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의 역사 9] 정통성 끝판왕의 냉혹한 정치력
#. 아래 내용은 2023년 4월에 출간된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의 서두 부분.
"(인현왕후가 출궁 당한 희빈 장 씨를 불러들이자고 주청 하자) 아직 내전이 그 사람(희빈 장 씨)을 보지 못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 간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주상(숙종)께서는 평소에도 희로애락의 감정이 불길처럼 일어나시는데, 간악한 사람이 그것을 옆에서 부채질한다면 그것은 큰 재앙(災殃)이 될 것이다." -숙종실록 中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군왕은 누구였을까. 태종 이방원, 세조 등 몇몇 왕들이 거론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조선의 제19대 왕인 '숙종'을 일 순위로 꼽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불리한 정치 환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즉위 내내 자기 마음대로 정국과 신하들을 주물렀기 때문이다. 당시 조정에선 정치적 입장이나 학맥에 따라 신하들 사이에 '붕당'(朋黨)이라는 정치집단이 크게 형성돼 있는 상태였다. 정치구도상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군왕이어도 자의적으로 왕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숙종 이전 대부분의 군왕들이 그랬다. (선조는 예외적이다.) 그만큼 붕당은 왕보단 신하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숙종은 달랐다. 그는 붕당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의적인 왕권을 행사했으며, 무수한 살육에 기반해 극단적으로, 그리고 빈번하게 정국을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환국'(換局)이다. (참고로 세조는 되레 공신들에게 휘둘린 측면이 있었고, 태종은 숙종만큼 불리한 정치 환경에 놓여있지 않았다.)
숙종의 강력한 왕권 앞에 모든 신하들은 숨을 죽였고, 너나 할 것 없이 충성맹세를 하기 바빴다. 심지어 그는 살아있을 때 신하들에게 '존호'(尊號)를 받기도 했다. 숙종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강력한 '정통성'이 존재했다. 유교 국가 조선에선 군왕들에게도 정통성에 근거한 '급'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실이 낳은 맏아들인 '적장자' 군왕이 첫 손에 꼽혔다. 그런데 숙종은 여기에 더해 '적장자의 적장자'였다. 역대 조선의 왕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정통성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숙종의 개인적인 성품, 과단성과 냉혹함은 정통성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숙종의 왕권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상술했듯 숙종 이전부터 조선 정국은 '붕당'이 심화됐다. 이는 신권이 중심이 된 구도였던 만큼 상대적으로 왕권은 미약해질 수 있는 여지가 다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숙종은 '왕권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고, 실제로 이 같은 명분을 바탕으로 환국을 단행했다고 볼 수 있다. (숙종은 탄탄한 왕권을 통해 내정, 국방 분야 등에서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선조 이후부터 어느 정도 작동했던 붕당의 기본원리, 즉 상호 견제와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상대 당파를 죽여가면서 '일당 전제화' 정치를 고착화시켰다는 점은 숙종 치세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꼽힌다. 강력한 정통성과 냉혹한 정치력을 기반으로 극단적인 정권교체를 감행하며 왕권을 강화한 숙종의 '환국'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