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다려야 할까...

by 속초순보기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전문대학까지 함께 다닌 친구이다. 친구와의 추억의 80% 이상은 양양 오색이었다. 학창 시절 우리의 놀이터는 내설악인 오색이었다. 단풍구경을 가고, 눈 내린 산길을 걷고, 봄이 오면 들꽃을 꺽어들고 같이 걸었다. 용소폭포까지 갔다 오다가 스님도 없는 절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도 했다.


연락이 없는 친구를 찾아 오색으로 향했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들어서자 오색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오색이라는 푯말이 보이자마자 나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 중턱에 자리 잡은 오색까지 도로변과 계곡 곳곳에는 나와 친구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차량속도와 맞추어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속초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 오색이다. 오색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은 이미 뛰고 있었다. 어디선가 친구가 달려 나올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0년이나 흘렀다. 40년의 세월은 산속의 작은 마을을 유명 관광지로 바꾸어 놓았다. 입구에서부터 대형 주차장이 시작되고, 길 양옆으로는 식당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길이 하나 더 생기기까지 하여 새로운 마을이 생겼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친구와 재잘거리며 걷던 그 길은 모두 콘크리트로 바뀌었고, 나지막한 한 지붕의 주택들은 모두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걸음의 속도가 느려졌다. 추억 하나에 한걸음 한걸음을 싣는 것처럼...


친구는 형제가 9남매로, 오빠가 3명, 언니가 3명, 동생이 2명이었고, 나는 7남매로 언니가 1명, 남동생이 3, 여동생이 3명이었다, 두집 다 형제가 많기로는 똑같지만, 나를 기준으로 위야 아래야에 따라 집안에서 위 위치가 달라졌다. 나와 입장인 정반대인 친구를 부러워했던 점도 언니와 오빠가 많은 점이었다.


친구는 언제나 언니 오빠들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나는 동생들을 보호해야만 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혼자 결정해야 했고, 동생들까지 건사해야 했기 때문에 사랑만 받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늘 명랑 쾌활했고, 난 언제나 주눅이 들어 있었다.



방학이 시작되면 나는 으레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방학 내내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식들이 많았음에도 친구 부모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자식과 같이 대해 주셨다. 어머님들끼리도 나중 알게 되어, 양쪽 집안에서 자고 가는 일은 용납이 되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많아도 나를 친구와 똑 같이 대해 주었다. 오빠들과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보다 친구 집이 더 편안했고, 좋았다.


친구네는 오색에서 상점(편의점)과 여인숙을 운행했다. 상점은 부모님이 관리하셨기에 주거를 달리 하셨고, 겨울 동안은 손님이 없어 형제들 차지였다. 여인숙 앞에는 오색천이 흘렀고 약수가 쉴 새 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장작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어쩌다 드는 손님방을 청소를 하며 보냈다.


오색약수터가 다가오자 가슴이 점점 옛날로 빠져 들었다. 약수밥을 하기 물을 뜨다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오빠가 찾으러 왔던 일, 짓궂은 장난을 치던 아저씨를 피해 도망가던 일, 약수터에 앉아 친구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자고 약속을 걸었던 일...


약수터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동네 남자아이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남자아이들이 말을 걸면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친구 오빠가 달려오는 것이 보이자 남자아이들은 모두 도망을 가버렸다. 남자아이들은 오빠들이 무서워 감히 우리 주변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든든했다.


약수터 근처 모든 집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약수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던 그 친구와의 추억을 찾으려 해도 모두가 바뀌어서 흔적도 없었다. 바위틈에서 졸졸 흐르던 약수도 거의 나오지 않았고, 자연 그대로였던 약수터 주변으로는 시멘트가 둘러쳐 있었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탐방안내소와 야생화가 심어진 화단이 있었다. 화단에 피어있는 구절초를 들여다보았다. 구절초 꽃을 꺾어 흐르는 물에 꽃잎을 흘려보내며,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오래 같이 하자던 약속을 깨고 내가 먼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3년 만에 친정집으로 왔을 때 어머니는 연락이 두절된 나를 찾아 친구가 왔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오색으로 달려갔고 오빠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는 " 이 녀석 그동안 연락도 안 하고, 뭐했냐"며 꿀밤을 먹였다.

" 네가 그렇게 사라지고 동생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 " 내가 너네 집에도 몇 번 갔다"면서


그 이후 친구랑 만나게 되었고, 또 몇 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는 꿈속에 두어 번 나타났다. 꿈이 이상하여 연락해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때였다. 우린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통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연락은 하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소식이 오니까..


그런데 이번엔 너무 길다. 5년이 지났다. 왜 연락이 없는 것일까.. 전화도 안 받는다.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기 때문에 설령 연락처가 바뀐다 해도 연락이 가능한데 말이다. 친구는 퇴직하고 둘이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자고 했다. 복지분야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그쪽 분야에 꾸준히 관여하고 있기도 해서 친구는 복지 파트를 나는 행정파트 담당하기로 했는데... 아직 퇴직하려면 시간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 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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