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막걸리 대신 이스트를 사용했다. 우리 형제들은 죽 둘러앉아 어머니의 손놀림을 보며 내일 아침 먹게 될 찐빵의 맛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어머니에 의해 반죽이 된 밀가루가 아랫목에 자리를 차지했다. 아랫목에 반죽을 묻어 놓으신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이미 팥을 물에 불려 놓으셨고, 불린 팥을 조리를 사용해 돌을 골라내고, 깨끗하게 씻었다. 장작불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씻어진 팥을 솥에 넣었다.
방에 있는 우리 형제들은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로 몰려가 앉았다. 불이 점점 활활 타오르자 솥에서는 김이 나기 시작했다. 김이 올라오자 어머니는 솥뚜껑을 열었다. 뜨거운 김이 어머니의 얼굴에 부딪치더니 모여 앉아 있는 우리의 얼굴까지 덮쳤다. 우리는 일제히 앞이 안 보인다며, 달아나듯이 부엌 밖으로 피신을 나갔다. 어머니는 우리의 이런 행동에도 아랑곳 않고. 큰 주걱으로 팥을 젓기 시작했다.
마당에서 형제들끼리 숨바꼭질이랑 자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랫목 이불을 들쳤다. 밀가루 반죽에서는 술 냄새가 확 올라왔고, 뽕뽕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다시 마당으로 나와 동생들과 편을 짜서 말타기를 한참 하는데 이번에는 동생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아랫목에 묻어둔 반죽이 궁금해진 우리 형제들은 들락거리며 이불을 들쳐보았다. 반죽이 불쑥 올라오기 전까지는 이불을 들썩 거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어머니는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한참을 가마솥의 팥을 저었고, 밖에서 신나게 놀던 우리 형제들은 아랫목 반죽과 함께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랫목에 있던 반죽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부엌으로 달려 나가, 반죽이 없어졌다며 울상을 지었다. 어머니는 빙긋이 웃으며 가마솥 뚜껑에 올려져 있는 쟁반을 가리켰다. 쟁반에는 쪄지기 전의 찐빵이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지난밤 어머니는 우리가 잠든 사이 찐빵을 다 빚어 놓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아궁이를 가리켰다. 가마솥에는 나뭇가지 위에 짚이 깔려 있었다. 어머니는 베보자기를 깨끗하게 씻어 그 위에 깔았다. 그리고 빚어놓은 빵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신기한 듯 쳐다보자 어머니는 손을 씻고 와서 차례차례 보자기 위에 빵을 올려놓으라고 했다.
쟁반 위에 놓여 있던 빵을 떼어내려고 하자, 쟁반에 달라붙어 있던 빵이 모양대로 떨어지지 않고 한쪽 구석이 축 늘어져 일부에 구명이 생기며 팥이 보였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다 쪄지면 너의 빵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빵을 쟁반에서 떼어낼 때 실수를 만해 해보려고 어머니의 손놀림을 유심히 살펴본 뒤 그대로 따라 했다. 익숙해진 탓인지 빵은 더 이상 망가지지 않았고, 가마솥으로 옮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가마솥에 원을 그리듯 빵을 동그랗게 앉혀 놓고 솥뚜껑을 닫았다. 다 쪄지면 동생들과 함께 먹자며, 아까 네 빵 잘 기억해 두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장작불이 점점 활활 타오르자 솥에서는 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찐빵이 궁금하여 솥뚜껑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듯 어머니는 금방 쪄진다며 방에 들어가 동생들을 깨우라고 했다. 가마솥의 찐빵이 궁금한 나는 동생들을 몇 번이고 흔들어 깨웠다.
장작불은 이미 위세를 다해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들도 가마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머니가 솥뚜껑을 열자, 김이 부엌 천장까지 퍼졌다. 솥 안에는 윤기가 흐르는 찐빵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모두는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
어머니는 뜨거운 찐빵을 먼저 동생에게 주고, 나를 비롯해 차례대로 동생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건네며, 뜨거우니 조심해서 먹으라고 했다. 보드라운 찐빵 속에는 팥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잘 쪄진 찐빵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빵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는 접시에 빵을 담으시기 시작했다. 빵을 접시에 담는다는 것은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는 어머니의 행동임을 알아 채린 나는 그제야 오늘이 동생 생일이라는 것은 눈치챘다.
어머니는 우리 8남매의 생일날에는 어김없이 찐빵을 만들었고, 이웃에 나누어 주었다.
빵을 이웃에 돌리는 사람은 그날의 생일인 우리 형제들 중 한 명이었고, 돌아올 때는 빈 접시 인적은 없었다.
이웃집에서는 " 벌써, 이렇게 컸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네,," 하시며,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 때는 연필, 공책 등 문구류가, 어린 동생이 들고 갈 때는 과자나, 사탕이 담겨 있었다. 어떤 때는 막걸리 인적도 있었지만.
아침 핸드폰을 열자마자 동생의 생일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오늘 아침도 찐방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며,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부엌 아궁이 앞에 모여 앉아 찐빵이 쪄지기 기다리던 형제들과 어머니가 생각났다.
난 아직도 브레드 보다 찐빵을 좋아한다. 어머의 수제 찐빵의 달콤한 맛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하고 쫀득쫀득한 반죽에 부드럽고 단 팥소가 어우러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가마솥에 피가 찢겨 팥이 보이던 찐빵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