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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Jun 08. 2022

재혼에도 천생연분이

아내의 고백을 듣고 나서

전에는 혼자되면 그냥 살아야지 했는데, 이제 혼자는 못 살 것 같아.


울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내는 이십  대 중반에 전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들을 낳고 삼 년을 살다가 이혼했다.

그리고 삼십 대 초반에 싸이월드 내 기독교 클럽에서 나를 만나 재혼했다.


아내가 여기서 말하는 "전'은 두 가지 "전"을 말한다.

하나는 재혼 전이고, 다른 하나는 재혼 후 몇 년 전이다.


재혼 전 전 남편은 아내를 살뜰하게 챙기지 않았다.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났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폭언을 일삼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와 재혼했다고 해서 아내의 결혼 생활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신혼 몇 년 간은 지뢰밭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결혼이라 어려움이 많았었다.

나는 만나지는 않았지만 첫사랑과 연락해 아내를 힘들게 했다.

폭언이나 폭력적인 분위기는 없었지만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아내의 약점을 이용했었다.

나 또한 나를 괴롭히던 직장 선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아내를 방치하기도 했었다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인고 나서, 첫사랑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나서, 우울증의 원인이 죽고 나서, 내가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서 우리 관계는 좋아졌다.


아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은 인고의 세월을 견딘 자가 누리는 기쁨이다.

덕분에 우리는 신혼보다 더 신혼 같은 시기를 보낸다.


아내의 말은, 배우자가 나를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걸 경험해 보니 막상 혼자가 되면 혼자 살 자신이 없다는  아내의 말이었다. 뿌듯하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요즘 아내랑 지내면서 천생연분은 인생의 한 번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첫사랑이 천생연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생연분은 첫사랑이 아니라 아내였다.

아내에게는 첫사랑도 있었고, 첫 남편도 있었다.

그런 아내도 지금은 나와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요즘 들어 결혼과 이혼을 다루는 방송이 늘었다.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하는 부부가 많다.


레오 톨스토이가 쓴 <안나 까레리나>의 첫 구절은 유명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불행하다.


결혼과 이혼을 다루는 방송은 톨스토이의 통찰이 맞았음을 증명한다. 불행한 부부는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아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뀐 데에는 이 책의 영향도 있었다. 나에게 브론스키는 천생연분이 아니었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가정인 이유가 있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가정인 이유가 있다.

지나고 보니, 불행한 가정을 만든 것도 나였고, 행복한 가정을 만든 것도 나였다.


당신의 가정이 불행하다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당신이다. 그러나 지금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한다고 해도 나는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이혼과 재혼에 관대하다.

결혼의 주된 목적은 배우자를 외롭지 않게 하는 동반자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이혼을 금한다고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다. 장려하지도 않지만 금하지도 않는다.


<우이혼>에 출연한 장가현 씨를 비난하는 댓글이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난 개인적으로 그분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분 인생에 천생연분은 한 명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능력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한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았다고 말한 이유다.


문제는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을 만나거나 능력 없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다.


여기서 능력 없는 사람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능력이 있는데 잠시 능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사람과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불행하다고 말한 이유다.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라도 능력이 있고 상대방의 능력이 잠시 휴지기이거나 두 사람 모두 능력이 있는데 휴지기라면 그 관계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그 외라면 양단간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이유에서 장가현 씨도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그분의 선택을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이 능력이라면, 그 능력에는 선택의 능력도 있다.


나는 오늘 밤 당신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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