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가정형편이 좋지도 안았고, 8남매를 다 공부를 시키기도 힘들었고,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식은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아는 사람을 통해 아름아름 취직이 되고 있는 터라 일반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아버지는 동네에서 누구네 집 딸은 공무원이래.. 하는 소리를 가장 듣고 싶어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바람을 나는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선 후 바로 남편을 따라 산골로 숨어 버렸다. 그런 나에 대해서 동네에서는 공부를 시켜놨더니 아무 소용이 없다더라, 자식을 그렇게 밖에 못 키웠네.. 하며 험담을 많이 했고, 아버지 형제들로부터는 못난 부모라는 딱지를 붙이게 되었다.
3년이 지난 후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도 공무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시고, 공무원은 결혼을 해도 가장 다니기 좋은 직업이라며, 또다시 공무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7년 후 큰아이가 1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바라던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공무원이 된 이유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뻤다.
아버지는 자주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찾아오셨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근무에 지장을 받는 일도 있었고, 점심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고, 출장을 나간 나를 무작정 기다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하나, 공무원 딸을 보기 위해서였고, 점심시간에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은근히 내 자랑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오시는 날에는 항상 근무지 근처에 있는 중앙시장에서 순댓국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순댓국을 먹으며, 티격태격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먹는 순댓국이 가장 맛있었고,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어느 해 연말 포상으로 기관장 표창을 받으며 부상으로 손목 시계를 받게 되었다. 손목시계는 남자용이었고, 의례적으로 주는 부상이어서 상장과 함께 책상 위에 던져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계는 집으로 놀러 오신 아버지의 눈에 띄었고, 아버지의 시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행이 한참 지난 양복을 입은 아버지가 근무지로 찾아오셨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입은 양복 입은 아버지의 모습은 어색해 보였고, 어울리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팔목을 주시하는 아버지의 행동도 이생했다.
순간 아버지의 뇌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그런데 아뿔싸!!
아버지의 손목에 내가 부상으로 받은 시계가 있었다. 부상으로 받은 시계를 차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까지 입으셨던 것이다.
" 시계에 ooo시장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며 손목의 시계를 보며 " 너에게 부상으로 시계를 주신 ㅇㅇㅇ 시장님에게 인사드리러 왔다"는 것이다. " 그 시계는 부상으로 받은 거라 그럴 필요 없다"라고 말씀 드려도 사람은 예의가 있어야 한다며 빨리 앞장을 서라며 재촉했다.
쭈뼛거리며 난감해하는 나를 아랑곳 않고 청사로 들어가시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직진하는 아버지를 가로막으며 " 시장님은 미리 약속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 " 지금이라도 잡으면 된다. " 하시며 막무가내셨고 , 물러 서려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시장님이 말단 직원인 나를 알리도 없는데 어떡하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출장 중이라고 둘러 댔다.
그제야 아버지는 아쉬운 듯 포기하시고, 순댓국 한그릇을 후딱 드시고 돌아가셨다.
근무 중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 속 이야기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안 계셨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싶었다. 어디로 가셨지... 점점 절망적이 되어가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버지를 찾았다. 어디에도 없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모두 모른다고 했다. 그때 한 아저씨가 " 그 아저씨 손목시계에 이름이 있던데, 그 사람이냐"라고 말하면서 공원 벤치로 가 보자며 동행을 해 주었다.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축 쳐진 뒷모습만 봐도 아버지였다. 한걸음에 달려가 “ 아버지!” 하고 부르니 “ 어? 어떻게 왔어? ”. 아버지의 모습은 온몸이 먼지 투성으로, 손에는 상처가, 발에는 신발 한 짝만 신고 계셨다.
동행 해준 아저씨가 전화를 주신 분이셨다. 잘 걷고 있던 아버지가 휘청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고, 쓰러지면서 손목을 가리켰다고 하셨다. 손목시계에는 " ㅇㅇㅇ 시장, "이라는 글씨와, 시계줄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어서, 바로 직장으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부상으로 받은 손목시계 덕분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되다니..
다행히 아버지는 병원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자주 근무지로 찾아오셨다. 손목시계 덕분에 살았다는 아버지가, 시장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가자는 말씀을 하지 않는 것만은 다행이었다.
부상으로 주어지는 손목시계는 나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도 받는다는 것을 아셨던 것일까.
아버지가 사랑한 직업 공무원을 나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고, 이제 퇴직을 앞두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시계를 간직하셨다. 이제 나도 그시계를 놓아야 할 시간이 다가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