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8남매의 추억을 함께한 우물

by 속초순보기

20년 만에 엄마의 기일을 맞이하여 예전에 살던 동네를 다녀왔다.엄마와 8남매의 추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던 동네는 많이 변해 있었다.


우리 집터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 서 있었고, 우리가 뛰놀던 공터는 밭으로 변해 있었다.

온 동네의 소통의 장소였던 우물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우물의 원천이 되었던 샘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우리 집 뒤편으로는 철길이 나 있었다. 철길 밑으로는 산속에서 샘물이 통과하도록 터널이 나 있었다.

터널로 흐르는 물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흘렀다.


여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터널에 자리를 펴고 흘러가는 샘물에 담가놓은 수박을 깨 먹었다.

샘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김치통, 수박, 참외 등 여름 과일들과 반찬통을 일렬로 담가 놓았다.

그 샘물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찼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그 터널의 샘물은 천연 냉장고 역할을 해 주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사용할 수 있는 공용 대형 냉장고였다.


동네 사람들은 밥만 가져와 각 가정의 반찬 통에서 반찬을 꺼내 먹었다. 터널의 샘물에 담가놓는 순간, 반찬은 누가 먹어도 상관이 없는 동네 사람들 모두의 것이 되었다.


터널은 바로 우물로 이어졌다. 우물은 자체적으로 샘이 솟았지만, 터널로 흐르는 물도 우물로 들어갔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은 터널을 깨끗이 사용하고, 정성을 들여 관리했다.


처음 우물은 웅덩이 형태로, 깊이는 어른 키의 두배 정도로 깊었다. 우물이 깊었는데도 이렇다 할 안전장치는 전혀 없어, 우물 주변에서 까딱 하다가는 우물에 빠질 수 있어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주의를 시켰다.


우리 집은 바로 우물 옆에 있었다. 이웃집들은 양동이를 가져와 물을 길어 가야 했지만

우리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바로 나와서 물을 길어 쓰면 되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우리 집을 부러워했다.

우리 집은 우물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셈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우물세권 정도 될 듯싶다. ㅎㅎ


한밤중 목이 말라 바가지를 들고 우물에 갔다.

밤은 깊어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물 한바가지를 뜨고 우물속을 들여다 보니, 별들이 우물속으로 다 내려와 앉아 있는듯 물빛이 반짝였다.

떠올린 바가지의 물속에도, 물속을 바라보는 내 눈에도 별들이 들어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우물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리 집 형제는 8남매로 나는 둘째였다. 나와 동생들은 2살이나 3살 터울로 다 고만고만했다.

내가 덩치가 작아서 인지 여동생들과 쌍둥이처럼 보는 사람이 많았다.


우린 학교도 같이 가고, 놀이도 같이 하고, 늘 함께였다. 소꿉놀이를 하다가지겨워지면 공기

놀이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마당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도토리만한 공기돌로 받기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없는듯 허전했다. 늘 옆에 앉아 놀던 동생 한명이 없어졌다. 하던 공기놀이를 멈추고,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갈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엄마를 빨리 불러 오라고 동생에게 시켰다. 그 순간 아차 아차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물이 생각났다.

우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뿔싸!! 동생이 우물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었다.


우물가에 엎드려 우물 속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동생 한명은 나까지 우물에 빠질것을 염려해 엎드려 있는 내다리를 꼭 붙들고 있었다.


내 손이 동생에게 닿을 듯 닿을 듯했지만 닿지 않았다. 동생은 점점 더 허우적 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또 다른 동생이 눈치 빠르게 엄마를 부르러 갔다.


다행이 근처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동생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우물 밖으로 건져냈다.

동생은 물을 몇 번 토해내더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우물에는 안전시설이 없어서 우리 남매들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종종 우물에 빠졌다.

우리 형제들 대부분이 우물에 빠져서, 네가 1번으로 빠졌고, 네가 2번이고...라며 서로 놀리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이 1주일에 한번 꼴로 우물에 빠지는 사건이 생기자, 동네 어른들은 우물의 높이를 낮추었다. 우물의 높이를 절반으로 줄여, 앉아서 바로 사용 할수 있도록 하였고, 물이 차면 흘러

내리도록 만들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이 우물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흘러내리는 물에 빨래도 하고, 설겆이 등을 할수 있어 편리 해졌다.


우물은 마을의 공동소유여서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청소당번이 있었다.

우물 청소는 먼저 우물물을 다 퍼내고, 우물 속 돌에 붙어 있는 물때를 수세미로 닦아내고, 밑에 쌓인 퇴적물을 걷어 올리면 되었다. 청소는 대략 한 시간 가량 걸렸다.


우물 청소 당번은 보통 아저씨들이 했다. 하지만 우리집은 엄마가 했다. 우리집 차례가 되면 우리 남매들은 모두 엄마를 도왔다.


먼저 물을 퍼내고 엄마가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엄마가 건져 주는

우물속의 퇴적물을 받아 버렸다.


우물 속에서 수세미로 우물을 닦고 있던 엄마의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우린 일시에 우물가로

몰려들어 우물 속의 어머니를 내려다봤다.


엄마는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는 듯하시면서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 우물속은 점점 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물의 높이는 점점 어머니의 허리까지 차 올랐다.


우리 형제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 엄마, 빨리!! 빨리!!"를 연발하며 재촉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우물 속 돌 틈에 커다란 쥐가 끼여 죽어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던 우리 형제들은 일시에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모두는 웩웩

거렸다. 그동안 먹었던 물이 쥐가 빠진 물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며.


쥐가 빠져 죽어 있었는데 우물맛은 왜 아무 변함이 없었던 걸까. 오히려 더 달고 맛있었다.이상한 일이었다.


그 이후 우물 청소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저녁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그 달고 맛있던 우물물이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


어머니도 어떻게 쥐가 빠져 그 안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동네 사람들에겐 이야기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여름밤이면 우물가에 모여 등목을 하면서 동생들과 물장난을 하던 모습이 영화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등에 물을 끼얹져 주며, 벌써 이렇게 켰냐며, 이젠 시집가도 좋겠다고 놀리던 어머니의 모습도 생각났다. 아버지와 말다툼 후 우물가에 앉자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도 생각났다.


나는 여름날 우물옆 평상에 앉아 별이 빛나는 밤하늘으 보는 것으 가장 좋아했다.

우물가에 앉아 바라본 하늘엔 빛나는 별들이 꽉 차있었고, 우물가엔 우리 8남매의 미래가 빛나고 있었다.


우물이 없어져 흔적만 남았듯이 어머니도 우리 곁에 없고 추억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