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군무원, 공무원 시험을 보고 느낀 점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거예요.

by 간서치 N 전기수


모태 솔로로 살다가 마흔에 결혼했다. 혼자 사는 동안에는 부족하더라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달랐다. 내가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어도 가족이 불편해하는 건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창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의 끝에 지금 다니고 있는 공기업 정규직 채용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입사 요강 중에는 근무 경력이 있는 직원에 한해 우대하는 조건이 있었다. 영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삼 교대 근무를 하는 터라 야간을 마치고 다음 야간까지 남는 시간과 근무를 마친 비번 이틀간 책과 씨름했다. 그렇게 4년 간 공부해서 얻은 결과물은 토익 750점, 한국사 능력시험 1급이 고작이었다. 보기 좋게 일차 서류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4년을 달려왔는데 서류 전형 문턱도 넘지 못하니 허탈감이 찾아왔다. 이제 뭘 해야 하나 막막했었다.


그때 나의 사연을 들은 아내의 친구가 군무원을 권했다. 토익과 한국사 능력시험 성적은 이미 갖고 있어서 국어와 전공과목 두 개만 준비하면 되는 시험이었다. 첫 시험은 필기에서 탈락했다. 그다음 해 시험에는 필기는 붙었지만, 면접에서 탈락했다. 메니에르로 인해 한쪽 귀 난청이라 면접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준비도 부족했었다. 군무원 시험을 보면서 공무원 시험도 함께 준비했었다. 처음에는 물리학과 전공 한 과목만 보는 경력직에 도전했는데, 물리학 점수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다섯 과목을 보더라도 기술직 9급에 도전하기로 했다.


두 번 도전했는데, 두 번 다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한 번은 한 과목 과락이 나왔다. 제일 낮을 거라 예상했던 지역에 지원했는데, 그 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었다. 그 실패한 경험을 공무원 카페에 올리니 영어 공부법을 묻는 수험생들이 있었다. 그 해가 영어 시험이 가장 어려웠었다는 해였는데, 영어만 70점을 맞은 것이다. 내가 공무원 시험에 두 번 도전한 이유도 국어와 영어 점수는 나왔기 때문이었다.


한 때는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너도 정 안 되면 공무원 준비해"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군에 간 1년 사이 생각이 바뀌었다. 대학을 1년 마치고 군에 갔는데, 학교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다니지 말라고 권한다. 공무원 시험 보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경제와 마케팅, 인터넷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아들에게 공무원을 더 이상 권하지 않게 된 이유가 있다. 공무원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힘들게 공무원 시험 준비해서 합격해 임용되었다가 오래 다니지 못하고 나온 사람들이 꽤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경직된 공무원 문화, 민원인 상대의 고충, 의외로 힘든 워라벨. 내가 보기에 공무원이 주는 이득을 누리기 위해서 나 자신을 버려야 할 게 너무나 많다.


그런데도 청년들, 심지어는 나 같은 중년들조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 중에는 한 번 임용되면 자의가 아니고서는 잘라지 않는 안정성이 있다. 모든 물질은 안정을 추구하기에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장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처럼 인구가 줄어들면, 공무원 사회에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에 과연 안정적인 게 있을까.


요즘에는 아들에게 능력과 기회가 허락되고, 의지가 있으면 창업도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자기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회사에 다니는 게 안정적이다. 그러나 반세기만 돌이켜 보더라도 과연 직장인이 안정적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70년대 오일파동, 90년대 IMF, 2000년대 금융위기, 2020년대 코로나. 이런저런 외란 때문에 직장도 이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니다. 사업을 하는 것보다 퇴직 후 충격이 덜할 뿐,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게다가 요즘은 사업을 하더라도 리스크가 줄어들고 있다. 굳이 자기 자본이 없더라도 사업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마케팅을 할 수가 있다. 그런 이유로 아들에게 기회가 되면 소비자에서 판매자, 판매자에서 생산자가 되어 보라고 권한다.


나는 그렇게 사십 대의 절반 이상을 세월을 공기업, 군무원, 공무원 준비하는데 보냈다. 그나마 직장이 있어 다행이지 그것들만 공부하느라 다른 것을 포기했었다면, 실패 후 상실감은 더 컸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가 지금 관심 있어하는 마케팅에 더 주력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왜 많은 선택지 중에 그 시험을 선택했었나에 대한 후회가 남았다.


나는 아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부딪쳐 가면 찾아가는 삶을 권한다. 더 나아가서는 FIRE 족의 삶도 응원한다. 직장인 생활은 자본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갖다 바치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기에 아들에게 창업이나 FIRE 족,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권하고 있다. 아들이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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