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군입대전
가을걷이로 바쁜 데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나의 산후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2주일 동안을 끓였다. 2주가 지나자 어머니도 요령이 생기셨는지, 장작불을 넣고 솥 한가득 미역국을 끓여 놓고, 내가 퍼서 먹도록 해 놓았다.
추수와 겨울 월동준비로 바쁜 부모님은 아침에 나가, 저녁에나 들어오셨다. 가끔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 산골의 집은 가을 햇볕만이 쨍하고 내리쬐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나가서, 솥에 들어있는 커다란 뚜껑을 열였다. 뽀얀 미역국이 가득 들어 있었다.
미역 국물에 내 얼굴이 비쳤다. 순간 친정엄마의 얼굴인 줄 알았다. 잠시 부뚜막에 걸쳐 앉아 엄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을 알고나 있을까...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릴 때 엄마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렸던 기억이 떠 올랐다.
엄마는 6남매의 장남인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결혼을 하자마자 할머니는 대를 이어야 한다며,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압박했다.
다행히 순조롭게 엄마는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 셋째는 딸(속초 순보기)의 순서대로 자식을 낳았다.
이 집안은 첫째가 딸이면, 둘째는 아들,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가 딸.. 집안의 내력이 그대로 이어져 간다며 할머니는 몹시 좋아하셨다. 이상하리 만치 친인척들 모두 이 순서대로 아이를 낳았다. 순조롭기만 할 것 같은 집안에 불행이 찾아왔다. 둘째인 아들이 탈장으로 죽게 된 것이었다. 둘째인 아들이 죽을 당시 엄마는 셋째를 임신 중이셨다.
아들인 손주를 잃게 된 할머니는 엄마의 뱃속 셋째가 당연히 아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집안 내력의 순서대로라면 반드시 아들이었다. 그런데 집안의 내력과는 반대로 엄마는 딸을 낳았다.
딸을 낳으므로 인해서, 아들을 잃은 슬픔과, 집안의 전통이 무너지는 상실감으로 인해 할머니는 큰 실망을 하셨다. 잠시 집안의 내력에 오류가 생기셨다면 다음번엔 반드시 아들이라는 믿음을 가지셨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임신 사실을 확인하셨고, 다행히 엄마는 넷째를 임신하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또 딸을 낳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만약 딸이라면... 엄마는 아마도 이 집 안에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도 불안해서 나에게도 동생이 남자일 것 같으냐, 여자아이일 것 같으냐며 몇 번을 물어보셨다.
당시에 연필점으로 성비를 맞추는 것이 유행이었다. 엄마는 매일 같이 연필점을 치며, 불안해했다.
( 지금 아이가 딸이면 연필이 팔의 일자 방향인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고, 세로 방향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아들이다. 이 연필점은 내가 결혼해서도 쳐 보았는데 딱 맞췄다 ㅎ)
연필점은 항상 가로였다. 일자 방향이면 딸이라는데, 역시 엄마는 딸을 낳았다. 둘째 아들이 죽음으로써 엄마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앞날은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실망을 말할 수 없이 컸고, 그 실망은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달이 되어 엄마는 더욱 안절부절못하였다. 엄마가 동생을 낳고도 삼칠일 지나지 않았는데도, 임신 안했냐며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실망은 할머니 보다 엄마가 더 하신 듯했다. 아이를 낳고도 아무것도 먹질 않으셨다. 아기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예 수건으로 덮어 놓고 들여다보지 않으셨다.
이틀이 지나자 아기가 배고픈지 울기 시작했다. 아기가 잘못될까 봐 내가 더 전전긍긍했다.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침울해졌고, 아버지는 밥만 차려놓고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아기가 걱정이 된 나는 엄마 몰래 물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어 주었다. 너무 울어서 지쳤는지, 아이는 입만만 다시더니 잠이 들었다.
내가 아기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을 보셨는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기가 이쁘냐고 물어봤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아기를 내다 버리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못 키운다면 내가 키우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방안에는 내가 먹다 남은 밥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남아 있는 밥을 끌어 당겨 물을 붓고 먹기 시작했다. 울고 계셨다. 몇 숟가락을 뜨시던 엄마는 나에게 미역국을 끓여 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여섯 살이었던 나는 미역국을 끓여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끓이는 방법을 물어봤다. 엄마는 다 귀찮은 듯이 물만 넣고 끓이면 된다고 했다.
부엌 찬장 위에는 어머니가 해산 후 먹으려고 준비해둔 미역이 있었다. 솥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미역을 넣고 불을 지폈다. 미역이 둥둥 떠다니는 미역국을 엄마에게 가져다 드렸다. 그때까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계시던 엄마는 미역국을 보자 일어나시더니 찬밥을 넣어 숟가락를 뜨셨다.
엄마의 눈물이 미역국으로 뚝뚝 떨어졌다. 엄마가 왜 우는지 이유도 모른 채 나도 같이 울었다.
한 숟가락을 떠서 입어 넣던 엄마가 부엌에 가서 들기름을 가져오라 하셨다. 부엌으로 나가 찬장을 열었다. 찬장에는 식기들이 크기에 따라 정리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깔끔한 살림살이가 느껴졌다.
식기들 뒤쪽에 작은 기름병이 하나 숨겨져 있듯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기름을 몇 방을 떨어뜨려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한 사발을 다 마시듯이 드셨다. 엄마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뜨거운 미역국의 수증기 탓인지, 어머니의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역국을 다 드신 어머니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젖이 안 나온다며 동생에게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젖을 먹은 동생은 먹자마자 곤히 잠들었다. 엄마와 나는 약속이나 한듯이 잠든 동생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엄마는 아들을 낳아 큰소리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