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10] 신군부 쿠데타 주도한 하나회 전격숙청 전말
#. 아래 내용은 2023년 4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의 서두 부분.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 조국으로부터 받는 찬사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아 주는 일에 앞장설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육사 49기 졸업·임관식 연설 中
지난 2021년, 미얀마(구 버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얀마의 국민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이자 오랜 기간 민주화 투사로 활동했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해 많은 정부 인사들이 구금됐고, 대신 미얀마 총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 등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시대착오적인 군부 쿠데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가 잇따랐지만, 군부와 확실히 결별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타협을 한 아웅산 수치 정부가 결국 화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 사회에서 '쿠데타'라는 용어는 낯설게 다가온다. 쿠데타는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정권을 빼앗으려고 일으키는 정변을 말한다. 쿠데타의 주체는 대개 군부였다. 현재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에선, 과거처럼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못지않게 민주주의 시스템 및 의식이 정착돼 있어, 군부 쿠데타라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얀마 사태 등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와 비슷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군부는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고 국가의 모든 대소사를 통제했다. 군부 쿠데타라는 것도 국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용어로 존재했다. "어디서 쿵 소리가 나면 '또 누가 쿠데타를 했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혹한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과 같은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과거 한 지도자의 역할이 주효했다. 바로 군부 정치를 일소하고 문민 통제를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 단행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숙청'이 그것이다.
당시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건드린다는 것은 꿈에서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2.12 신군부 쿠데타' 이후 하나회는 군부 내 요직을 독점하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정권도 뒤엎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김영삼 정권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작업을 해야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의 몰락은 물론 힘들게 달성한 민주화도 무너질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여기서 국가 지도자가 의지와 신념을 갖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가 드러난다. 김영삼은 '매우 과감하고 신속하게' 하나회를 숙청해 나갔다. 반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하나회의 머리들을 단칼에 잘라버렸고, 쿠데타 가능성을 감안해 밤샘 근무를 하며 군부대의 동향을 꼼꼼히 살폈다. 일부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고려 시대 무신정변이 왜 일어난 지 아느냐"라며 겁박할 때 그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라고 외치면서 집요하게 숙청을 이어갔다. 지극히 '김영삼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단번에 역사적 과업을 완수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그 당시 김영삼이 하나회로 대변되는 강력한 군부와 타협해 '어색한 동거'를 했다면 어땠을까. 군부의 막강한 권세는 지속됐을 것이고, 미얀마 사태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즉 타협과 동거는 현실의 안온함을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미래를 위한 국가 지도자의 용기 있는 행동은 비로소 우리나라를 정치군인들의 쿠데타 위협에서 해방시켰다. 한국 현대사의 중대 분수령, 군부 쿠데타의 망령을 일거에 척결한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