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출생과 마음다짐

남편의 입대전

by 속초순보기

아버지의 눈물 어린 편지를 받고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당장으로 집으로 달려가 백배사죄를 드리고 싶었다. 한편으론 나의 잘못을 나무라지 않고 앞날을 걱정해 주시는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이 기뻤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도 내 자식에게 아버지 같은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래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호적초본을 가지고 혼인신고를 하면 부모님 호적에서 엑스자로 지워질 껄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부모님과 형제들로부터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받지 못할 것 같아 천애의 고아처럼 느껴졌다.


5일마다 읍내에 장날이 섰다. 교통수단이 없던 우리 집은 경운기가 있는 집에 부탁을 하여 장을 보러 나갔다.

읍내 장터로 가는 경운기에는 여름 내내 잘 말린 고추 한 포대를 싣고, 어머님과 신랑이 갔다.

어머님을 고추를 팔아 집안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하기 위해서였고, 신랑은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시골 장날은 대부분 오후 2시면 파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물건을 팔고, 필요 한 물품을 산후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오후 1시정도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머님과 신랑이 읍내로 가자, 아버님은 밭으로 가지 않고 집주변에서 잡일을 하셨다. 나혼자 집에 두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오랜만에 혼자가 된 나는 낮잠을 잤다. 점점 몸이 무거워져서 힘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아버님과 점심을 먹고, 장에 간 어머님과 신랑을 기다렸다. 보통 이 시간이면 집에 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늦어지네.. 하며 마당을 가로질러 마당 끝에 있는 담으로 갔다.

담 위에는 돌단풍이 기세 좋게 뻗어 있었다. 꽃이 핀 녀석들도 있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고 가을인 줄 착각하는 녀석들이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담장 너머에는 호박들이 익어 가고 있었다. 내가 아기를 낳으면 약으로 쓸려고 어머님이 짚을 깔아 정성 들여 키운 호박이 엉덩이를 얌전히 붙이고 앉아 있었다. 담을 따라 코스모스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애잔하게 느껴졌다.


친정집 담이 생각났다. 친정집 담장에도 이맘때쯤이면 노란 호박들이 달려 있었지...잘 익은 호박으로 호박죽도 쑤어 주고, 떡도 만들어 주었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8남매가 노는데 정신이 팔려 밥시간을 놓치면 담너머로 8남매의 이름을 순서대로 부르며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엄마를 둘러싸고 8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엄마의 눈길을 먼저 받으려고 애교를 부리던 모습도 떠올랐다. 엄마에게 잘 때는 꼭 나만 보고 자야 한다며 약속을 걸던 생각도 났다.


아기를 낳으면 젤 먼저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은데....엄마는 잘 계실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담장에 붙어 서서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길모퉁이에서 경운기가 나타났다. 대문 밖을 부리나케 나갔다. 경운기에는 어머님과 신랑이 타고 있었다. 커다란 짐 보따리도 함께.


신랑이 혼인신고를 마쳤다고 보고를 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에 서운해졌다. 그깟 서류 한 장이 무엇이라고 가족관계가 이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일까.... 부모님과 동생들 얼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행복한 듯한 얼굴로 어머님이 여봐란듯이 보따리를 풀어 헤치면서 빨리 와보라고 했다. 풀어 헤친 보따리에서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이 쏟아져 나왔다. 배냇저고리, 기저귀감, 이불 등.. 친정엄마 생각으로 슬픔에 빠져 있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기 용품을 만져 보며 신이 났다. 어머님은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음 장날에 마련해 주신다고 하셨다. 이제 나에게는 건강하게 아기를 출산할 일만 남았다.


출산일이 가까워지자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외탁을 한 나 때문에 엄마가 시집살이를 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혹시나 나의 아기가 나처럼 못생겨서 엄마처럼 구박을 받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한편으로는 신랑이 인물이 있으니, 못생긴 아기는 아닐 거라며 위로의 말을 나에게 건넸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예쁜 딸을 낳았다.한가족의 탄생이 었다. 대문에는 금줄이 띄워졌다.

외지에 나가있던 아이의 고모들이 아기에게 줄 선물을 들고 찾아오고, 가을걷이에 바쁜 아버님,어머님과 신랑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방을 들락거렸다. 모든 것이 행복이었다.


그러면서도 늘 가슴 한구석은 슬픔이 있었다. 예쁜 아기와 지금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데, 연락도 하지 말라던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하러 읍내에 가면서 편지를 부쳤다. 읽어 주리라 믿으면서.


아이에게 온 정신이 다 가 있는 사이에 신랑의 군 입대 날짜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겨울을 지나면 말도 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닐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생각하니 이제 갓 한 달이 된 아이가 가여워졌다.


또 갓난아이와 자기 하나만 믿고 따라온 어린 신부을 부모님에게 맡기고 가야 하는 신랑도 가여워졌다. 신랑 대신 아이와 며느리를 돌봐야 하는 부모님의 마음 어떠실까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부모님이랑 3년 동안 잘 지내며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궂게 먹기로 다짐했다.


군에 가더라도 여기 걱정은 하지 말라, 혹시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라도 괘념치 말고.

그 핑계로 탈영을 하거나 하지도 말고, 여기서의 생활은 내 인생이다.그러니 내게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건 내 인생이지 당신 인생이 아니다 라고 신랑에게 선전포고 하듯이 군 입대를 3일 앞둔 신랑에게 말했다.


그리고 3일 후 입대하는 날이 왔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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