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완화와 한계

[서기장들] 게오르기 말렌코프

by 최경식
KakaoTalk_20260414_145518566.jpg 게오르기 말렌코프. 소련의 과도기에 집권한 그는 정치적 완화 및 경제 정책 전환을 추진했다. 그러나 완화책은 제한적 수준에 불과했고, 경제 정책은 실패하면서 조기에 실각했다.

■정치적 완화와 한계

1953년, 절대 권력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은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그 누구도 단번에 정점에 올라설 수 없었다. 권력은 자연스럽게 '집단지도체제'로 갔다. 이는 단일 조직 안에서 권력을 분산시키는 구조였다. 1인 독재 체제였던 스탈린 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 체제를 구성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정부 수반인 게오르기 말렌코프, 비밀경찰의 수장인 라브렌티 베리야, 당 조직 책임자인 니키타 흐루시초프. 말렌코프는 흐루시초프 및 니콜라이 불가닌 등과 동맹을 맺고 베리야를 제거한 뒤 각료평의회 의장으로서 실권을 장악했다. 얼마 안 가 집단지도체제가 종료됐고, 말렌코프가 국가 원수로 등극하며 소련의 공식적인 지도자가 됐다.


말렌코프 시대의 주요 특징은 '정치적 완화'다. 수많은 죄수들을 석방했으며, 강제수용소 체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했다. 스탈린 시대부터 이어졌던 공포 정치 체제가 다소 누그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제한적 완화일 뿐이었다.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 억압과 통제가 주를 이뤘다. 말렌코프는 경제 정책 전환도 시도했다. 스탈린식 군수·중공업 중심 정책을 축소하고 경공업을 육성했다. 농민들의 세금을 감면하기도 했으며, 소비재 생산 확대를 도모했다. 이에 군부와 당 내부에서 적잖은 반발이 발생했다.


말렌코프 시대에는 국제적 위기도 발생했다. '동독 봉기'였다. 동독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생활 수준 약화 등에 불만을 품고 격렬한 시위를 일으켰다. 이는 전국적인 반정부 봉기로 확대됐다. 이때 말렌코프는 즉시 탱크를 투입해 강경 진압했다. 피상적으로 표방한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위성국에 대한 군사적 억압은 변함없이 지속됐다. 또한 주목할 만한 국제 사건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창설이다. 서방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대응하는 것으로써,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냉전 체제가 고착화됐다. 말렌코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도 더욱 격화됐다. 이전부터 원자폭탄 개발로 인해 핵무기 경쟁에 불이 붙었는데, 이 시기에는 양국이 더욱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 소련이 뒤늦게라도 수소폭탄을 개발함에 따라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이 확보됐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일들이 있었지만, 말렌코프의 시대는 매우 짧았다. 머지않아 권력의 중심이 이동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당 조직을 장악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반면 말렌코프는 경제 정책 실패와 당내 지지 기반 약화 등으로 인해 무너져 갔다. 결국 1955년 말렌코프는 총리직에서 축출됐고, 흐루시초프가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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