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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식 Oct 25. 2023

'홍범도 장군'의 업적과 오해

[단편] 홍범도 장군은 민족주의자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07년 일제의 무기 회수에 반발해 갑산에서 산포대 조직, 의병을 일으켰다. 1910년 한일 병합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양성했고, 1919년 3.1 운동 이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됐다. 같은 해에 국내로 잠입해 일본군을 습격했고, 만포진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700여 명의 독립군을 지휘해 일본군을 대파,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했다.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제1연대장으로 참전했고,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했다.


홍범도 장군의 업적은 이미 보수정권 때 인정을 받았다. 사후에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 현재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됐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공산당 가입과 관련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자 시비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볼 사안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은 당시 독립군 관련 인물들이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는 게, 독립 투쟁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공산당 입당을 통해 독립투쟁 지원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2년 소련에 입국할 때 작성한 서류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 소련에 왔다"라고 밝혔다. 또한 홍범도 장군은 1927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한 후에도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과 격렬히 싸웠다.


결론적으로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에 동조했다기 보단,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독립 투쟁)로 인해 피상적으로 가입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43년에 서거했기 때문에, 당연히 북한 정권 수립과도 관련이 없다.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로 보는 타당하다.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을 살펴볼 때에는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단순히 공산당 가입 이력을 근거로 홍범도 장군을 매도하고 모든 업적을 뭉개버리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위험한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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