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순댓국

속초 순보기의 어린 시절

by 속초순보기

그날 아버지는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오셨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른 날 보다 힘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기분이 딱히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요즘 우리 집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 어디를 봐도 무겁고, 우중충하게 느껴졌다. 밖은 맑은 하늘에 햇빛은 강하고, 바람은 청량한 가을이 이었는데도 말이다.


최근에는 엄마와 아버지는 웃는 날이 별로 없었다. 서로 이야기를 안 하고 지내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도부모님 눈치를 보는 날이 많았다. 부모님은 가끔 누가 찾아올 때만 아주 잠깐씩 웃고 말했다. 그나마 마지못해 하는 인사치레적인 웃음이 고작이었다.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지 왜 이런 상황을 만들어 가는지 어린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유를 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들려준 적도 없고, 둘이 다투거나 즐거운 일이 있어도 우리 자식들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엄마가 여동생을 낳고부터였다. 그래서 난 여동생의 탄생으로 집안에 무슨 큰일이 났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은 퇴근을 하신 아버지가 시장을 가자며 말을 건넸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기금까지의 분위기와 다르게 밝고 맑은 목소리였다. 그동안의 아버지의 음색이 베이스였다면, 이번엔 소프라노처럼 맑고 청아했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목소리만 밝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몸을 정돈하고 나들이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곤 내손을 이끌고 대문을 열고 나섰다. 마당에는 아직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햇빛을 보자 아버지가 다른 날 보다 일찍 퇴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내 머릿속은 온갖 추측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딸자식 중 한 명을 입양 보내려는 것인가?(딸이 많아서 동네에서 한 명은 입양 보내라고 하던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만약 입양을 보낸다면 나인가?, 어머니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나? 아니면 막 태어난 동생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하며 머릿속에서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계속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걱정스러운 나의 마음과는 달리 아버지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계속 궁금했지만, 입양 보내는 자식이 나일까 봐 물어보기가 겁났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버지의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고, 혹시나 내 신변에 관한 일이라면 미리 알고 싶지 않았다. 따라가는 나의 발걸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속초 중앙시장이었다.


시장 골목에선 내가 맡아보지도 못했던 냄새가 입구부터 진동을 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순간 손으로 입을 막았다. 골목에선 커다란 양은솥에서 김이 연신 솟아 나오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눈 감은 돼지의 머리가 펄펄 끝는물에 담겨 있었다. 식당집 아저씨는 쇠 꼬챙이로 고기를 쿡쿡 찔러보고는 뚜껑을 닫았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계속 긴장했던 탓인지 더 무섭고 긴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골목 거의 중간지점에 있는 식당으로 찾아 들어갔다. 골목 입구부터 늘어선 순댓국집을 마다하지 않고, 중간쯤 집 가게의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가시는 걸 보니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는 단골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밖에서는 돼지 머리들이 연신 끓고 있었고, 수증기를 젖히며 들어선 식당은 허름하고 작았다.

아버지는 빈 탁자에 가서 자리를 잡고, 나에게는 묻지도 않고 순댓국 2그릇을 시켰다. 잠시 후 내 앞에는 처음 보는 살점의 고기들과 쵸코렛 빛 창자가 들어있는 뚝배기가 놓였다. 김이 훅 올라와 얼굴 위를 덮쳤다.

김 속에는 지금까지 맡아보지도 못한 냄새가 났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며, 음식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새우젓을 한 숟가락 떠서는 뚝배기에 넣고 섞기 시작하더니, 한 숟가락을 퍼올려 후후 불며 드시기 시작했다. 숟가락 위에는 음식과 깍두기가 함께 올려지기도 했다. 반 그릇 정도를 드신 아버지는 얼른 먹어 보라며 눈짓을 했다. 음식에서 나는 냄새와 창자 모양의 음식은 절대 못 먹을 것 같았다. 이런 음식이라면 분명 어른들만 먹는 음식이지 내가 먹을 음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먹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상에서 젓가락을 들어 깍두기 한쪽을 입에 넣어 보았다. 깍두기의 맛은 엄마가 해주신 그 맛으로 먹을 만했다. 깍두기와 함께 먹으면 괜찮겠지 하는 심정으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순대를 뜨고, 깍두기를 올려 같이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키기도 전에 억 하고 뱉어 버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면서 더 무섭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보는 동시에 나는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나는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방울의 국물도 남기지 않으시고 다 드셨다.


시장으로 올 때처럼 앞장서서 걷는 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해는 져서 어두워졌고, 동네 집들에서는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걷던 아버지가 잠시 멈추어 서더니, 내 손을 잡으셨다. 순간 이곳에 나를 버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엄마가 이번에도 딸을 낳았구나. 너도 딸이고, 동생도 딸이고, 그 밑에도 딸이고, 또 딸이구나, 집안 식구들 모두 아들이길 바랬는데 말이다." 그동안 집안 분위기가 안 좋았던 이유가 엄마가 연속해서 딸을 낳아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 대화 도중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여동생이 또 생겨서 좋다며 철없이 이야기했던 나는 집안의 분위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딸들만 있는 집안에 이제 네가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집안에서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말을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내게 하시면서 돈가스도 아니고 순댓국이라니..)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집안을 위해서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 해졌다. 아들이 집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낯선 음식으로 인해 나빠진 기분이 좀 나아졌고,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얼른 집에 가서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가 사주신 도넛도 내손에 그대로 있었다. 벌써 부모님의 든든한 기둥이 된 양, 동생들과 먹으려고 도넛도 먹지 않았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아버지는 집안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고, 특히 엄마에게는 네가 큰 위로가 되고 있으니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해 주셨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아들 역할을 해야 된다는 압박감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버지가 나를 믿고 계신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날 이후 동생에게는 이름이 생겼고, 가족관계등록부의 부모님 밑으로 5번째로 올라 서류상 가족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안의 아들 역할을 하며 어른이 되어 갔다.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

봄이면 산에 가서 나물을 뜯어 팔기도 했고, 여름에는 뜨거운 밭에 나가 어머니를 도와 감자를 캐기도 했으며, 가을엔 버섯을 따러 산으로 돌아다녔고, 겨울에는 메주를 쑤고, 두부를 만들며 집안의 기둥이 되어갔다.

8남매의 장녀로 집안일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참 힘이 들었다. 친구들처럼 소풍을 제대로 가지도 못했다. 소풍 가는 날은 으레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내 소풍날이 아니었다. 먹을 게 생겨도 먼저 동생을 챙겼고, 엄마가 일을 나가시면, 동생들도 돌보고, 집안 청소며 설거지는 다 내가 알아서 했다. 점차 동생들이 커가면서 집안일을 함께 하게 되어 수월 졌지만.



오늘 속초 중앙시장 순대국밥집이 늘어서 있는 골목에서 순댓국을 먹으면서, 순댓국을 아버지와 처음으로 먹던 날이 생각났다. 내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사주시고는, 집안의 큰일을 맡기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우리집을 방문할때나, 직장으로 나를 만나러 오실 때도 항상 순댓국을 먹으러 갈 때처럼 잘 차려입고 오셨다. 늘 처음 나를 데리고 순댓국을 먹으러 갈때 입으셨던 양복을 입고 오셨다. 유행 지난 양복이라며, 이제 그만 입으시라고 해도, 늘 그 차림이셨다. 왜 그러셨을까? 어린 나에게 큰 짐 지게 한 것이 미안해서 였을까? 아니면 잘 따라준 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을까?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잘 차려입으신 젊은 날의 아버지와 상고머리의 어린 소녀가 되어 순대골목을 찾아 들어가 순댓국을 먹고 싶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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