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과 추억 소환 첫 번째

남편의 군입대 전

by 속초순보기

친정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8남매를 키우시느라 마음고생도 많으셨을 엄마에게 나까지 걱정과 염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표현은 할 수 없었지만, 늘 죄송하고 미안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늘 부끄러웠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예쁘고 잘 키워놓은 둘째 딸이, 아들 삼아 키운 둘째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니, 아마도 간이 다 녹았을 뿐만 아니라, 억장이 다 무너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위라는 사람은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미필자였으니 어떤 말을 해도 정당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수많은 밤을 혼자 끙끙 앓았으면서도, 나를 만났을 때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위 걱정만 했다. 이미 쏟아진 물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앞으로의 내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친정엄마를 만나고 산골로 돌아와 나는 일상의 생활로 돌아왔다. 그저께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삼일째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 마루에 앉아, 어머니는 감자를 갈고, 나는 부침개를 지졌다. 부침개의 고소한 맛이 빗속을 타고 흘러갔다. 부침개 냄새에 외양간에 있던 어미소와 송아지가 되새김을 연신해대며 마루를 향해 푸~우 푸 ~우 하는 소리를 냈다. 아버님과 아이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감자 부침개가 접시에 담기기가 무섭게 먹어 치웠다.


마당에 빗물이 고이기 시작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두꺼비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 마루 밑으로 들어왔다. 먹이를 찾는지 입을 넙적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아이의 눈에는 무섭게 비쳤는지, 아이가 먹던 부침개를 놓치며

울면서 내 무릎 위로 재빠르게 올라앉았다. 마루 밑으로 들어와 멈추어선 두꺼비가 입을 크게 벌리고 끔뻑끔뻑 눈알을 굴리기만 했다. 울퉁불퉁한 등의 두꺼비가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여 아이와 나는 서로 부둥켜 앉은 채 쳐다보자, 아버님이 두꺼비가 집에 들어오는 것은 복이 들어온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시며, 손바닥에 빨간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장갑을 끼고 두꺼비 등을 잡아서 마당 앞에 흐르고 있는 냇가에 놓아주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저녁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비가 오니 일찍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찬장을 여니, 잘 포개진 그릇 위에 미역이 봉지채 들어 있었다. 연일 내내 내린 비로 저녁이 쌀쌀 해졌고, 낮에 먹은 부침개로 배가 트직하여, 시원하고 따뜻한 국물의 미역국을 끓였다.


소소한 찬으로 밥상을 채우고, 냄비 가득한 미역국을 들고 마루에 앉았다. 미역국을 대접 한가득 퍼서 상위에 올렸다. 시부모님은 미역국이 시원하니 맛있다며, 밥을 말아 드시기 시작하셨다. 그럼 어디 나도 좀 먹어 볼까.. 하고 대접 안의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떴다. 뽀얀 국물에 들기름이 동동 떠 있었다.


뽀얀 국물에 들기름이 동동 떠 있는 미역국!! 어디서 봤더라....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이런 미역국은 친정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과 똑같았다. 친정엄마가 끓인 방법대로 나도 똑 같이 끓인 것이었다.

미역국을 보니 친정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들기름의 방울방울에 친정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미역 국물이 담겨 있는 숟가락에도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친정엄마의 생각이 점점 간절했다. 깊은 산골에서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편으론 친정엄마를 생각하니 안심도 되었다. 엄마가 동생들을 낳는걸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나도 엄마처럼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임신을 하고 병원에는 딱 한번 검진을 갔다. 아이의 출산일을 알고 싶어서였다. 입덧이 심하여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는 것도 여의치 않아 영양 불균형이 생겨, 몇 번 어지럼증을 느끼자, 어머님이 읍내에 나가 두부를 사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생선을 사서 주시기도 하셨다. 약한 몸 탓에 어쩌다 보는 동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임신한 자체도 몰랐다. 약간 살이 붙었네.. 하는 정도였다.


출산예정일을 나흘 앞두고 출산의 징후가 나타났다. 부엌 설거지를 하다 말고, 바로 사랑방으로 들어가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부모님에게는 첫 손주이니만큼 기대감이 역력했고, 남편은 긴장감이 역력했다. 사랑방으로 아이를 낳으러 들어간 지 3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어머니는 생달걀을 먹으면, 달걀이 쑥 빠지듯이 아이가 나온다며 달걀을 나에게 먹였다. 그래도 소식이 없자 겁이 털컥 나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는 남편을 불러 아무래도 병원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남편과 부모님의 상의 끝에 읍내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택시를 부르기 위해 이장댁으로 달려간 후에도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택시를 부르러 간 남편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택시가 올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 동네에서 택시를 부르면 보통은 택시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택시가 험한 산길에 다 망가져, 택시비보다 더 들어간다며, 늘 거절하였다.


할 수 없이 하루를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집안 식구 모두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마자 남편은 또 택시를 부르러 갔다. 다행히 이번 택시는 산모이기 때문에 온다고 하였다. 1시간 후 도착한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20여분을 살피던 의사는 대형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잘못하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죽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위험한 응급상황이니 만큼 의사가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택시를 부르러 간 남편이 한 참 지나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응급실에 누워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의사는 나와 아기가 모두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죽을 것 같지가 않았다. 괜한 소리를 해서 남편이 겁을 먹고 달아나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남편이 응급실로 들어오면서, 오늘이 마침 택시기사들 모두가 민방위 교육을 받는 날이서 교육장으로 달려가 사정을 하여 택시를 잡았다며, 이제 큰 병원으로 가면 다 좋아질 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택시에 의사가 동승하여 안심이 되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금방이라도 출산을 할 것 같았다. 의사도 아이의 머리가 보인다며,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택시 안에서 아이를 낳으면 자기가 곤란해 지니까 힘주지 말고 참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간 의사가 돌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여 20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출산이 늦어져 아이가 뱃속에서 태변을 보았다며, 검사를 해봐야 건강유무를 알 수 있다고 간호사가 말해 주었다.

입원실로 올라오니, 그날 출산을 한 산모들이 모여 있는 병동이었다. 산모들 침대 옆에는 꽃을 비롯한 아기의 선물들이 놓여 있었고, 모두 출산 축하를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원 수속을 마친 남편이 병실로 들어왔다. 며칠 동안 긴장감속에 잠을 자지 못해 초췌 해진 남편과 나는 눈치 볼 것도 없이 한침대에 누워 단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나자 옆 침대 산모의 어머님이 부모님은 언제 오시냐며 물었다. 친정집이나 시댁이나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두 집 모두 전화도 없었지만, 친정집에는 연락할 면목이 없었기때문이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자, 병실의 보호자인 친정엄마들이, 음식과 과일들을 나누어 주고, 젊은 부부가 대견하다며 위로해 주고 보살펴 주었다.


퇴원이 결정되어 , 아이를 보러 갔다. 아이는 제 아빠를 많이 닮아 있었다. 빨리 안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함께 퇴원할 수 없다고 하여, 아이를 병원에 놔두고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부모님께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산후조리라는 명목으로 다시 사랑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머님이 미역국을 끓여 들여보냈다.

미역국을 한 숟가락 뜨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의 소식을 가장 먼저 친정엄마한테 알리고 축하받고 싶었고, 나를 낳아 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이를 병원에 두고 미역국을 먹으려니 넘어가지도 않고 눈물만 계속 흘렀다. 눈물이 미역국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문밖에서 어머님이 다 먹었느냐며 물으셨다. 그 말을 듣자 더욱 서글퍼져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 심정을 아시는지 어머님이 산모가 울면 눈이 나빠진다며 미역국은 많이 먹어야 한다며 말씀 하셨다.


집에는 매일 트럭을 타고 고추를 사러 오는 사람이 들락거렸다. 그럴 때마다 잘 말려놓은 고추들이 광에서 없어졌다. 값이 좋을 때 팔아도 되는데 왜 저렇게 서두를까... 남편이 군대 가기 전 농사일을 마무리한다며, 말려 놓은 고추들이 모두 팔려 나갔다. 내가 집에 온 지 3일 후 어머님과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병원으로 갔다.


오후가 되자 드디어 어머님의 품에 안겨 아이가 집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아이는 이상 없이 건강하다고 하였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제 아범이 군대 가고 없는 동안 아이 잘 키울 일만 남았다고 말씀하셨다. 세 식구가 된 우리는 한방에 누워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아버님에게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남편은 하루라도 빨리 아이의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마치고, 군입대를 하고 싶어 했다.


다음날 아버님에게 부탁을 하자, 너희들 애니 너희들이 맘대로 지으라고 하셨다. 집안에 쓰는 돌림자를 넣어 짓고 싶었지만, 군입대 날짜도 점점 다가오고, 하는 수 없이 평소 우리가 좋아했던 한글 이름으로 지어 출생신고를 마쳤다. 출생신고를 마치자, 남편이 그동안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나와 아이의 병원비로 올해 고추 농사지은 돈이 다 들어갔는 것이다. 병원비 마련을 위해 고추를 모두 팔았구나 생각하니 시부모님의 사랑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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