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선물로 받은 그림책

by 속초순보기


나는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60~70년대의 가정에는 보통 4명 이상의 자녀들이 있었다. 동네에서 우리 집은 가족이 많은 축에 속했다. 자식들도 많은 데다가 경제적으로 어렸웠던 시기였으므로 모든 것이 부족했다.


내 위로 한 명이 탈장으로 죽어서 8남매가 되었으나,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어려웠다. 부모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 나가서 남의 집 일을 하는데 사용했다. 부모님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는 늘 배고팠다.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 부모님이 없는 집에서 고만고만한 8남매가 흙장난을 한다거나 이웃의 아이들과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둘째라고 어머니가 안 계신 동안 설거지도 하고, 동생들을 보살폈다.


조금 더 성장해서는 어머니를 도와야겠다는 일념으로 봄에는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고, 여름에는 냇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 반찬에 보탰다. 가을에는 산으로 버섯을 따러 다니고, 농사일이 끝난 밭에 가서 감자나, 옥수수 등 이삭을 주워왔다. 일손을 많이 거들어서 어머니는 늘 나에게 고마워하셨고, 동네 사람들도 설악산 꼭대기에 혼자 데려다 놔도 살 아이라고 칭찬을 했다.


3살 터울인 우리 형제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언니가 쓰던 교과서와 책가방을 물려받았다. 책가방이 다 헤어지기라도 하면 우린 책보에 책을 싸서 허리춤에 매달고 달려 학교로 갔다. 그러면 어머니는 항상 배 꺼진다고 뛰지 말고 걸어서 다니라고 대문 밖을 내다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우리 형제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냅다 달려 학교로 향하고 했다.


말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지 제대로 된 문구류가 하나도 없었다. 연필은 죄다 몽당연필이고, 다 쓴 달력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의 노트가 되었다. 좀 산다고 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동아전과를 가지고 다녔는데, 나는 동아전과를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 아버지에게 나도 전과를 사달라고 했더니, 아버지는 교과서만 보아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교과서만 보고도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전과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더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구도 제대로 사서 쓰지 못하던 시대였고, 형제도 많았던 우리 집은 책을 사본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주변에 도서관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집에서 신문을 본다거나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세상에는 있는 책은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마찬가지였다. 과목별로 친구들은 참고서를 지참하고 다녔는데, 내 책가방에는 교과서만 들어 있었다. 방학 때가 되면 친구들은 문학전집 중 한 권을 학교로 가져와 읽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책들은 “ 테스” “ 폭풍의 언덕” “ 인형의 집” 등이었다. 국어시간에 국어선생님이 말씀하신 책 들이었다.


나도 읽어 보고 싶었지만 책을 사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공부를 더 하려면 참고서가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문학책을 사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역시 아버지는 교과서만 봐도 1등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최고의 점수로 대학 진학을 했던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과서로 공부 했다고 인터뷰했다. 그래서 알았다. 역시 우리 아버지의 말씀은 신라는 것을)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 아이 키울 걱정을 하는 남편은 자기 없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법이라며 “ 임신과, 축산, 육아”에 관련된 두꺼운 컬러의 책 한 권을 던져 주며 군대에 가버렸다.


육아책에는 아이가 말하기 전부터 책을 많이 읽어 주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산골에서 책을 산다는 것이 가당치 나 않은 이야기였다. 별 수없이 백일도 안된 아이에게 “ oo야, 이유식은 언제부터 해야 된대, 4개월이 되어야 옹알이를 한 대”라며 육아책에 있는 지침서를 마치 아이에게 들려주듯이 말해 주곤 했다.( 그래서일까요? 제 딸이 육아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합니다 ㅎㅎ)


군대에 가있는 남편에게 아이에게 읽어줄 책이 없어 아이가 바보 천치가 되면 어쩌지.. 하는 염려스러운 편지를 써 보냈더니,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동물, 탈것, 과일 등이 그려진 그림책을 선물로 보냈다. 남편이 군 생활하면서 월급(당시 1,900원)을 아껴 책을 사서 보낸 것이다. 자기의 용돈을 아껴서 책을 샀다는 사실보다 교과서 이외의 책을 처음 받아 본것에 흥분 하였다.


교과서 이외의 책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그램책이었고, 아이의 책이었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산골에는 부모님과 나와 아기 4명이 살았고, 동네에는 아이와 같은 또래가 없었다. 이웃들은 모두 이 골짜기에 한집, 저 골짜기에 한집, 하는 식으로 뚝뚝 떨어져 있었고, 아이의 소통 상대는 모두 어른이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는 말이 전부 산골의 사투리이거나 어른들이 하는 말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부모님은 귀엽기도 하고 신기 하다며 말씀하셨지만 “ 저러다 영영 아이들의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책이라도 제대로 읽어 주자 결심을 하고, 찬찬히, 천천히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책에서 나오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말을 연습하기도 했고, 책을 읽어 준 뒤에는 내용과 느낀 감정을 물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대한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직장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주로 지침을 많이 읽었지만, 책을 선물 받았을 때 가장 설렌다. 또 책방에 가면 설레고, 책에서 나는 냄새에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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