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성실한 공무원, 신토불이 공무원이 되었나.

by 속초순보기

공무원이 된 이유는 남들이 보면 웃을 일 일인지도 모른다. 큰아이가 7살 때 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미용실을 차리기 위해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동생의 학교 운동회라고 모두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8남매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따르는 편이었다. 동생 운동회에 맞추어 각자 하나씩 음식을 준비해서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음식을 하나씩 꺼내 놓고 먹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부석 쪽을 보게 되었다. 본부석에는 잘 차려입은 학부모들이 선생님들과 모여 우리가 보지도 못했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의 음식은 밤 삶은 것과 고구마와 밥통에 가득 담긴 밥과 김치가 전부였다. 그러나 본부석의 음식은 튀김과 떡 등 잔칫상 같았다.


차려진 음식을 다 먹은 후에야 운동회의 오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동생의 게임에는 나이가 있으신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이 참가하고 있었다. 난 여전히 본부석의 학부모들 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느라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본부석 학부모들은 텐트가 쳐진 의자에 앉아서 운동회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나는 순간, 내가 학부모가 되었을 때 소위 말하는 동네 유지가 되지 못한다면 지금 어머니처럼 본부석에 앉지도 못하고, 그늘을 찾아 이리저리 옮기어 다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옆에서 흙장난하는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딸아이의 모습을 보자, 아이가 학교에 가서 운동회에 참석했을 때, 그럴듯한 명함을 내밀고 싶었다. 지금 하려고 하는 미용실보다 더 근사한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미용사가 전문 직종으로 우대받았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다)


잠을 설쳐가며 고민을 했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아이의 엄마로 체면이 설까, 집에 돌아와서도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순간 번쩍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버지는 여자는 공무원이 최고라며, 꼭 공무원이 되라고 하시던 말씀이.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바람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을 해 버렸다. 당시에는 다양한 직업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아버지의 말씀도 그랬고, 주위에서 공무원 하는 사람을 보면 정시에 출퇴근하는 공무원은 육아에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공무원이 되어서 아이의 가정환경 조사서에 어머니의 직업란에 공무원이라고 기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2년이나 지났고, 그동안 책이라고는 미용사 자격시험을 위해 필기시험 공부하느라 책을 본 이외에는 신문조차도 본 적이 없는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마음은 공무원이 다 되었지만, 공부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으로 보험설계사가 찾아왔다. 보험설계사는 보험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미끼 상품으로 운세를 봐주겠다며, 생년월일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전산에 생년월일을 넣어, 운수를 뽑아보는 것이 대유행이었던 시절이었다.



친정아버지가 점에 미쳐 재산을 탕진한 적도 있어서, 점이라면 아예 거들떠보지 않던 내가, 그럼 재미라도 봐 볼까? 하며 생년월일을 알려주었다. 보험설계사는 1주일 후 운세와 사주를 뽑아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프린트물에는 내가 공무원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본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는데, 기계 따위가 어찌 이리 내 맘을 잘 알고 있을까? 아니면, 나는 공무원이 되도록 세팅된 것인가?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 이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을 때 부모의 직업란에 그럴듯한 직업을 써넣기 위해서 하고자 했던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공무원이 됨으로써, 아이가 학교 들어가 3학년이 되어서 가정환경 조사서에 모의 직업란에 공무원이라고 정성 들여 적어 보냈다. 지금은 대부분의 엄마가 직장을 다니지만 30년 전에는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도 느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첫 출근날 발령장을 받고, 인사부서에 인사하러 갔다. 인사 담당 계장님이 결혼해서 공무원이 된 사람이 처음이라며, 격하게 환영을 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결혼과 상관없이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무원 정년은 만 60세이지만 58세에 공무원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공무원이 된 후, 법률과 지침에 따라, 선배님들의 지도에 따라, 민원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성실한 공무원이 되었다. 이런 공무원을 일부 사람들은 신토불이 공무원이라고 불렀다. 신토불이 공무원은 철밥통, 복지부동보다 더한 부정적인 표현으로 몸과 내가 딱 한 몸이 되어 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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