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베르스의 역설
서양 문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 세계관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주(kosmos)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과 상상력은 신화를 낳기도 하였고, 이성의 눈을 뜬 후부터는 사색을 통해 철학을 낳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은 우주의 광대함 앞에 두려움을 느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인간의 이성은 별들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성은 우주의 실체를 이해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중요성을 따져 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과학사만 보더라도, 인간의 세계관도 지구를 중심의 동심원적 우주인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훗날에 태양을 중심의 동심원적 우주인 코페르니쿠스 체계로 바뀌었습니다. 케플러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이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이론을 포함한 3가지의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하였습니다. 뉴턴은 1687년 3권의 저작인 『프린시피아Principia』를 통해서 운동법칙과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표함으로 고전 역학의 틀을 마련합니다. 그러나 이런 뉴턴의 고전 역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그 빛을 잃게 됩니다.
막스 플랑크는 “과학은 자연의 궁극적 신비를 결코 풀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탐구하다보면 자연의 일부인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톤도 “모든 위대한 기술들은 자연에 관한 예리한 성찰과 고차원적 탐구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막스 플라크의 말은 서두는 맞는 것 같지만, 결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궁극적 신비를 풀기 위해 탐구하다 보면 인간 자신을 탐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탐구할 필요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선재(先在)하는 질료를 통해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Demiourgos)가 우주를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로 하나님이 목적을 두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알려주듯이 오직 성경만이 우리에게 만물의 기원을 보여 주며, 하나님의 창조적인 전능하심을 말씀해 줍니다. 이 둘의 차이는 고대 그리스의 이신론적 창조론은 물질을 수학적 규칙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완강하고도 독자적인 존재고 성경이 말하는 창조론은 물질이 선재(先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을 증거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에 저항할 힘이 없었으며 그분이 내놓은 법칙 곧 수학적 정밀함에 “순종”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를 창조하기로 결정한 하나님의 목적을 담은 의도적 결과물입니다. 우리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고, 자연은 하나님의 지혜를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