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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Mar 22. 2020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의 승자가 되었나

간서치와 전기수 이야기 -17-

교회가 욕을 먹는 지금, 그리고 신천지 같은 이단이 판치고 있는 현재.

기독교의 뿌리를 기억하기 위해 교회사를 펼쳐본다.



기독교가 고대에 이룬 스우리 세계가 경험한 단독 사건으로는 가장 큰 문화적 변모였다. 기독교의 승리가 없었다면 고대 후기 역사 전체가 지금의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중세나 종교 개혁, 르네상스, 혹은 근대 개혁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매튜 아놀드 같은 시인도 없었을 것이다. 혹은 다른 어떤 빅토리아 시대 시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시대 문학적 기준이 된 그 어떤 저자도 없었을 것이다. 밀턴도 없고, 셰익스피이도 없고, 초서도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미술가,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도 없었을 것이다. 모차르트나 헨델, 바흐 같은 눈부신 작곡가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단언컨대 다른 밀턴, 다른 미켈란젤로, 다른 모차르트가 그 자리를 대신했을 테지만 이들이 원조보다 더 나았을지 못했을지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서 달랐을 것이다. 10


기독교도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위의 이상들도 대중의 사회생활에, 또 그 정수를 실현할 의도로 만들어진 민간 기관에, 그리고 정부 정책에 파고들었다. 사회가 빈자와 병자, 소외된 자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관념 자체가 뚜렷이 기독교적인 것이 되었다. 기독교가 고대 사회를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가난한 자를 위한 복지를 제도화하거나 아픈 사람을 위한 의료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십억의 사람들이 사회란 소외된 자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궁핍한 사람의 안녕을 걱정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서구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간적' 가치라 여기게 된 관념들이다.12-13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개종자가 되었다. 이 개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콘스탄티누스가 다른 모든 개종자와 똑같이, 당시에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믿음과 지식은 매우 기초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기독교도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이교 신들은 사악하며 아예 신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또한 몰랐을 것이다. 기독교도로 거듭나려면 지켜야 할 윤리 강령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정체성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고도로 세분화한 신학적 견해들이 존재하며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마 기독교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알았던 건 자신이 기독교의 신을 섬기고자 하며 오직 그분만을 섬기고 싶어 한다는 것뿐이었던 듯하다. 그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나섰다. 그리고 승자가 되어 돌아왔다. 48-49


콘스탄티누스와 사도 바울보다 더 상이한 두 사람을 예로 들기는 쉽지 않다. 콘스탄트누스가 로마 제국을 통틀어 가장 권력이 막강하고 영향력 있고 부유한 인물이었다면, 바울은 세상 사람 대다수가 모르는 데다 일생 가난에 허덕이고 사방의 공격에 시달린 순회 설교자였다. 콘스탄티누스가 당대 최강의 군대를 거느리면서 거대 제국을 운영한 반면, 바울은 소박한 천막장이로 주로 자기 작업장에 찾아오는 천출의 날품팔이들을 상대로 설교했다. 콘스탄티누스의 삶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호화찬란함은 묘사가 무색할 정도다. 반면 바울의 생활은 사도라 자칭하는 다른 자들에 스스로를 비유한 본인의 묘사로 깔끔하게 요약된다. (이후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61-62


오히려 살아 있는 예수에 대한 메시지 자체가 곧 살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중간다리였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관념은 하나님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활동 중임을 상정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은 이 세상일에 관여하는 하나님이다. 한낱 인간들에게는 기적으로 보일 방식으로 활동하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이 행하는 일이 곧 기적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믿는 자라면 모두가 볼 수 있게 자신의 권능을 내보인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서 인용한 테살로니카 교인들에게 전한 설교에서 그랬듯, 한 가지 기적을 특히 강조했다.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되살린 기적이다. 103


바울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유대교의 계시적 종말 선언을 심각하게 기독교적 노선으로 비튼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으로 죄의 힘을 물리쳤고, 예수의 부활로 죽음의 힘을 파괴했으며, 예수의 재림으로 악의 힘을 파괴할 것이다. 전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는 것을 아는 건 바울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죽음에서 되살아난 예수를 봤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예수가 곧 돌아올 것도 안다고 했다. 이번에는 조용히 오지 않을 터였다. 107


과장법의 문제점은 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저 기독교사 초기 몇 년, 혹은 기원 후 첫 번째 세기, 혹은 초대 교회의 역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독교 개종자라는 주장 말이다. 심지어 바울이 없었으면 우리가 아는 기독교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110


기독교도(적어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부류의 기독교도)들은 자기네 종교가 추가적인 종교가 아니라 제한적 종교라는 것, 포괄적이 아니라 배타적인 종교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기독교의 전파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건 바로 이 차이였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지론을 받아들였고, 이는 결국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지배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162


유일신주의의 엄격한 정의인 '하나뿐인 진정한 신의 존재만 믿는 것'과 구분해서, 어쨌든 신으로 간주되는 다른 모든 신들을 배제하고 하나의 신만 섬기는 것을 칭하는 용어가 있어야 한다. 내가 이미 사용했고 앞으로도 사용할 용어, '택일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로마 제국에서 점점 커진 택일신주의의 인기가 사실 신은 하나뿐이며 그분만 숭배해야 한다는 기독교 선언의 길을 닦아줬다 본다. 165


그런 고로 기독교는 고대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종교들 중 유일하게 전도 성향을 띤 종교였고, 유대교와 더불어 유일하게 배타적인 종교였다. 이런 전도 성향과 배타성의 조합은 결국 기독교의 승리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기독교가 전도는 하지만 배타적이지는 않았다면, 기독교 신도는 늘었겠지만 이교주의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건재했을 것이다. 이교도들은 그냥 유피테르나 아폴로, 다이아나, 미트라, 이시스... 그밖에 누구든 자신이 선택해서 섬기는 다른 신들과 함께 그리스도 또한 섬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반대로 기독교가 배타적이되 전도는 하지 않았다면,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추종자를 얻지 못한 채 동떨어지고 비주류적인 종교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대거 추종자를 얻었다. 처음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를 거듭하고 몇십 년이 지나면서 신도가 꾸준히 늘어갔다. 그리고 기독교가 성장하면서 이교주의는 필연적으로 축소되었다. 당시 인간에게 알려진 다른 어떤 종교와도 다르게 기독교는 경쟁 상대를 제거해가면서 번성했다. 186-187


기독교를 로마 제국을 통틀어 모든 이교 종교와 구분 지어준 또 다른 특징은, 그전가지는 항상 종교와 별개로 치부되었던 삶의 모든 면을 아울러 지배했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건 황제 숭배교나 민간 컬트교, 조상신 숭배교 등 다른 종교들과 다르게 의식에 참여하는 것만 뜻하지 않았다. 이런 이교 종교들의 경우 숭배 의식 자체가 곧 종교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유에는 세례나 함께하는 식사, 기도, 찬양 등의 의식이 종교의 중요한 면면인 건 분명하지만 어쨌든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기독교는 윤리 강령과 신을 바라보는 고유의 방식, 과거에 신이 인간사에 개입한 일화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고대 로마사 연구자 제임스 라이브스의 말을 옮기면, 기독교는 "전체화적 담론"이었다. 말인즉슨,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관계되는 종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교였다는 말이다. 18


기독교 활동은 사뭇 양상이 달랐다. 그들이 뿌리를 둔 유대교 시나고그와 매우 비슷하게 기독교 교회에서는 주별 정기 모임이 있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 하나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일, 개인의 영성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에 합류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교회는 장소가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한 3세기 중반가지 기독교 회합을 위한 건물은 없었다. 그 전에는, 그리고 아마 이후에도 한동안, 대부분의 교회는 일반 가정집 아니면 묘지 같은 야외 장소에서 모였다. 교회는 장소라기보다 공동체였다. 그것도 아주 긴밀한 공동체, 핵가족만큼 유대가 단단한 공동체였다. 아예 신도들은 가족을 버리고 대신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족처럼 여기라고 종용받곤 했다. 교회의 설립자나 지도자는 '아버지'였고, 동료 신도들은 하나의 대가족에 함께 속한 '형제'와 '자매'였다. 게다가 이들은 의식적으로 상호 애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이기를 추구했다. 교회는 사정이 어려운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교회로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도 제공했다. 201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안다. 콘스탄티누스가 시의 적절하게 개종했다. 기독교는 더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으로 팽창할 태세가 갖춰져 있었다. 실제로 개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황제는 다른 신의 숭배 가능성을 배제하는 종교에 온갖 특전을 베풀었다. 한참 지나서 돌아보니, 그 시점에 이미 로마의 이교 컬트들은 괴멸할 운명이었다. 기독교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배타적 헌신은 기독교가 지나간 자리에 다른 종교를 모조리 파괴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종 후 80년이 채 안 되어, 대규모의 공식적인 이행이 이루어질 터였다. 로마가 압도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 변화였다. 263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도에게 기독교의 우월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기독교가 우월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들이 개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대부분의 개종자를 설득시킨 요소는 기독교도들이 주장한 기적의 능사였던 듯하다. 기독교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감쪽같이 아픈 자를 치유하고 눈을 사로잡는 구마 의식도 행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신은 이교가 내세우는 어떤 신보다 더 강력했고, 이것은 기독교를 옹호하는 쪽의 주장 중에 꽤나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315-316


소수의 신자로 시작한 기독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영향력 있고 유력한 종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자라서 로마 제국 전체를 아우르는 무시못할 종교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앞에 모든 이교도들은 자취를 감췄고, 예수의 기적과 바울의 전도로 시작한 기독교는 서양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요소가 된 것이었다.

비록 한국을 제외한 다른 서구 유럽 국가들의 교회는 힘을 잃었지만, 지금도 수 천년을 이어온 기독교의 사상과 문화는 그들의 사고와 사회의 틀을 구성하는 토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를 빼놓고 인문학을 논할 수 없고, 기독교를 빼고 서구 문명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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