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 2

by 속초순보기

무더위가 점점 기세를 누그러 뜨리던 8월 말쯤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산골 집들은 이 골짜기에 한집, 저 골짜기에 한집, 이런 식으로 드문드문 있었다.

담 위로 가끔 보이는 다람쥐와, 마당의 대추나무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청설모를 보는 것보다 사람 구경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나마 우리 집은 건너편에 친척 집이긴 하지만 한집 더 있어서 잘 어울렸다


그러나 모두 한낮에는 농사일을 하러 밭으러 갔기 때문에, 낮에 사람 구경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 다.부모님이랑 신랑이 밭에 나가고 혼자 남게 되면 무서웠다. 불쑥 나쁜 사람이라도 나타날 것도 같았다.

그런 산골에 매일 볼 수 있는 사람은 우체부 아저씨였다.

우체부 아저씨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집 앞을 지나갔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체부 아저씨의 등장으로 시간을 알아챘다.


그날도 난 혼자 마당에 앉아 겉절이를 하려고 배추를 다듬고 있는데,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참을 내갈 시간이 되었구나...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그런데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우리 집에는 거의 우편물이 오지 않기 때문에 마당으로 들어서는 아저씨를 보며 의아해 했다.


우체부 아저씨 손에는 신문과 편지 봉투가 한 움큼 들려 있었다. 아저씨는 한 움큼 들고 있던 우편물 중에서 편지 한 통을 뽑아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편지봉투에는 시원시원한 필기체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체국 소인이 어디에서 찍힌지 확인하였다. 소인은 친정집 동네 우체국인 아닌 읍내 우체국 소인이었다. 장날에 붙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사실 아버지가 왔다 가신 후 마음은 편안해졌다. 나의 소재와 상태를 알고 가셨으니, 내 편에서는 한짐을 덜은 셈이었으니까 ..

마음을 가다듬고 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를 펼치니 편지지 보다 작은 서류가 스르륵 미끄러져 땅바닥에 떨어졌다.호적초본이었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너를 낳았을 때부터 마음이 아팠다. 외탁을 해서 못난이라고 집안사람으로부터 놀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네가 특히 외가 쪽을 닮긴 했지. 그런 말이 있잖니. 발가락이 닮았다..라는,...발가락만이라도 친가를 닮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네가 외가 쪽을 닮은 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 서운함 때문에 너의 이름을 3개월 만에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집안의 천떡꾸러기임에도 너는 다행히 쑥쑥 커주었다. 3살 때부터는 아프더니 7살에는 병원에 입원했지. 한쪽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어 병원에서는 잘라 내라고 했다. 아버지는 죽이던 살리던 내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냥 들쳐 업고 나왔다. 너도 알다시피 집으로 들어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해 여름 장마가 심해서 다리는 떠 내려가고 없었다.


너를 업고 강을 건너면서 너도 죽고 나도 죽자.. 이런 생각도 했고, 밑에 동생들을 생각하면 너만 그냥 강물에 버릴까 생각도 했다. 빠른 물살에 다리가 흔들거리는 것처럼 내 마음도 흔들렸다.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고 겨우 강을 건너 집에 와 안방에 눕혔다. 그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너의 상태를 확인할 때 너무 슬프고 힘이 들었다. 평생 네가 살아가야 할 앞날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 살려고 하는지 너는 몇 달 만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리 상태도 좋아져서 동생들과 뛰어도 놀고, 이웃집에 심부름도 가고.


점점 마음의 짐을 푸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너희 엄마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선생님을 찾아가서 체육시간에 달리기만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라고. 네가 유난히 다리가 약했기 때문이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너의 엄마는 선생님을 으레 찾아가서 똑같은 부탁을 드렸다.


다행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도 잘하고 예쁘게 자라주어서 엄마도 학교 방문이 즐겁기 까지 했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칭찬을 해주시니 엄마도 좋아던 모양이다. 나도 물론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너무 기뻐서 회사 동료들에게 술도 사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고 전문대학을 갔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주는 장학금을 네가 다 받아서 아버지는 직장을 다니는 내내 힘이 났다. 네가 나의 위신을 세워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강물에서 마음을 고쳐먹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떠났다. 남들은 다들 얌전하고 공부 잘하더니 부모님 뒤통수를 쳤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엄마와 나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를 찾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동안 너의 소식을 몰라 전전긍긍했던 시간과 너를 찾아 헤맸던 일은 말해도 너는 모르겠지.

너의 소식을 처음 네 동생으로부터 전해 듣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죽이고 싶었다.

8남매 중 집안에서 제일 자랑스러웠던 네가 남자를 만나 줄행랑을 치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냐.. 내 새끼인데. 엄마와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의논을 했다. 엄마는 요즘 세상은 결혼 안 해도 아기 낳고도 잘 살고, 이혼해도 흠이 안되는 세상이니 아기 낳으면 너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데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000야 !!

사람은 태어나서 자기가 한 일에는 책임을 져야 하고, 특히, 여자는 일부종사를 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겨내고 아범 군대 갔다 올 때까지 잘 지내야 한다.


다행이 네가 사람은 잘 고른 것 같다. 특히 그 부모님을 보니 안심 되더 군아. 잘 배우고 모시고 기다리다 보면 또 웃고 살날이 있다. 그리고 혼인신고를 하려면 호적초본이 필요하니 2통을 동봉한다.

빠른 시일 내에 신고를 하고 아이를 낳으면 늦지 않게 출생신고도 출생일에 맞추어 하거라.


참,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엄마도 화가 많이 났다. 그러니 이해하고 들어라 “ 지 눈 지가 찔렀으니, 고생 좀 실컷 하게 놔둬라, 그리고 3년 동안 집 주변에 나타나지도 마라. 동네 창피하니까.”

원래 너네 엄마가 확실한 성격이잖니... 나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긴 하다.

이만 줄인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난 너를 믿는다.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아버지는 나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을 5장이나 되는 편지지에 적으셨다. 꾹꾹 눌러쓴 볼펜 심 자국이 뒷장에도 튀어나와 있어 마치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잡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보내준 호적초본 2통을 첨부하여 혼인신고를 하고 가출인이 아닌 출가자 신분이 되었다.


나중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편지를 보내 혼인신고라고 하게 되면 영영 아버지의 호적에서 빠지게 되면 섭섭하여, 며칠을 안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다가, 일부러 멀리 있는 우체국까지 걸어가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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