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홍련암

by 속초순보기

이른 새벽 3시 모두가 잠든 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따뜻한 봄이지만 새벽바람은 찼다. 차에 시동을 걸고 어둠 속을 찬찬히 운전하며 도로를 달렸다. 이른 시간 탓에 7번 국도엔 차들이 한 대도 없어 무섭기까지 하였다. 창문을 열었더니 차가운 바닷바람이 차 속으로 훅 하고 달려 들어왔다. 차도에 사람이 없어 무서웠던 터라 찬바람이 불어 들어오니 더욱 긴장이 되었다. 속도를 낮추고 더 천천히 달렸다. 15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낙산사 홍련암 주차장이었다. 새벽은 멀었는지 아직도 주차장 마당은 어두웠다. 차에서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들 두고 고민을 하다가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 되던 차에서 내려 들어가 보자 마음을 먹고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아직 낙산사 홍련암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지 않아 쪽문을 통해 들어갔다. 길 아래 바다에서는 계속해서 파도가 치고 있다는 것이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산사의 길을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나아갔다. 웅덩이에 한 발이 들어가 휘청하며 넘어질 듯했다. 홍련암 매표소를 지나 찻집 앞을 지나자 10미터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언뜻 보여 무섭기도 하고 두려워졌다. 이 시간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하나, 혹시나 나쁜 맘을 먹은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바삐 걷던 걸음을 늦추었다.


앞에 걷던 사람은 의상대를 지나자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긴장을 하여 헛것을 봤나. 생각했다. 세상이 험악하다 해도 종교시설 내에서 사건이 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독였다.

의상대를 돌아 내리막길로 돌아가자 파도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감로수에서는 연신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놓여있던 플라스틱 빨간 바가지에 물을 받아 마셨다. 마음이 진정되자 바람에 풍경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계단을 올라 홍련암을 내려다보니 홍련암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안심이 되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빠른 걸음으로 홍련암 앞으로 가서 밖에서 안쪽을 어정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스님은 아무 말도 없이 홍련암 옆에 샘물이 있으니 부처님에게 공양할 물을 떠 오라고 하셨다. 얼른 주전자를 받아 들고 샘물에서 물을 담아 스님에게 가져다 드렸다.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어떻게 왔느냐, 무엇하러 왔느냐 묻지도 않고.

나는 살며시 들어가 홍련암 마룻바닥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스님의 염불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종교를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벽기도는 더더구나 해본 적이 없었다. 스님은 어떻게 왔느냐, 절은 처음이냐, 궁금하지도 않은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20분 정도 지나자 불자 한분이 들어오더니, 스님 뒤에 앉아 스님을 따라 불경을 읽기도 하고, 절을 하기도 하였다. 합장한 채로 앉아 있는 나를 보더니, 불단 옆에 있는 책자를 가져와서 따라 하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옆사람이 하는 데로 따라 했다. 불경을 읽으면 불경을 읽고, 절을 하면 절을 하고, 불당에 있던 사람이 나가면 나도 나가고.


그렇게 백일기도가 시작되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30분쯤 출발하면 4시쯤 스님의 아침 기도가 시작되고 6시쯤 끝났다. 종교도 없는 내가 홍련암을 찾은 이유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홍련암을 무척 좋아하셨다. 일본 강점기 때 무지개다리를 타고 외삼촌이 홍련암 수선에 참여했다며 더욱 좋아하셨다. 외할머니는 천주교 신자셨는데, 어머니는 절을 좋아하셨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허락도 없이 남편이 군대 가기 전 아이를 낳고,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 드렸는데, 한 번도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못 한 것이 가슴에 맺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홍련암에 49일 동안 위패를 모셨다. 그 이유로 홍련암에서 100일 기도를 해 봐야겠다고 결심을 한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 눈치 보며 따라만 하다가, 한 달 정도 지나자 자동적으로 입에서 불경이 튀어나오고 , 저절로 무릎이 굽혀져 절을 하게 되었다. 다른 불자보다 먼저 암자에 도착하려고 쓸데없는 혼자만의 경쟁도 하였다.

50일이 지나자, 불경을 따라 읽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르며 주체를 할 수 없었다. 입속에서는 " 엄마, 미안해요"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절을 하는 동안에도 눈물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울어도 상관없이 계속해서 불경을 읽고, 절을 했다. 오히려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홍련암을 나와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니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올라 있었다. 햇빛은 나를 위한 햇빛처럼 느껴졌고, 이제까지와 다른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나도 나는 어머니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늘 죄스러운 마음이었고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가 임종할때, 우리형제 8남매는 내가 다 보살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약속을 했다.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둘째인 내가 맏이 역할을 하다보니 어머니가 많이 의지하셨고, 부모님은 나에게 맏이는 부모맞잽이(부모와 동등한 위치)라며 동생들 잘 보살피고, 집안도 잘 보살펴야 한다며 늘 말씀하셨다. 이제 8남매는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자기 갈길을 가고 있다. 어머니에게 약속한 대로 8남매는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어머니에게 한 잘못은 아직 용서를 못 받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좋아하는 홍련암이 떠올랐다. 백일기도 하는 동안 나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용서를 빌었고,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동생들도 잘 이끌었으니깐.


여전히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홍련암에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다. 해당화가 곱게 핀 산사로 가는길에서 상상속의 어머니는 웃고 계신다. 해당화 열매로 만든 목걸이를 손에 들고... 바다 안개가 산사 뜰에 자욱이 내리 깔리때는 외삼촌과 함께 행복한 모습을 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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