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을 짜라-2-
know-how, know-why, know-what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밤낮없이 달리다 보면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하는 회의가 들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은 누구도 이 같은 실존적인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먹고살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언뜻 굼뜨고 현실적이지 못한 행동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나름대로 확실한 해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삶을 살게 된다. 더디게 갈지라도 자신의 가치관, 삶의 철학을 갖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초석을 다지는 일이므로 오히려 이것은 가장 효율적은 삶의 방편이 된다.
혹자들은 물을 것이다.
"왜 관(觀)을 짜야합니까?"
"요즘 같이 각박한 시대에 세계관을 가져서 뭐한단 말입니까."
"지금 내 코가 석잔데. 언제 그런 고리타분한 일에 귀한 시간을 들이라는 겁니까."
누구나 가질 의문이다. 이 각박한 세상을 헤쳐 나갈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라는 말은 자칫 공허하게 들린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 나도 시류에 편승해야 할 것 같아서 관심을 가져보지만, 아무리 봐도 자기 계발서가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숨기기 어렵다. 그러면 잘 나가는 자기 계발서 작가는 쭉 자기 계발서만 내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쪽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작가가 인문학 책을 내놓았다. 물론 인문학을 전공한 전문가보다는 심도에 있어서는 떨어지겠지만, 이름이 브랜드이기도 한 그 작가의 전향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유명한 자기 경영 전문가가 고전에 대한 책들을 내놓았다. 바로 경제와 경영, 그리고 자기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담은 여러 권의 책들을 썼던 공병호 박사다. 그랬던 그가 오십 대에 자기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고전에 대한 책들을 내놓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솔직히 필자도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 인문학 열풍에 맞춰 가려는 심산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책에서 그동안 살면서 생긴 인생의 나이테를 그 책 속에 솔직히 담아 놓았다. 어떻게 보면 고전으로의 회기는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살다 보면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할 때가 온다. 그 근본적인 질문이란 바로 '생(生)의 질문'이다. 그 시기가 이르기도 하고 늦기도 하지만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분주함 속에 자신을 숨기고 일부러 회피하기 때문에 질문을 잊고 살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질문이 내 앞에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질문보다 쉬운 게 답이요. 그 질문은 생의 필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바로 생의 질문이 던지는 도전에 대한 응전인 셈이다. 개개인의 질문의 총합은 곧 사회 전체의 질문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은 개개인의 필요와 공감이 낳은 결과물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 등과 같은 인문학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문명과 인간의 흐름을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미래를 위한 비전과 메시지를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제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어느 공동체든 상관없이 자문자답(自問自答) 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이어령 박사님은『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에서 기업 정신의 세 가지 단계를 논한다. 먼저는 북미 유럽 사람들이 기업을 발전시킨 KNOW-HOW라는 방법론적 사고방식이다. 이 노하우에 대한 지식의 발달이 산업사회를 꽃피웠다면 일본 사람들은 이 노하우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이른 바 일본 식 경영은 KNOW-HOW에서 KNOW-WHY로의 전환이다. �어떻게라는 기계적인 방법론에서 작업자에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함으로 자발성을 가져오는 정신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조차도 산업주의의 황혼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현실이 기업에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노하우나 노화이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질문이다. 현대인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은 이제 질문한다. "'어떻게'든 '왜'든 그것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 바로 Know-What을 묻는다.
이어령 박사가 노홧이라는 새로운 기업문화가 제3의 경영으로 불리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인간(human)이다. 과거 산업사회는 기계를 모르고서는 살아가지 못했지만, 정보화 시대는 인간을 모르고서는 생존하기 힘든 때이다.
둘째는 기본(basic)이다. 이런 시대의 슬로건은 "덮어놓고 일하라, 뛰어라"가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하라(back to basics)"이다. 이 구호는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시대의 구호."원천으로 돌아가라(Ad Fontes)"를 생각나게 한다.
셋째는 의미(meaning)이다. 제품의 가격 경쟁시대에서 이제 제품의 가치 경쟁시대로 그 방향이 돌아가고 있다.
넷째는 신화(myth)이다. 달리 말하면 의식이요 이벤트를 말한다. 과거에는 대가족과 마을 공동체 속에서 풍성한 인간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의식과 이벤트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점차 산업사회로 가족과 공동체에서 떠나 살다 보니 그런 경험 속에서 삶의 정체성을 확인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런 현상은 구매할 때도 뭔가 신화성이 있는 제품을 소구 하는 경향을 가져왔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출시하는 날, 제품을 사기 위해 가게 앞에 줄 선 사람들을 통해 잘 나타난다. 마치 커다란 의식을 앞둔 사람들 같다. 스티브 잡스의 위대성은 아마도 획기적인 제품의 출시와 설명회를 통해 이와 같은 현대인들의 욕구를 충족해 주는 데 있다고 여긴다.
이렇듯 기업과 공동체가 노하우와 노화이를 지나 노홧에 직면하듯이, 한 개개인들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동일한 질문에 이른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성장하는 단계에 따라 질문의 깊이도 달라지고 그와 함께 사랑받는 학과도 변한다. 초기 단계에는 정치학과 법학, 다음 단계에서는 경영학이나 사회학, 그다음 단계에는 철학이나 심리학, 가장 최고 단계에서는 고고학이나 인류학이 각광받는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인생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분투하는 삶을 살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갖는다. 대개 ‘어느 순간’은 죽음을 접하는 순간일 때가 가장 많다. 이 부분을 쓰는 시기에 중국 IT 업계의 전설인 리카이푸 전 구글 차이나 사장이 암투병 중임을 고백하며 인생무상에 대한 술회를 웨이보에 남겼다는 기사가 떴다.
필자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리카이푸 같은 전설이나 거두는 아닌 미미한 개인이지만, 삼십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출혈성 위궤양’으로 열흘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밥을 먹지 않아도 위액이 나온다. 공복에 분비한 위산으로 위벽이 헐리고 출혈이 발생해 혈변으로 나온다. 실감 나게 말해 ‘피똥’을 쌌는데도 모르고 지내다가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그때 필자는 느꼈다. 젊다고 죽음이 멀리 있지 않으며 인생은 정말로 자랑할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이후로 ‘다운 쉬프트’를 시도하여 조금 적게 벌더라도 일의 강도를 줄이고 남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며 살기로 했다. 그 덕에 부족하나마 지금의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성공과 부를 강요한다. 이 두 가지를 얻었던 얻지 못했건 부모가 돼서 자녀에게 똑같이 그렇게 살 것을 강요한다.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자부심을 갖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대로 열등감에 자녀에게 강요한다. 그런 사고가 전부인 줄 알고 자란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된다. 때로는 꿈이라는 말로, 좀 더 솔직하게는 욕망이라는 동력으로 끊임없이 질주한다. 심중에 묵직한 구심력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할 시에는 그런 열혈 청춘들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트랙에서 벗어난다. 그런 분기탱천한 청춘들이 원심력을 견디게 하는 구심력은 어디에서 찾을까. 공병호 박사는 �반듯한 가치관 확립에 인생을 투자하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젊은 날에 반듯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지면 삶의 굴곡이나 유혹에도 끄떡없이 자신의 길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홧을 가지라는 말은 나머지 노화이나 노하우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먼저 노홧을 갖고 나머지 노화이와 노하우를 겸비하라는 말이다. ‘급하고 중요한 일’ 못지않게 ‘급하지는 않아도 중요한 일’에 정신을 기울이라는 충고다.
참고도서
공병호의 고전 강독,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최고의 인생을 묻다』, 해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