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와 며느리 집안을 도륙하다...태종의 '외척 숙청'

[숙청의 역사 5] 세종 시대를 연 정밀한 사전 정지작업 전말

by 최경식
태종 이방원 어진.

#. 아래 내용은 2023년 4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의 서두 부분.


"앞으로 주상(세종대왕)이 다스려가야 할 그 많은 날들을 위해, 차마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이 아비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중략)... 주상, 울음을 그치지 못하겠소. 내 말하지 않았소. 군왕은 눈물을 보여선 아니 된다고. 주상, 잘 들으시오. 주상께서 짊어지고 가야 할 모든 '악업'(惡業)은 이 아비가 맡을 것이오. 주상이 들어야 할 욕은 이 아비가 대신 다 들어줄 것이며, 주상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이 있다면 이 아비가 모두 치워드리리다. 이것은 바로 주상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함이며, 이제부터는 주상의 시대입니다...(후략)...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상만큼은 아셔야 합니다. 이 아비가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를, 우리 주상만큼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드라마 '용의 눈물' 中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에게 반기를 들고 이방석과 이방번 등 이복동생들을 척살한 후 왕위에 올랐다. 조선의 제3대 군왕으로 즉위한 이방원이 급선무로 표방했던 것은 '왕권 강화'였다. 이는 통일신라의 신문왕과 고려의 광종이 적극 시행했던 그것과 맥을 같이하는 '수성'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제 막 탄생한 신생국가 조선에게 해당 정책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이방원은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차 없이 제거했다. 목숨을 걸고 거사를 함께 했던 동지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진행된 숙청 작업의 정점은 바로 '외척 숙청'이다. 이방원은 자신의 처가(여흥 민 씨)와 며느리 집안(청송 심 씨)을 철저하게 도륙했다.


이방원의 외척 숙청은 당대엔 지나치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왕권과 후대를 위해서라면 부인과 며느리의 집안도 '멸문지화'(滅門之禍)에 몰아넣을 수 있는 비정한 군주로 비쳤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이것을 마냥 폄하하긴 어렵다. 역사상 최고의 시대로 평가를 받는 세종 시대는 이방원의 사전 정지(整地)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왕의 외척 세력은 자연스레 막강한 권력을 보유할 수밖에 없데, 이것이 도를 넘어서면 왕권은 물론 국가도 흔들리게 된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다. 특히 조선 후기에 외척 세력의 득세가 국가 망국의 단초를 제공한 점을 감안하면, 이의 심각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외척 발호(跋扈)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세종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만으로도, 이방원의 외척 숙청은 상당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이방원의 숙청은 철저히 '정치적 계산'에 근거해 진행된 측면이 있다. 즉 마구잡이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제거할 필요성이 있는 대상만을 골라 숙청했던 것이다. 이른바 '정밀 숙청'이다. 이에 따라 이방원의 숙청 규모는 다른 군왕들에 비해 크지 않았다. (요즘 이방원을 지칭하는 '킬방원'이란 용어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만 당시에 워낙 거물급에 속하는 인물들을 제거했기 때문에, 그 충격파가 오래가는 것이다. 겉보기엔 참으로 냉혹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생국가 조선의 기틀을 다잡는 데 기여한 태종 이방원의 '외척 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

keyword
최경식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자 프로필
팔로워 3,144
이전 04화고려 왕족들을 몰살하다..조선왕조의 '왕씨 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