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민철 차 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두 사람.
인아는 민철의 옆모습을 보고 있다.
민철 (인아를 힐끗 보고) 인아야.
인아 네. 오빠!
민철 이번 여행 어땠어?
인아 당연히 좋았죠. 물어보나 마나 죠.
민철 그래? 좋았단 말이지?
인아 아주 좋았어요.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일 거예요.
민철 그래? 그 정도야?
인아 네.
민철 생각하면 특별한 여행은 아니었는데, 프러포즈 때문에 그런가?
인아 네, 오빠 그런 거 같아요. 내려올 때보다 올라가는 지금이 오빠랑 관계가 좀 더 깊어진 느낌이랄까? 아, 나는 이제 완전히 이 사람의 여자구나 싶은 느낌.
민철 음, 그렇구나.
인아 오빠는요? 오빠는 어떤데요?
민철 난 인아가 좋아하니까 난 좋지. 준비한 보람이 있으니까.
인아 설마 그게 다예요?
민철 아니지, 설마 그게 다겠어? 난 구상하고 준비하는 동안의 느낌이 남달랐지. 뭐랄까 이미 인아를 아내를 품었다고나 할까.
인아 (민철을 보고 웃는다) 오빠는 언제부터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민철 나? 나는 레스토랑에서 인아를 봤을 때. 인아는?
인아 음, 저는 오빠보다 좀 늦어요. 아무래도 오빠와는 입장이 다르니까.
민철 그래?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인아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기대 반 우려 반. 오빠를 좋아했다가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그러다 오빠가 내 과거를 알고도 좋아해 주는 걸 보고. 혹시? 하는 생각은 했었죠.
민철 아, 그랬구나. 기대 반 우려 반이었으면, 내가 인아 맘에 들었던 거네.
인아 왜, 자꾸 확인하는데요? 말했었잖아요. 오빠 사진 보고 맘에 들었었다고.
민철 내가 그 정도로 매력 있었나 보지?
인아 그 정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남자답게 생겼다 생각했을 뿐이지!
민철 그랬어?
인아 오빠 만나기 전에 제 남자가 없었을까 봐요? 직장이나 거래처 사람들은 혹시라도 제가 이혼한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안 만난 거고. 대학 선후배는 이혼한 거 알고 쉽게 보는 것 같아 피했던 거고. 길에서 말 걸어오는 남자들은 못 미더워 만나지 않았을 뿐이죠.
민철 그랬던 거야?
인아 솔직히 사진 보면서 걱정되는 부분이 없진 않았어요. 마초 기질이 있는 남자면 어떡하나. 만나보니까 생각과 달리 스위트 해서 좋긴 했지만.
민철 아, 그랬던 거구나!.
인아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허? 윤수 오빠?~~~ 오빠, 오랜만이에요! 미국 유학 생활은 어때요?~~~ 아, 지금 한국에 있다고요? 왜요?~~~ 아, 어머님이 편찮셔 시 잠시 귀국했구나.~~~ 저요? 잘 지내죠.~~~(민철을 힐끗 보고) 네? (작은 소리로) 아, 네.~~~ 전화 줘서 고마워요.~~~ 네 오빠도 잘 지내세요. 네. (전화를 끊고 민철의 눈치를 본다)
민철 (가라앉은 목소로) 누구야?
인아 (조금 퉁명스럽게) 있어요. 저 대학 다닐 때 절 엄청 좋아해서 따라다녔던 오빠. 저 결혼하고 상심한 마음에 미국 유학 갔었거든요. 근데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잠시 귀국했다고 하네요.
민철 사귀지는 않았고?
인아 그건 왜 묻는데요? 사귀지는 않았어요. 사람은 좋은데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은근히 신경 쓰이나 보죠?
민철 만나자고 해?
인아 (눈치를 보며)~~~ 네.
민철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 그래. (휴게소 간판을 보고 차선을 옮긴다)
인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휴게소로 진입하는 민철의 차.
#291 휴게소 주차장
말없이 정면을 보고 있는 민철.
그런 민철을 살피는 인아.
민철 (앞을 보고) 인아야.
인아 (긴장했다) 네, 오빠.
민철 (인아를 보고) 만날 거야?
인아 오빠 왜 그래요, 무섭게.
민철 아니, 만날 거냐고.
인아 만난다고는 안 했어요.
민철 그래.
인아 오빠 왜 그래요. 딴 사람 같아요. 오빠 화났어요?
민철 어, 조금.
인아 저 때문에요?
민철 인아한테도 화가 났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지.
인아 (울먹울먹) 난 그냥 오빠 놀려주려고 장난친 거지 진심은 아니었다고요.
민철 그래도, 이건 장난이 심했다고 생각해. 누굴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한 번뿐이 아니잖아. 전에 말했잖아. 난 한 번도 인아를 쉽게 본 적이 없다고. 인아 매력적인 여자인 거 알고, 다른 남자한테도 인기 많은 거 알지. 인지상정이니까. 내 눈에도 예뻐 보이면 다른 남자 눈에도 예뻐 보이는 거 당연지사야. 그러니 나한테 너무 인아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인아 알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민철 그럼 됐어.
차가 출발한다.
#292 민철의 차 안
차 안에 냉기가 흐른다.
운전에 집중하는 민철.
민철을 살피는 인아.
인아 (핸드폰을 꺼내 5번을 꾹 누르고 스피커를 누른다)
민철 모 인아냐?
민철 (인아를 힐끗 본다)
인아 네, 어머니 저예요. 잘 지내시죠?
민철 모 엊그제 물어봐놓고 또 묻냐, 나야 잘 지내지. 며칠 새 무슨 일이 났을라고? 오늘은 무슨 일로?
민철 (인아를 본다)
인아 (민철의 시선을 의식하고) 네, 어머니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민철 모 좋은 소식? 무슨 좋은 소식?
인아 오빠랑 저 결혼하기로 했어요.
민철 모 참말로? 정말 잘 됐다. 아이고,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인아 어머니, 직접 찾아뵙고 여쭤야 하는데 전화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시면 기뻐하실 것 같아서.
민철 모 기쁘다마다. 기쁘다마다. 참말로 잘 되다.
인아 어머니는 저 오빠랑 결혼하는 거 반대 안 하시는 거죠?
민철 모 반대는 무슨. 난 찬성이여. 대찬성.
인아 네, 어머니 고맙습니다. 나중에 오빠랑 찾아뵐게요.
민철 모 그랴.
인아 네, 어머니.
민철 모 근데 아가.
인아 네, 어머니.
민철 모 니 목소리가 안 좋다. 무슨 일 있냐?
인아 (울기 시작) 아네요. (민철을 힐끗 본다) 오빠랑 여행 갔다가 올라가는데, 오빠가 화가 나서 저랑 말을 안 해요.
민철 (울기 시작하는 인아를 본다)
민철 모 아가 너 우냐? 내 이 노무 새끼를, 민철이 옆에 있냐?
인아 네.
민철 모 좀 바꿔봐라.
인아 (핸드폰을 민철에게 내민다)
민철 네, 어머니.
민철 모 내가 전에 말했지, 인아 울리지 말라고. 여자 울리는 게 제일 병신 같은 새끼라고. 넌 왜 자꾸 인아를 울리냐. 전에도 울리더구먼. 걔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네가 참아야지. 나이도 열 살이나 많아가지고 어린 여자랑 살 거면 네가 참는 거라. 와 인아를 울리니? 사내자식이 못 나가지고. 그러려면 불알 떼 버리라.
민철 예 어머니,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 하소.
민철 모 한 번만 더 인아 울리면 어미가 가만 안 둔다.
민철 아, 어머니도 참. 알았다니까요.
민철 모 인아한테 잘못했다고 말하고 화해하래잉. 남자가 참는 거라. 남자가 먼저 손 내미는 거라.
민철 알았소, 엄니.
민철 모 그래, 그럼 알아들은 걸로 하고. 더는 말 안 한다.
민철 예, 엄니.
민철 모 인아한테 잘하라. 너 하나 보고 오는 긴데, 네가 잘해야지 않겠나.
민철 무슨 말인지 압니다.
민철 모 그래, 그럼 다시 인아 바꾸라.
인아 (핸드폰은 입에 대고) 예 어머니.
민철 내가 따끔 하게 혼냈으니까, 다시는 안 그릴기라. 만일 민철이가 또 그러면 내가 말하라. 내가 올라가서 혼 줄을 내줄기라.
인아 (민철을 힐끗 본다) 네, 어머니 고맙습니다.
민철 모 네가 울 아들 때문에 맘고생이 많다. 내가 대신 사과하니까, 울 아들 너무 미워하지 말고.
인아 저 오빠 미워 안 해요.
민철 모 그랴,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안 카나. 싸우면 다시 화해하문 된다. 알았지?
인아 네, 잘 알겠습니다.
민철 모 민철도 알아들었을기다. 그럼 나 끊는다.
인아 네, 어머니 건강하시고요. 조만간 찾아뵐게요.
민철 모 그랴. 잘 있으래이.
인아 네. (전화 끊기는 소리)
인아를 여러 번 힐끗 보는 민철.
무심한 척 민철을 의식하는 인아.
민철 울 엄니한테 전화했었어?
인아 네. 일주일에 한 번은 해요.
민철 그래? 언제부터?
인아 오빠랑 어머니 뵙고 온 날부터.
민철 그랬어?
인아 네.
민철 내가 고맙네. 울 엄마 챙겨줘서.
인아 당연한 건데요.
민철 (인아를 본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난 인아 부모님 신경 쓰지 못했는데. 인아가 울 엄니 생각해주니까 고맙고 미안하다.
인아 그런 사람이 저한테 화 나서 말도 안 하고.
민철 아니, 그건 인아가 자꾸 오빠 역린을 건드리니까. 화가 난거지.
인아 어머니 말 못 들었어요? 어린 여자랑 살면은 나이 많은 오빠가 참아야 한다고. 아니면 잘 알아듣게 타이르면 되지. 화난 얼굴로 무섭게 노려보면서 말을 하면 제가 무섭지 않겠냐고요. 제가 전에 말했죠. 폭력적인 언사, 폭력적인 분위기 싫다고.
민철 그러면 내가 할 말은 없는데, 자꾸 인아가 내 사랑을 확인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나빴던 거지.
인아 그건 제가 잘 못 했어요. 다시는 그런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민철 그래, 그러지 마.
인아 오빠도 아무리 그래도 제게 그러지 마요. 아까 오빠의 눈빛, 분위기, 얼마나 무섭고 서럽던지. (훌쩍이기 시작한다)
민철 오빠가 미안. 내가 잘못했어.
인아 네. 저도 다시는 오빠 시험하지 않을게요.
민철 그래, 나도 다시는 인아한테 그런 표정 짓지 않을게. 그런 분위기도 만들지 않고.
인아 약속 (오른손을 내민다)
민철 약속 (오른손을 내밀어 약속의 도장을 찍는다)
인아 (눈물을 닦는다)
민철 그래도 엄니한테 전화한 건 신의 한 순데?
인아 오빠 화를 풀어야 하니까 그랬죠.
민철 그랬나? 하하하. (인아의 왼손을 잡아 깎지를 낀다)
인아 (오른손으로 민철의 손등을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