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인생은 엄마를 닮는다 ?

by 속초순보기

점심을 먹고 잠시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임에도 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막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 10여분을 남겨두고 복도에 서서 커피를 마셔야 하나, 아님 바로 업무에 복귀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딸아이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순간 나는 아!! 내가 기대하던 소식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전화기 폴더를 열자 전화기 바탕화면에 딸아이의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가져가면서도 계속 두근거렸다.

예감처럼 딸아이는 “ 엄마, 나 임신이래” “ 그래? 오!! 축하해 축하해” “ 아빠한테는 네가 이야기할래? 아님 엄마가 할까?” “ 응, 엄마가 이야기해줘. 나도 일 들어가야 해서.” “ 알았어. 앞으론 몸조심 특별히 하고. ”


전화를 끄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너무 기뻤다. 당장이라도 아무에게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져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참아보려고 해도 절로 웃음이 나왔고,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구름 위에 있는 듯했다.

먼저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나도 할머니 된데” “ 그래? 야 ~~ 우리 oo 이 벌써 엄마가 되는구나. 어릴 때부터 고생 많았는데, 엄마가 되다니, 몸조심하라고 일러라 ” 하시면 몹시 기뻐해 주셨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도 여전히 가슴은 뛰었고, 이제 막 소식을 들은 뱃속의 아이가 궁금해졌다. 전화를 걸어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화장실 가는 틈을 이용해 남편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아이의 출산 준비물은 우리가 다 마련해주고, 낳으면 어디를 가든지 데려가고, 어디 어디 갈 때도 꼭 데려가자며 한발 더 앞서가며 남편은 기뻐했다.


퇴근한 후에도 우리 부부의 이야기는 뱃속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은걸 참고 또 참았다.

직장동료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연히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끙끙거리고 있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사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주변 사람들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 oo랑 병원 다녀왔어? 어때, 건강하지? 몇 주나 되었어?”라며 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전화 통화가 끝나자 동료들이 젊은 할머니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고, 딸내미는 엄마가 젊어서 좋겠다며, 다들 기뻐해 주었다.


일상의 모든 중심은 뱃속의 아기에게 맞추어졌다. 아이의 성장 소식을 매일매일 듣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고 싶은걸 참고 기다리다가 속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나에게 딸은 내 목숨 이상이었다. 남편은 딸을 낳고 한 달 만에 군에 입대를 했었다. 강원도의 산골 중 산골에서 나와 딸은 아빠 없는 동안 힘든 세월을 함께 보냈다.


내가 직장을 잡고 읍내로 나왔을 때는 세 살도 안된 딸내미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어린 딸내미가 아침마다 엄마품을 벗어나 어린이집에 가면서도, 한 번도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없이 씩씩하게, 유아원 버스에 올랐고, 9년 만에 제 동생이 태어나자 직장 생활하는 엄마를 대신해 방과 후와 방학 때 동생을 보살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가끔씩 장학금을 받아 오기도 하고, 자기가 학고 싶었던 문학 작가의 꿈을 버리고, 벌어먹어야 한다며,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선택하여 갔다. 대학 졸업을 한 후에는 한 번에 취직을 하였고, 타이트하고, 힘든 직장생활도 잘 견뎌내면서, 같은 직장에서 사위를 만나 결혼생활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결혼식에도 나는 돈한 푼 들이지 않았다. 벌어 놓은 돈으로 세간살이를 장만하고, 전셋집을 마련했다. 어릴 때부터 고생만 시킨 딸이기에 더욱 고맙고 미안했다. 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글로 쓴다면 책 서너 권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함께 한 딸이기에, 딸이라는 말 자체만으로 눈물이 났다. 너무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뭐 하나 버릴 게 없고, 나한테는 든든했던 그런 딸이 임신을 한 것이었다

딸이 임신을 했다고 하니, 누구 말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했고, 행복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에게는 그동안 딸에게 못해준 것들을 모두 그 아이에게 해주어야지 하고 결심을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미안한 맘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기회 될 때마다 출산용품을 보러 다니고, 아이를 데리고 어디 어디 여행도 가자며, 계획을 세웠다. 아이의 용품을 친가 할머니가 준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지내다 보니 드디어 출산일이 다가왔다.


출산일 아침 출산 조짐이 보인다며 병원으로 간다는 사위의 연락이 있었다. 그렇담 우리도 가야지.. 우리 부부는 출근하자마자 휴가를 받아 서울로 향했다.

미시령 톨게이트를 지나자 설악산 여기저기에는 분홍빛 산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푸르름은 더해갔다. 창문을 열어 지나가는 바람을 만져 보았다. 따뜻한 봄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지나갔다. 따스한 바람의 느낌이 좋았다.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좋은 날 우리 손주가 태어나다니, 분명 자연도 우리를 축복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의 속도를 계속 올리는 남편을 보며, “ 우리, 진정하자,, 괜히 달리다 아이들도 못 볼라” 하며 속도를 낮추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심 더 빨리 달리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국도 주변의 산에는 연초록의 나뭇잎과 하얀 꽃들과 핑크 꽃들이 지천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아름 다운 자연 풍경들을 보며, 딸아이의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산골에서 아이와 함께 들로 산으로 다니며, 나물을 뜯고,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며 행복했던 일이 생각났다.


모유가 적어 크는 내내 배고파했던 모습이 떠오르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참 고생도 많이 시켰구나. 어른이 될 준비도 안 하고 아이부터 낳고.. 그 고생을 우리 딸이 대신했구나...

생각이 아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에서 있던 남편도 훌쩍 거리는 것 같았다. 남편은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 못한 것을 줄곧 아쉽다며 자주 이야기했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서울 초입에 들어서자 출산을 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빨리 도착하여 상황을 살피고 싶은데, 서울은 도대체 왜 이렇게 차가 많고, 죽죽 달려가면 되는데 왜 정체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소심한 불평을 해댔다.

병원에 도착하여 사위를 보니 연신 싱글벙글했다. 아니 사위는 흥분 상태였다. 출산은 잘했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가고 산모는 후 처치를 받고 있으니 금방 병실로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그런데요, 어머님 ” 응? “ 주저하고 있는 사위의 얼굴을 보니 출산을 하다 잘못되었나? 아기에게 나쁜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 아기가 글쎄 oo랑하고 똑같아요 “ ” 뭐야 , 괜히 걱정했잖아!! “

우리 모두는 산모를 기다리며 지난밤부터 지금까지의 출산과정을 사위로부터 들으며 막 부모가 된 딸을 기다렸다. 드디어 딸이 엄마!! 하며 나왔다. 딸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후 우리 모두는 신생아실로 달려갔다.

면회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너무 떨리고 설레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 말 없이 신상아실 커틴이 쳐지길 기다리며, 창문만 응시했다. 드디어 커틴이 쳐지며, 자고 있는 우리 손녀딸의 모습이 나타났다.


태명 사랑이를 부르며 눈을 떼지 못했다. 간호사가 볼을 살살 문지르자 꼬물꼬물 하기 시작했다. “ 오!! 움직인다 움직인다” 하며 모두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졌다.


큰아이는 3일 진통 끝에 병원으로 가게 되어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고, 둘째는 수술로 낳아서 3일 만에 보았기 때문에 막 나온 신생아를 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손녀가 왔다. 아직도 그때의 감격과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내 생에서 최고의 선물이었고, 아직도 설레고 흥분된다.


손녀딸은 벌써 커서 9살이 되었고, 맞벌이하는 제 부모를 대신해 동생까지 보살핀다.


친정어머니는 늘 나에게 " 딸은 엄마를 많이 닮는다." 말씀하셨는데, 아빠 군대 간 기간 동안 어리광 한번 안 부리고 어른스러웠고, 맞벌이하는 제부모 대신 동생까지 보살폈다. 그런데 지금 손녀딸이 제 엄마처럼 한다. 안쓰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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