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아 대학교 정문 앞
버스에서 학생들이 일어선다. 대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경호와 선아도 내렸다.
과대표 다들 수고 많았고 잘 들어가라. 해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각자의 길을 간다.
선아도 여자 친구들에 섞여 걸어가는데 경호가 다가온다.
경호 선아야.
선아와 친구들이 멈춰 서서 경호를 본다.
친구 그럼 우리 먼저 갈게 둘이 얘기해.
선아 어? 그래. 잘 들어가. (경호를 보고) 경호야. 왜?
경호 너, 혹시, 과외하지 않을래?
선아 과외?
경호 어, 내 여동생 과외 선생을 구하고 있거든. 국영수 과목만 봐주면 돼. 아마 울 부모님이 과외비는 넉넉히 주실 거야.
선아 네 여동생 가르치는 일이라면 네가 해도 되잖아.
경호 그게, 가르쳐 봤는데, 싸움만 나고 안 좋더라고. 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잖아.
선아 하긴, 그렇긴 그렇다. 나도 울 언니한테 공부 배울 때 엄청 싸웠지.
경호 그래서 말인데, 네가 가르쳐줬음 해서. 남자 선생 구하면, 공부는 안 하고 딴생각만 할 거니까, 여자 과외 선생이 좋을 것 같아서.
선아 그래, 한 번 생각해 볼게.
경호 그럼 가급적 빨리 연락 줄래. 생각해보고 할 마음이 있으면 내가 주소 보낼 테니까. 찾아서 오면 돼. 못 찾겠으면 내게 연락해. 내가 태우러 갈게.
선아 아니, 뭐 그럴 것까진 없고. 내가 알아서 갈게.
경호 그래, 알았어. 그럼 잘 들어가.
선아 그래, 고마워. 너도 잘 들어가.
경호는 서서 선아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 경호 집 앞
성문 같은 철문과 담으로 둘러 쌓인 집 앞에 선아가 서 있다.
집의 외관에 압도된 표정의 선아. 문 앞에서 인터폰을 누른다.
인터폰 누구세요?
선아 네, 오늘부터 과외하기로 한 서선아라고 합니다.
철문이 열리자 선아가 들어간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돌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잔디밭에 조경이 잘 된 정원이 보인다. 문이 열리고 경호가 맞이한다.
경호 왔어? 어서 와.
선아 미안, 조금 늦었지. 길을 좀 헤매는 바람에 좀 늦었어.
경호 아니 괜찮아. 들어와.
경호를 따라 들어가는 선아.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집안.
그 분위기에 앞도 된 선아.
경호의 여동생이 그녀를 맞는다.
여동생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아 어, 안녕. 만나서 내 이름은 서선아야.
경호 배고프지 않니?
선아 아니 난 괜찮아.
경호 부모님은 오늘 약속이 있으셔서 나가셨어. 올라가자.
경호와 여동생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는 선아. 벽에 그림들이 걸려 있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넓은 방이 있다. 여동생의 방이다.
경호 여기야. 그럼 부탁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선아 어, 알았어. 고마워.
선아와 여동생이 방 안으로 들어가고 경호가 문을 닫는다.
# 여동생의 방
열공 중인 두 사람.
여동생 (기미를 살피다) 저기, 선생님.
선아 어? 왜?
여동생 혹시 저희 오빠랑 사귀세요?
선아 (놀라서 헛웃음) 아니, 왜 물어보는데?
여동생 아니, 우리 오빠가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도 우리 오빠 좋아하세요?
선아 (상기되는 얼굴) 아, 아니, 우린 그냥 친한 친구 사이야. 여사친. 그래. 여사친 남사친.
여동생 오빠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던데. 울 오빠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네요. 제가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오빠 정말 괜찮아요.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선아 (여동생을 흘겨보며)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하래?
여동생 아뇨, 오빠 동생 사이를 떠나서 여자인 제가 봐도 울 오빠지만 괜찮은 남자다.
선아 그래, 그건 나도 알아. 참고할 게.
# 같은 장소
여동생과 계단을 내려오는 선아.
경호와 다가온다.
경호 선아야, 잠시만 이리로.
선아 왜?
경호가 선아를 넓은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
식탁에는 귀한 식재료로 만든 프랑스 요리들이 놓여 있다.
선아 이게 다 뭐야?
경호 어, 둘이 배고플 것 같아서. 아버지가 얼마 전에 유럽 갔다 사 오신 식재료인데, 한 번 만들어봤어.
선아 이걸 다 네가 만들었다고?
경호 어, 한 번 먹어봐.
선아 아버님이 사 오셨다는데, 이걸 먹어도 돼?
여동생 괜찮아요. 드셔도 돼요.
# 경호 집 앞
선아 안 나와도 돼. 들어가.
경호 올라올 때 봐서 알겠지만, 여기서 역까지 멀어. 태워줄게. 조금만 기다려봐.
선아 아냐, 내리막 길이라 괜찮아. 혼자 가면 돼.
경호 아냐, 여기 인적도 드물고, 조금만 기다려 역까지만 태워줄게. (차고로 뛰어가는 경호)
선아 경호를 보고 서 있다.
# 경호의 차 안
선아 (차 안을 둘러보며) 이거 니 차야?
경호 어? 어.
선아 그런데, 왜 학교에는 그냥 와?
경호 어, 아버지가 학교에는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셔서.
선아 아, 그래. 저기 역이 보인다. 여기서 내려줘.
멈추지 않고 달리는 차.
선아 왜 계속 달리는데, 여기서 내려 달라니까.
경호 이왕 나왔는데, 집까지 바래다줄게. 여기서 금방이잖아.
선아 아니, 그러지 말라니까. 너도 은근히 고집 있다...... 아, 그리고 너! 여동생에게 이상한 내 얘기했니?
경호 니 얘기? 어떤 얘기?
선아 네가 나 좋아한다고. 나랑 너랑 사귄다고 얘기했냐고? 왜 쓸데없는 얘기 했는데.
경호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나 쓸데없는 얘기한 적 없는데.
선아 뭐? 그게 왜 쓸데없는 얘기가 아닌데? 사실이 아니잖아. 너랑 나랑 사귀는 거니? 우린 그냥 친구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너 왜 자꾸 오버하는데, 사람 부담 되게? 너 자꾸 이러면 과외 안 해. 아니 못해. 왜 내가 그런 소리 들어가며 네 여동생을 가르쳐야 하는데?
경호 (조금은 퉁명스러운 소리로) 그래, 뭐 너랑 나랑 사귀는 건 아니지만, 그거 하난 사실이니까, 적어도 쓸데없는 말은 아니지.
선아 뭐? 뭐가 사실인데?
경호 (머뭇거리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선아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경호를 쳐다본다)
# 집 앞
차가 대문 앞에 멈춰 선다.
서로 말없이 앞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선아 그래, 나도 알아. 넌 참 좋은 애라는 거. 하지만 넌 좋은 사람인거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야. 난 널 좋게 생각해. 그렇다고 널 좋아하지는 않아. 이성으로써. 이거 하나만 확실해했으면 좋겠어. 네가 자꾸 날 이렇게 부담 주면 널 다시는 전처럼 대하지 못할지도 몰라. 넌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널 남처럼 차갑게 대했으면 좋겠냐고?
경호 아니, 그건 아닌데.
선아 그럼. 우리 친구로만 지내자. 그 이상도 이하도 말고. 그냥 친구로서 편하게. 응? 부탁이야 경호야.
경호 (말없이 선아를 보다 고개를 숙이고) 그래, 알았어.
선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이해해 줘서.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 나 그만 갈게. 태워줘서 고마워.
선아가 차에서 내려서 경호를 보는데, 경호는 핸들만 보고 있다.
선아 조심해서 들어가. (말하고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 인아의 방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선아가 인아 침대에 누워 있다.
선아 (벌떡 일어나) 언니.
인아 응? 왜?
선아 이게 복일까? 저주일까?
인아 뭐가?
선아 아니, 왜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왜 우리서 씨 집안 여자들을 좋아하냐는 거지.
인아 그게 무슨 말인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선아 오늘 경호네 집에 갔다 왔거든. 경호 여동생 가르치러.
인아 너 경호 여동생 과외하니?
선아 어, 오늘부터 시작했어. 그런데, 집에 갔는데 말이야. 이건 집인지 성인지 모르겠더라. 아니, 우리 집도 못 사는 건 아니잖아. 작지도 않고. 아니, 서울에 이 정도의 집이면 잘 사는 편에 속하는 거지. 그런데, 경호 집에 비하면 새발의 피야. 언니 과거 이야기 해서 미안한데, 전 형부의 집도 대단했잖아. 근데, 경호 집은 그보다 더 대단해. 전 형부는 국내 100대 기업에도 끼지 못했다면, 경호 내 집안은 100대, 아니 50대 기업에 포함된다는 소리가 있어. 근데, 그런 경호가 날 좋아한다고 오는 길에 고백하는 거야.
인아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선아 부담된다고 그만하라고 했지.
인아 넌 경호가 싫니?
선아 아니, 좋은 애지. 근데, 부담되잖아. 이건 뭐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할 텐데 너무 차이가 나니까. 난 말이지, 더도 덜도 말고, 딱 새 형부 정도면 딱인데. 더 바랄 것도 없는데, 아니 그보다 약간 못해도 상관없어. 근데, 이건 너무 높아. 높아도 너무 높아~~~~~~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인아 글세, 나는 네가 그냥 조건에 상관없이 겁먹지 말고 한 번 경호와 사귀어 봤으면 좋겠어. 사귄다고 다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네가 만일 경호를 꺼려하는 이유나 언니 때문이라면 난 너한테 미안하고 그래. 그러니 나중 일은 생각지 말고 한 번 만나봐. 그런데, 이것 하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만일 경호랑 사귀다 잘 돼서 결혼까지 가더라도 사회생활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니가 가장 후회하는 게 그거거든. 그러니까 넌 그러지 말라고.
선아 (언니의 말을 곰곰이 듣다 무릎에 얼굴을 숙이며) 아, 모르겠다.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