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책 쓰기 위한 책 읽기

by 간서치 N 전기수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9장 26절


이삼 년 지나면 나도 오십이다. 특별히 이룬 성과는 많지 않다. 다만 책은 누구 못지않게 많이 읽었다고 자부한다. 많게는 한 해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은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공부를 하느라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래도 틈틈이 읽으려 노력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가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바로 책을 한 번 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나도 몇 번 출판사 문을 두드려봤다. 한 번은 여성학 관련 원고를 가지고, 다른 한 번은 기독교 관련 원고를 들고 출판사 문을 기웃거려 봤다. 결과는 틀에 짜인 답변을 들은 게 전부였다. 게 중에는 한줄기 희망을 갖게 해 준 답신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책을 출판해 본 적은 없다. 지금 글을 올리고 있는 브런치도 다섯 번의 거절 끝에 통과한 관문이다.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이 있다. 바로 '책 쓰기를 위한 책 읽기의 중요성'이다.


먼저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여성학에 관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여성을 알고 싶다는 바람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월경에서 시작한 여정은 이후 산부인과, 문화인류학, 풍속사, 그리스 철학, 사회학, 여성학,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 두 권 책들이 쌓이니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것을 원고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한번 출판사에 보내보자는 생각에 출간 의뢰를 몇 군데 한 것이다.


다음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신학이었다. 회심 이후 신앙 서적과 교리와 신학, 인문학 관련 도서를 읽고 마찬가지로 원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정리한 원고를 기독교 서적 출판사에 보냈다.

두 번의 시도 모두 결실을 맺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듬지 않은 초고를 보낸 이유도 있었다. 나의 불찰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통해 얻은 한 가지 교훈은 책 쓰기를 위한 책 읽기의 효과와 중요성이다.


앞서 인용한 성경 말씀처럼 우리의 독서가 향방 없고 허공을 치는 것 같지 않으려면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는 독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꼭 독서에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필요하겠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느낀다. 자신은 꽤 많이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고에 담으려고 하면 생각나는 게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향방 없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머릿속에 구슬이 널려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흩어진 구슬을 꿰는 과정이 바로 책을 쓰는 일이다.


[인문 내공]에서 저자 박민영 작가는 두 가지 독서법을 말한다. 하나는 'T자 독서법'으로 한 가지 분야나 한 저자의 책을 중점적으로 읽는 독서법이다. 또 하나는 '네트워크 독서법'으로 내가 여성학에서 시작해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혀갔던 독서법을 말한다. 이 두 가지 독서법은 책 쓰기에 유용하다. 그래서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이 두 가지의 유익한 독서법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 도올 김용옥 교수님은 [태권도 철학의 구성 원리]에서 태권도 경기의 룰이라는 제약이 변화무쌍한 발차기를 가져왔다고 하셨다. 이처럼 책 쓰기를 위한 책 읽기의 마당은 우리의 독서를 제약하는 동시에 자유케 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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