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어머니

by 속초순보기

일제강점기 시대 전쟁물자인 철을 운반하기 위해 일본이 만들어놓은 철둑길 아래 집이 있었다. 철뚝길 아래에는 철뚝길을 따라 열 집 정도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그 열 집 중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집 뒤를 달리던 철길을 달리던 기차는 멈추었고, 철길에는 대형 트럭이 하루 종일 달렸다. 철뚝길 아래 살고 있는 집들은 모두 흙먼지와 소음을 그대로 받아 드리며 살 수밖에 없았다. 고단한 일상에 먼지와 소음은 철뚝길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또다른 힘듬이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철뚝길을 오르내리며 잘 도 놀았다.


먼지와 소움에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먼지와 소음을 막기 위해 철둑길 언덕에 벚나무와 아카시아를 심어 완충지대를 만들었고, 자투리 공간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우리도 텃밭을 만들었고, 텃밭 한귀퉁에는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거름을 주지 않아도 쑥쑥 컸다. 쑥쑥 커가는 오동나무를 보며 어머니는 내가 시집을 갈 때 가구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매년 봄 오동나무 잎이 싹이 틀 때면 어머니는 잊지도 않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시집을 간다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해마다 쑥쑥크는 오동나무를 보며 우리도 자랐다.


그해 봄에도 오동나무는 봄볕에 쑥쑥 자라기 시작했고, 오동나무 잎이 내 얼굴을 덮을 만큼 자랐다. 오동나무 아래에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가에서 설 걸이를 하던 어머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의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나는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커다란 오동나무 잎에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동나무가 한해 한해 커가는 걸 보니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고 하시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한참을 어머니 생각에 빠져 계시던 어머니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날의 이야기흘 하기 시작하셨다.



가을 들판에는 노랗게 벼가 익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벼가 익고 가고 있는 논두렁 위를 나를 업고 달렸다. 어머니의 등에서 나는 수없이 이마와 코를 찧었다. 등에 내가 매달려 있는 것조차 잊어버린 어머니가 달려간 곳은 외갓집이었다.


이미 마당에는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있었다. 마 등으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이웃들은 길을 터주며 안방으로 어머니를 들어가게 했다. 신발을 벗어던지듯 달려 들어가 안방에는 외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큰 소리로 울었다.


등에 업혀서 있던 내가 영문을 몰라 같이 엉엉 울었다. 나의 우는 소리에 어머니는 포대기를 푸르고 내려놓았다. 계속되는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 함께 울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머니는 왜 우시는 걸까... 장사 집에 가서 한참 울다가 " 누가 죽었느냐"라고 물어보는 꼴이었다.


어머니의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모두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어머니는 나를 챙기셨고 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틀 후 나는 다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어머니의 앞에서는 알 수 없는 글들이 적혀 있는 천이 매달린 긴 장대를 든 사람들이 양옆으로 나뉘어 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빨갛고 노란색으로 된 천이 덮여있는 작은 집(상여)을 메고 있었다. 가장 앞쪽의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면 뒷사람들이 따라 했다.


이 많은 사람이 메고 가는 것은 무엇이고, 어디를 가는데 노래를 부르고 가는지, 또 노래는 왜 슬픈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장대를 든 사람도, 작은 집을 멘 사람들도 모두 흰옷을 입고 있었다. 나만 유일하게 입던 옷 그대로였고, 뒷따르던 어머니는 내내 우셨다.


어머니는 울었다가, 멈추었다가를 반복하며 걷고, 산으로 올랐다. 산등성이를 한참 오르고 도착한 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커다란 구덩이를 파 놓고 있었다. 어머니와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다가 작은 동산이 만들어진 후에서야 멈추었다. 사람들이 작은 동산 앞에 음식을 펼쳐놓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차례가 되자 어머니는 작은 동산에 엎드려 무슨 말인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울음소리에 나도 슬퍼지기 시작하여 울먹울먹 하다가 엉엉 대며 울었다. 어머니가 왜 우는지, 내가 왜 우는지 영문도 모른 채 울었다. 외할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다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말씀을 다 듣고 난후 나도 그날의 기억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날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냐며 놀라셨다. 내가 3살 때의 일이라는 것이다. 내 기억의 첫 번째가 어머니에게는 슬픈 기억이었다.


그때의 일은 왜 잊히지도 않을까. 가장 큰 산처럼 든든했던 어머니가 한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을까. 먼 훗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올 것을 예상을 했던 것일까..


지금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외할머니의 산소 옆에 수목장을 치렀다.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는 항상 3살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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