아서, 혹은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나는 이 소중한 풍경들을 어느새 '당연한 배경'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함은 40년 세월이 준 훈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감정의 근육을 퇴화시킨 안대였다.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한 저 장엄한 설경은, 사실 나에게도 수천 번 넘게 위로를 건넸던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단지 매일 보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그 기적을 누릴 권리를 스스로 무디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고개를 들어 눈 덮인 설악을 본다. 40년 전, 썰매를 타다 넘어져 바라보았던 그 시린 하늘과 압도적인 하얀 산의 위용을 기억해 내려 애써 본다.
익숙함이라는 두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비로소 고향의 산천은 다시 '처음'의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가장 귀한 풍경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걷는 이 길을 다시 ‘처음’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마음, 그 마음이 열리는 순간에 비로소 영랑호의 진짜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