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이 두렵다. 아침 7시 30분이 두려운 이유는 크리스마스이브부터 크리스마스날 새벽까지 내린 폭설 때문이다. 폭설은 55.9cm로 하룻밤 사이에 내렸다. 아니 몇 시간 만에 내렸다.
눈폭탄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흐리기 시작하고, 일기예보에 폭설이 예고된 터라 직장에서는 일찌감치 비상근무 명령을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큰 도로 옆이다. 밤새 제설차량의 비상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 걸어가기로 했다. 운전이 서투르기도 하지만 도로 전체가 눈에 덮여, 분간을 할 수가 없다. 폭설은 한순간에 속초를 정지시켜 버렸다. 도로에는 차들이 멈추어 섰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7시 30분.. 첫째 날 지각했다. 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30분 이상 걸렸다. 미리 와서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 눈초리가 모두 나를 향해있었다. 무엇이라고 핑계를 대야 하나,,, 머릿속은 계속 이유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해 솔직하게 말해 버렸다. 사실 동료들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다.
재난재해를 대비해서 과별로 담당 구역을 정해 놓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출동했기 때문에 몸은 알아서 현장으로 향한다. 삽 한자를 어깨에 메고.
다행히 눈은 가벼워서 작업이 쉬었다. 첫날이기 때문에 힘이 넘쳐났다. 쉬지도 않고 삽질을 했다. 오전 작업 분량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점심을 먹으니 꿀맛이다. 야~ 역시 몸 쓰는 게 좋다. 머리 쓰면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아무 생각 없이 몸 쓰는 것이 좋구나... 역시 사람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최고다. 게다가 단순하면 더 좋다.
1시가 되자 또 삽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도로변으로 나간다. 또 열심히 삽질한다. 한삽, 두삽, 세삽... 영하 8도인데도 땀이 난다. 몸에서는 땀이 나는데, 짧은 앞머리에는 고드름이 매달렸다. 마스크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입김에 앞머리가 바로 얼어 버린 것이다.
시간은 왜 빠르게 흐리지 않을까. 10 삽을 뜨고 시간을 봐도, 5 삽을 뜨고 시간을 봐도 그 시간이다. 힘들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이 내가 삽질한 길을 걷는다. 어쩌다 고생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다. 또 어쩌다가 지나가는 사람은 제설작업 제대로 안 한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지나간다.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속만 끓인다.
과거 이런 일도 있었다. 행정의 일이라는 것이 법과 지침에 의해 처리하는 일인데, 아무리 법과 지침을 들이대도 욕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 “ 너네 내가 내는 세금으로 돈 받으며, 이따위 밖에 못해!!” 하며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나의 월급이 국민의 세금인 것 맞는데.. 과연 저 사람이 어느 정도의 세금을 내면서 저럴까? 궁금해진다.
어쨌든 나는 동네북이다. 누구든 와서 자신이 소유한 힘의 무게로 강하게도 치기도 하고, 약하게 치기도 하고.... 그래도 북은 소리라도 나지... 난 소리도 낼 수 없는 동네북이다.
도로 건너편에도 동료들이 삽질을 한다. 그런데, 건너편 인도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타났다.
여자 둘이 눈 위에 머리를 박고 삽질만 하고 있으니, 안쓰러운지 지나가던 아저씨가 삽을 달라더니 눈을 치기 시작한다. 눈 치우는 속도 좀 보소!! 최신형 무기를 장착한 로켓처럼 순식간에 치고 나가신다. 건너편에서 삽질을 하는 나는 부러운 듯 쳐다봤다. 부럽다...
아저씨는 30분 정도 더 치워 주시고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너무 고마워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럴 때 내가 속초시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인도 끝이 보인다. 야호!! 다 치웠다. 그럼 집에 가도 되지? 뭐라고? 다른 구역에 투입된다고? 아... 천천히 칠걸.. 왜 손은 빨라가지고,
오후 4시가 돼서야 첫날 제설작업은 끝이 났다. 사무실로 돌아와 잠시 몸을 녹인 후 일어서니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굽힌 다리가 펴지지 않는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바닥은 발갛고 아프다.
차도 없고, 택시도 없다, 하지만 불법 주차 차량은 도로변에 즐비하다. 눈이 오면 차를 세우면 안 되는데 도로 양옆으로 세워 놓는다. 이러면 제설차량이 작업을 못한다. 하다못해 다음날은 차량을 이동해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3일째 그 자리에 서있는 차량도 있다. 심지어 전화도 안 받는다) 화가 난다. 열 받는다.
어이!! 열 받지 말고 얼른 집으로 가 주무시게나 ~~ 낼 아침 7시 30분까지 출근하라고 문자 왔잖니 ~~
자리에 누우니 사방이 아프고 기침까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다. 근육이완제를 사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왜 난 맨날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후회할까.. 한심하다. 한심한 나를 비웃듯 도로에서는 제설차량이 계속해서 삐용삐용 하면서 지나간다. 잠을 설치다 3시에 잠이 들었다.
7시 30분!!, 또 7시 30분!! , 또다시 7시 30분. 4일째 연속 문자가 온다. 문자 속의 아침 7시 30분이 두렵다. 체력도 고갈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