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남매의 둘째로, 어릴 때는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집안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형제가 많았음에도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웬만한 집안일은 동생들이 맡아했고, 건강에 좋고, 흠이 없는 과일들은 나를 먼저 챙겨 주어 우쭐해졌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 나의 신체 상황을 설명하고 특별 부탁하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그래서 학교 생활도 다른 아이들보다 보호를 받았다.
내가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른 것은 결혼 후부터였다. 결혼 후 남편이 군입대를 했고, 시부모님과 생활하며 시부모님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들을 많이 배웠다. 아버님이 아프실 때는 집안에 기둥이 되어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농사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남편 군 제대 후부터 본격적인 한 가정이 되었고, 우리 부부를 중심으로 생활을 이끌어 나가야 했기 때문에 단단해져 갔다.
친정에서는 8남매의 둘째로 집안의 대소사와 사건사고는 부모님께서는 나와 상의를 해고, 본격적인 집안의 장녀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의 결혼과 학교 문제, 부모님 건강문제 등을 챙기면서 친정집에서 나의 위치는 부모 이상으로 확고했다.
부모님께서 나이가 드심에 따라 모든 일은 더욱더 내가 중심이 되었고, 동생들은 잘 따라 주었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가 조언하는 데로 또 잘 해결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는 모든 내 말 한마디면 통했다. 그 탓에 나는 집안의 해결사이면서 형제들을 진두지휘하는 대장이 되어갔다.
모든 일 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자 나는 우월감에 빠졌다. 모든 일에 내가 나서야 해결되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우월감과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이 동료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꼴값 하다가 제대로 당한 것이다.
어릴 때는 주위로부터 보호를 받아왔고, 커서는 집안 대장 노릇만 하던 나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다.
당시 나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핑계를 대기 급급했고, 변명만 하려고 했다. 그리고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은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과, 나이를 헛먹어 사리 분간을 제대로 못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창피하고 한심했다.
근 6개월을 반성과 회한으로 보냈다. 얼굴은 시커매 져가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그래도 또 내가 누군가. 부모님 말씀처럼 배운 대로 해야지.. 하면서 교과서에 있는 말처럼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해지자고, 마음가짐을 가졌다.
그러자 세월이 약이라고 하는 말처럼 차츰차츰 나아지기 시작했고 다시 1년이 흐른 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창피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근 6개월을 아프고 힘들었는데, 습관화된 생각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불쑥불쑥 잘난 체 하려는 마음이 살아난다. 그럼 스스로에게 주의를 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그런다. 마음속에서는 늘 대장 노릇을 하라고 시킨다.
대장 노릇을 그만두려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다. 하지만 오늘도 또 마음속에서는 대장 노릇을 하라고 시킨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안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