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에 평상에는 우리 형제들이 엄마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누워 있었다. 모기들이 웽웽거리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렸다. 모기에 물린 동생들이 다리를 긁기 시작했고, 모기에 약한 동생의 입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옆에 딱 붙어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엄마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일어섰다. 그러더니 마당에서 이웃으로 향하는 길에 자라고 있는 쑥을 베어 와서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불단 옆으로 달려가 엄마와 함께 책받침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한여름 물기 많은 쑥이 제대로 탈 리가 없었다.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자 웽웽거리던 모기들이 일 순 조용해 졌다.
그제야 엄마는 다시 평상에 올라와 누었다. 우리도 먼저 누웠던 순서대로 따라 누웠다. 엄마 옆에는 어린 동생들이 누웠고 나는 좀 멀리 떨어져 누웠다. 엄마 옆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 누운 나는 엄마에게 비롯 내가 떨어져 있지만 나만 보고 자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러마 하고 대답을 했고 동생들은 자리에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엄마를 살며시 불러 보았다 “ 엄마, 자?” “ 아니?”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엄마 옆으로 가서 자고 있는 동생들을 밀어내고 엄마 옆에 누웠다.
여름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이따금씩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고, 안방에서는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욱 바싹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
엄마는 그때부터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한국전쟁으로 형제들과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큰오빠인 외삼촌이 양양 원산 간 철도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원산에서 살고 있었고, 한국전쟁이 발발 하자 가족 모두 원산으로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고향을 떠날 수 없어 이모를 비롯해 자식들만 딸려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막내였던 엄마는 외할머니 곁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큰오빠(외삼촌)를 따라 가다 동네 밖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 이후 38선이 그어지고 형제들을 만나지 못하고, 외할머니와 둘이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엄마도 엄마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더니, 그래도 너희들을 낳으니 살겠더라며, 꼭 내가 엄마를 닮아 엄마만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너희 형제들은 꼭 헤어지지 말고 우애 좋게 살라면서 이다음에 시집가면 집에 올 때(신행) 뭐 해가지고 올래? 물으셨다.
나는 즉시 “ 기계떡” 하고 대답했다. 기계떡은 지금으로 말하면 절편이다. 쌀을 불려 곱게 갈아 찐 후 기계에서 쭉쭉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떡이라 기계떡이라고 불렀다. 기계떡을 해오겠다는 말에 엄마는 몹시 좋아하며 꼭 기계떡을 해 오라고 하셨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떡을 만든다는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명절때나 제사에는 꼭 만들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떡이 기계떡이었다. 기계떡은 막 나왔을때 들기름을 발라 먹으면 정말 맛있었고,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계떡은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처음 막 나온 떡이 가장 맛있었지만, 딱딱해지면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구워 먹기도 쉬웠고, 장작 불위에 올려 굽기도 하고, 떡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아궁이 앞에서 떡을 구워 먹을 때는 똑같은 크기로 자르지 않으면 우리 형제들은 으레 네 것이 크다며 다투었다. 티격태격하는 우리 모습을 본 어머니는 언제다 지긋이 쳐다만 볼뿐 관여를 하지 않았다. 엄마의 방관 속에도 우리 형제들 우열은 확실해서, 맨 나중 받아 드는 사람은 늘 막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제들의 이런 모습과 풍경에 기계떡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떡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불쑥 그럼 자기는 기정떡을 만들어 오겠다고 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이었다. 모깃불이 다 타서 다시 모기가 극성을 부리자 동생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는 동생들에게도 “ 너는 기계떡, 너는 기정떡, 너는...” 하면서 동생들이 말하는 데로 떡의 품목을 미리 다 정해 주었다.
막내까지 떡을 다 정해 주고 모두 자려고 하자 막내는 자기는 떡이 싫다며 울기 시작했다. 막내는 엄마에게 공주 같은 예쁜 옷을 사주겠다며.
한여름밤 달빛은 점점 투명해지며 환하게 비쳤다. 담 밑에는 달빛에 호박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꽃잎을 따다 엄마 얼굴에 붙이고, 서로의 얼굴에 붙이며 우리 모두 깔깔대며 웃다 잠들었다. 그 이후 우린 모여 앉으면 떡 이야기로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그 좋아하시 던 기계떡을 해드리지 못했다. 내가 성장했을 때는 이미 떡이 흔해졌고, 더 좋은 먹거리들이 즐비했기 때문에 굳이 안 해드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바뀌었어도 동생들은 엄마와 한 약속의 떡을 다 해드렸고, 막내는 틈만 나면 엄마의 옷을 사다 드렸는데, 나는 왜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
지금의 나는 시장 갈 때마다 떡집 골목에서 후회한다. 가래떡을 구워 파는 것을 봐도 후회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기름 바른 기계떡(절편)과 함께, 어머니에게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