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영 집
대문이 크게 닫히고 소영이 돌계단으로 뛰어 올라간다.
손에는 성적표가 쥐어 있다.
마당으로 올라와 별채로 향한다.
# 별채
문을 벌컥 연다.
소영 아저씨!
민철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소영 앗, 죄송해요!
놀란 소영 얼른 문을 닫고 나간다.
문 앞에 서 있는 소영.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민철이 나온다.
민철 왜? 무슨 일인데?
소영 (팔을 뻗어 성적표를 민철 얼굴 앞에 내민다) 짜잔!
민철 (성적표를 받아 유심히 본다)
소영 성적이 올랐어요. 10등이 아니라, 15등이나. 전에 약속한 것 잊지 않았죠?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없기예요.
민철 오~~~ 소영이 대단하네.
소영 (으쓱하는 표정)
민철 잊지 않았지. 그래 소영이의 소원은 뭔데?
소영 (성적표를 다시 들고) 나중에 얘기해 줄게요. 지금은 아빠 엄마한테 먼저 보여드려야 해서. (현관문으로 뛰어간다) 엄마!
# 소영의 방
외출 준비를 하는 소영. 평소보다 진한 화장.
침대에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전신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걸쳐 본다.
# 에버랜드
테마파크에 도착한 두 사람.
소영은 민철을 이끌고 공원 이곳저곳을 다닌다.
두 사람 모두 머리띠를 하고 있다.
공원의 놀이기구를 함께 타며 좋아하는 소영.
# 소영의 집 (저녁)
민철과 소영이 집으로 걸어간다.
민철 오늘 재미있었어?
소영 네, 아저씨랑 같이 가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집에 다 왔는데, 한 여자가 서 있다.
민철과 소영이 그 여자를 본다. 다희다.
다희도 그 둘을 본다.
멈춰 선 민철.
소영은 민철을 살핀다.
민철 소영이는 먼저 들어가. 난 이 분과 얘기 좀 해야 해서.
소영 네? 아, 예. (둘 사이의 동태를 살피며 들어간다)
# 카페
다희 교도소에서는 언제 나왔어?
민철 좀 됐어.
다희 나왔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민철 (웃기만)
다희 아까 그 여자는 누구야? 새로 만나는 사람이야?
민철 고등학생이야. 내가 일하는 회사 사장님의 딸.
다희 그래? 성숙해 보이길래.
민철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다희 영수 씨가 알려줬어.
민철 아, 아! 영수가.
다희 나와서 나 안 만날 생각이었어?
민철 교도소 안에서 정신이 들더라. 범죄자와 검사장 딸이 사귀는 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되지.
다희 그래서 나랑 헤어지겠다고? 적어도 헤어질 거면 만나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한두 해 만난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없이 잠적해서 사람 애타게 하지 말고.
민철 만나면 못 헤어질 걸 아니까.
소영 너 말 참 편하게 한다. 우리 사귄 지가 5년이 넘어. 그럼 그 함께 한 세월은 뭐가 되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정리가 되고 잊힐 일이야?
민철 쉽진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필요한 일이니까.
다희 그건 내 의사와는 무관한 너만의 결정이야.
민철 검사장 딸이라서 그런가, 표현이 법적이다.
다희 난 너와 헤어지지 않는다고. 앞으로 계속 찾아올 거야. 그렇게 알아.
민철 찾아오지 마. 거기 내 집 아니야. 우리 사장님 집이야. 난 거기에 얹혀사는 것뿐이고.
다희 왜 그래야 해. 나랑 같이 살면 되는데.
민철 싫어. 내가 왜 너 집에 들어가니. 내 말 이해 못 했어? 나 너랑 끝났다니까.
다희 왜, 너 맘대로 끝내는데? 난 너와 끝낼 맘이 없는데, 왜 너 일방적으로 끝내냐고? 너 아까 그 학생 좋아해? 그 학생 졸업하면 사귀려고?
민철 너 함부로 말하지 마! 그 애는 그냥 동생 같은 애야. 그리고 분명히 말해 두는데, 다시는 나 찾아오지 마. 난 너에게 이제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까. 나 간다.
카페를 나가는 민철.
남아서 울고 있는 다희.
# 소영의 집.
집으로 걸어가는 민철.
집 앞에 소영이 서 있다.
민철 왜 나와 있어?
소영 아저씨 오면 문 열어주려고요.
민철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소영 그런데 그 여자분 누구세요?
민철 아, 전 여자 친구.
소영 (안심하는) 아, 네. 그럼 그 분과 헤어지신 거예요?
민철 어. 들어가자.
소영 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 소영 집 거실
민사장, 부인과 민철이 소파에 앉아 있다.
민사장 집을 나가겠다고.
민철 네.
2층으로 올라가려던 소영, 듣고 놀라 둘의 대화를 엿듣는다.
부인 아니, 왜요?
민철 왠지 모르게 두 분에게 폐 끼치는 것 같고, 또 제가 쓰는 별채는 따로 용도가 있는데, 제가 기거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민사장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민철 두 분 성의는 고맙지만, 제가 죄송해서.
부인 나는 한 군이 있어서 든든한 것도 있었어요. 이 집에 젊은 장정이 있다는 게 든든했거든.
민철 멀리 가지 않을 겁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민사장 편하라고 있는 게 내 집인데, 자네가 불편하다면, 내가 붙잡을 수는 없고. 뭐, 그럼 그렇게 하게나.
민철 고맙습니다. 사장님.
# 별채
민철이 짐 정리를 하고 있다.
노크 소리.
소영 (소리) 아저씨.
민철 어, 들어와.
소영이 들어온다.
소영 정리하는 거 도와드려요?
민철 아니, 괜찮아. 짐이 많지 않아.
소영 꼭, 가셔야 해요?
민철 (짐 정리하며) 어, 그게 옳아.
소영 그럼 어디로 이사 가는지 알려줘야 해요. 꼭이요.
민철 그래 알았어.
소영 가끔 찾아가도 되죠?
민철 어, 물론이지.
# 소영의 집. (밤)
집 근처에 다희가 서 있다.
귀가하는 소영의 눈에 민철을 기다리고 있는 다희가 보인다.
들어가려다 말고 다희에게로 다가간다.
소영 저기, 아저씨 이제, 저희 집에 안 사세요. 그러니 여기 서 계셔도 소용없으세요.
다희 그럼, 학생이 민철이 집 알아요? 혹시 알면 알려줄래요?
소영 아, 아뇨. 저는 몰라요.
다희 (반응을 살피며) 그러지 말고 알려줘요. 보아하니 아는 것 같은데.
소영 저는 모른다니까요.
다희 학생. 초면에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혹시 민철이 좋아해요?
소영 (당황한다) 그, 그건 왜 묻는데요?
다희 아니, 학생이 민철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민철이 여자 친구 있어요.
소영 아저씨는 언니가 전 여자 친구라고 했거든요. 예전에 헤어졌다고.
다희 (표정이 차가워진다) 아, 아! 민철이 그리 말했어요?
소영 네.
다희 그건 그쪽이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어른들끼리 사귀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해요. 그러지 말고 민철이 사는 곳 알면 좀 알려줘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민철이는 학생을 그냥 여동생 같다고 했어요.
소영 그, 그건 전 여자 친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여자들 사이에 오가는 묘한 신경전.
# 소영의 방
가방을 바닥에 던지고 의자에 앉아한 곳을 주시한다.
방금 전 다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다희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민철이는 학생을 그냥 여동생 같다고 했어요.
일어나 화장대로 가서 화장을 고친다.
옷을 갈아입는 소영.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방을 나간다.
# 민철의 집 근처.
소영이 바닥에 앉아 있고, 민철이 마실 것을 가지고 온다.
민철 소영이가 이 밤에 내 집에는 무슨 일이야.
소영 아저씨 여자 친구 왔다 갔어요.
민철 어, 그랬어.
소영 두 분이 헤어진 거 맞으시죠?
민철 어, 그래. 그런데 왜?
소영 아니, 그분은 아직도 자신이 아저씨랑 헤어진 걸 받아들이지 않는 거 같아서.
민철 그래.
소영 그럼 그럴수록 아저씨가 좀 더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철 어?
소영 그런 거 있잖아요.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고로 수족을 잃은 분들이 수술 후에 겪는 환상 같은 게 있대요.
민철 아, 그거!
소영 아무래도 그분이 그런 착각 속에 사시는 것 같은데, 아저씨가 좀 더 확실히 하는 게 그분에게도 좋지 않나 해서요. 뭐,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민철 (미소만)
소영 (민철을 빤히 보다가) 아저씨.
민철 어, 왜?
소영 저 어때요?
민철 어?
소영 (자리에서 일어나서) 저 어떻냐고요?
민철 그게 무슨 말이야? 소영이가 어떻냐니?
소영 아니, 학생 신분이라는 거 내려놓고 절 한 번 봐 보시라고요. 저 성숙하지 않았어요? 제 친구들도 제 몸매 무척 부러워해요. 가슴과 엉덩이 크다고. 얼굴도 예쁘다고. 그러니까, 지금 말고, 제가 졸업하고 대학 들어간 이후를 상상해 보시라는 거예요. 그때 되면 아저씨 여자 친구로 저 정도면 괜찮지 않겠냐는 거죠. 아저씨 생각은 어때요?
민철 (당황스러워한다) 어? 어, 나, 난.
소영 (앉아서 민철 쪽으로 상체를 숙인다) 네, 아저씨 생각은요?
민철 난, 소영이가 그냥 내 친동생 같아. 난 동생이 없거든. 그래서 예쁜 여동생이 새로 생긴 거 같아 좋을 뿐이지 다른 생각은 없어. 소영이도 오빠가 없으니까, 내가 친오빠 같고 좋은 걸 그런 감정으로 착각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은 소영이가 아직 학생이라 남자를 많이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런데, 졸업하고 대학 들어가면 소영이 주위에 나보다 더 멋있고 좋은 남자들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 되면 소영이의 생각도 바뀔 걸.
소영 아니라니까요. 절 철없는 어린 애로 보지 말아요. 저도 오래 시간 생각했거든요. 좋아요! 그럼 우리 이렇게 해요! 제가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저랑 한 번 사귀어요. 그때 돼서 저랑 사귀어보고 결정해요. 그때 돼서 제가 아저씨 여자 친구로 괜찮은지 판단해 달라는 거죠. 그리고 그전까지는 제가 아저씨 말동무가 되어 드릴게요. 뭐, 아직 학생이라 어른들이 원하는 뭐, 그, 그 그런 것들은 불가능하겠지만, 아저씨 외로울 때 데이트는 할 수 있으니까. 예? 제 생각 어때요?
민철 (놀라서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