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찾겠다 꾀꼬리

관을 짜라-1-

by 간서치 N 전기수

때는 2011년 10월 2일. 일요일. 나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으로 「나는 가수다」를 보고 있었다. 로커 김경호가 무대에 섰다. 세션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곡조는 아주 느리고 나른했다. 가수의 읊조리듯 노래를 부리기 시작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 숨어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지


연주가 잠시 멈추자 이네 곡조는 빨라졌고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드럼의 울림이 어우러졌다. 김경호 특유의 헤드뱅잉과 샤우팅.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 숨어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지

하나 둘 아이들은 돌아가 버리고

교회당 지붕 위로 저 달이 떠올 때

까맣게 키가 큰 전봇대에 기대앉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나는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내가 왜 벌떡 일어나 앉았는지 이해했는가. 필자를 일어나게 한 원동력은 바로 노래의 가사에 있었다. 가수 김경호는 이 노래를 불러 1위를 차지했다. 이 노래 가사의 압권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그렇다 나나 여러분이나 모두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다. 과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숫자를 세고 숨은 친구를 찾던 아이는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술래다. 술래에도 급이 있다면 궁전을 떠난 싯다르타나 천하를 주유한 공자가 상급이라면, 나나 그대는 하급일 것이다. 어찌 됐든 현대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의 엘도라도를 찾아 헤매는 술래다.


모두는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 있다. 번영의 태양이 기울고, 서서히 디플레이션의 공포, 침체의 시대가 오고 있다. 현대인의 심신은 그 속에서 갈 길을 몰라 헤매며 서성이고 있다.


때로는 바쁜 일상생활에 휩쓸려 자신이 술래인 것조차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살 길을 찾기에 바쁘다. 때로는 일부러 바쁨을 추구하는 건 현대인들이 적막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를 저어한다. 바쁜 가운데 적막이 찾아올 때를 현대인인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러 일을 만들고 모임을 찾아 나서지만, 군중 속의 고독의 고독을 느낀다. 하지만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에서 박이문 교수님은 “혼자됨은 자유로운 실존적 자아발견의 조건이고, 창조적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긍지와 그에 따른 삶에 대한 충만한 경험의 계기”라고 말한다. 고독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가치가 있다.


고독 속에서 답을 찾아야 실존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 삶의 충만한 답을 발견해야 한다. 해답은 단 하나다, 과거와 단절하고 남을 의지하지 말고 천연히 두 발로 딛고 일어나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다. 필자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자신의 관(觀) 찾는 것이다. 그 관은 당신의 길을 안내해 줄 지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가 어릴 적 보았던 영화 「구니스」에서 주인공 아이들은 보물 지도 한 장을 들고 모험을 떠났다. 오늘은 사는 어른 아이도 저마다의 지도를 들고 꾀꼬리를 찾을 시간이다.


철학자 김용규는 『생각의 시대』에서 “근본적으로 다르게 인지하고,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행동하게 하는 새로운 사유방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그 책에서 말한 사유방식이 어떤 새로운 철학이나 사상을 말한 게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생각의 도구들-은유, 원리, 문장, 수(數) 그리고 수사학-이었다. 그 다섯 가지 사고의 도구를 통해 고대 그리스는 문명을 꽃피우고 서구 문명을 낳은 젖줄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아이나 어른이 그 다섯 가지 사고의 도구를 습득하면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나름대로 도구를 세계관에서 찾았다. 세계관에서 말하는 사고의 틀-세계론, 인간론, 인식론-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필자도 그 세 가지 사고의 틀을 다른 데서 찾지 않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찾을 것이다.


필자는 세계관 탐구의 방법을 그리스 사유에서 찾을 것이다. 필자는 과거 클라우스 헬트의, 『지중해 철학』,를 읽고 그리스 철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삶이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에서 박찬국 교수님도 요즘 가장 핫한 철학자 니체의 사유 도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 사상은 “험난한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그것을 긍정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했던 그리스 로마의 강건한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늘 있어 왔지만 우리가 미처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걸 새롭게 활용하는 것이다. 세계관이 담고 있는 세 개의 사고의 틀, 세 개의 판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된다. 인문학의 홍수 속에서 넓고 얕은 지식도 좋고, 인문학 수업도 좋다. 그러나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먼저 기본을 다지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세계관을 통해서 지식과 수업이 필요한 이유와 습득하는 방법을 알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