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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Jan 14. 2022

홀로서기 첫날


산골의 11월은 추웠다.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에 집들은 이따금씩 한 가구씩 들어서 있었다. 집들이 뚝뚝 떨어져 있어 그렇지 않아도 외롭고 쓸쓸하던 산골은 추위로 스산함까지 깃들었다. 



지난여름 시험에 응시하고, 면접을 보고 발령을 받았다. 발령을 받고 어머님과 둘이 발령지 근처로 방을 얻으러 다녔다. 면소재지의 농촌마을에는 집을 빌려주려는 집이 없었다. 


오전 내내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녀도 방한칸도 구할 수 없었다.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가 울기 시작했고, 우리도 지치기 시작했다. 요기라도 때우기 위해 마을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상품도 변변치 않았다. 먹을 거라고는 단팥빵이 전부였다. 아이를 내려 마른 빵을 뜯어 먹이려는데, 가게 여주인이 못 보던 사람들이라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며 물었다.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방을 얻으려면 인근 면소재지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면소재지로 나가 집을 구하면  교통편이 문제였다. 낙담한 얼굴로 서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안주인에게 동네에서 방을 내줄 수 있는 집이 없느냐고 물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주인은 괜찮다면 자기네 집에 방하나에 부엌 하나가 비어 있는데, 쓰겠냐는 것이었다.


이게 웬 행운인가 싶어 당장이라도 계약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주인집 가게로 통하는 문이 달린 방에 부엌이 딸려 있었다.


방문을 열자 농촌의 특유한 냄새와 한기가 확 달려들었다. 오랫동안 비워 논 듯 방은 을씨년스러웠다.  방 한쪽 구석에는 농사로 걷어 들인 곡식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부엌에는 연탄불을 지필수 있는 아궁이와 부뚜막만 있었다.   



 집을 계약하기로 하였다. 그때가 1987년으로 월세는 2만 원이었다.


그 길로 어머님과 읍내로 나와 세간살이를 구입했다. 세간살이라고 해봐야, 공기, 국그릇, 수저 2개, 냄비 1개, 밥솥과 이 불 한 채, 쌀 한말이 전부였다. 구입한 세간살이를 임대한 방에 밀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 세 살이 된 아이는 당분간 어머님이 보살펴 주기로 했다. 직장생활이 익숙해지고 어린이집이 구해지면 그때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방을 구하고 온 뒷날부터 바빠졌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님의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 아이의 옷가지들을 세탁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 저 어린것을 어떻게 떼어 놓고 나갈까.." 밤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엄마가 갑자기 없어지면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은 길고 긴 겨울밤만큼 길었다. 그래도 마지막 남는 고민은 아이를 어떻게 떼어 놓아야 하는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고 걱정이었다.



분가를 하기로 한날은 빠르게 다가와 내일이면 이제 집을 나가야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 엄마가 여섯밤 자고 올게,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 


" 응? "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웃는 얼굴로 쳐다봤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것은 아는지 늦게 까지 자지 않으려고 했다.


잠자는 아이를 밤새 바라보았다. 아이는 웃다가, 찡그렸다가 하면서 입을 오물거리며 잤다. 그냥 이대 로날이 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어머님보다 일찍 부엌으로 나와 아침밥을 준비했다. 3년을 함께 산 며느리가 분가를 한다고 하니, 시부모님께서도 서운하신지 밥상에서도 아무 말이 없으셨다.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끝내고, 간단한 짐을 챙겨 마당으로 나섰다.


어머님은 아이 걱정은 말고 직장 생활 잘하라며 당부하시며, 입었던 몸빼 바지춤에서 돈을 꺼내 주셨다. 슬쩍 보아도 그 돈이 많지 않음은 알 수 있었다. 


아이는 길 떠나는 엄마의 뒤를 달리듯 따라 나왔다. " 어떻게 놓아두고 나갈 수 있을까..." 아이를 들어 올려 꼭 안아 주고 어머님에게 건넸다. 잠시 외출 후 오는 줄 알고 있는지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손을 흔들었다.


혼자서 재를 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산골로 들어올 때는 남편과 함께 들어와서 나가는 것은 혼자였다.


깊은 산골의 길은 울퉁불퉁하여 걷기 쉽지 않았고, 혼자 걷는 산골길은 무서웠다.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재를 넘었다.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꼭 아이를 버리고 혼자 살자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걸어온 길을 자꾸 뒤돌아 보았다.  


재를 넘어 읍내로 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아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남편과 함께 들어올 때 보았던 풍경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재를 넘을 때는 모든 풍경이 정겹고, 다정하게 다가오는듯했다.


그런데 지금의 풍경은 처음 보는 풍경처럼 낯설고, 나 자신조차 붕 떠 있는 듯했다.


집을 나와 근무지가 있는 집까지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지나 있었다. 주인집에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휑하였다. 짐을 내려놓고 번개탄을 구입해서 연탄을 피웠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펴고, 방이 뜨듯해지길 기다리면서 짐을 풀었다.


입었던 옷을 벗으려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어머님이 주신 돈이 툭 떨어졌다. 세어 보니 16,000원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방금 전 헤어진 어머님과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짐 정리를 그만두고 한참을 앉아서 울었다. 그러는 사이 아랫목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저녁밥을 짓기 위해 부엌으로 나왔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방용품이라고는 밥공기와 국그릇과 밥솥이 전부여서, 반찬을 만들려고 해도 그릇이 부족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반찬을 만들기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휑한 방안에는 선들한 바람이 머리맡에서 떠나질 않았고, 윗풍까지 심했다. 주인집과 연결되는 방문과 부엌으로 나가는 문틈에서는 찬바람이 계속 파고 들어왔다. 


아이는 잘 노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시부모님은 저녁은 드셨는지... 자취방에 있어도 마음은 아이가 있는 본가에 가 있었다. 한밤중 깨어 화장실을 가려면 꼭 마주치게 되는 왕방울만 한 눈을 굴리며 나를 쳐다보던 외양간 소 마저도 궁금해졌다.


직장을 잡겠다고 했더니, 굶겨 죽일까 봐 그러느냐며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라던 남편이 말이 생각났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남편 말을 들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생활을 잘할지도 걱정이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는 꼭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쯤 아이는 자겠지.. 엄마를 찾으며 우는 건 아닌지,,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 추운 방 안의 공기는 흐르는 눈물이 떨어지기도 전에 차가워졌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혼자인 밤은 길고 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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