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민들레책밭’
‘2022년 동네서점 트렌드 통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동네 책방은 815곳이다. 전년(745곳) 대비 9.4% 증가했다.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왜 동네책방은 늘어났는지 아이러니하다. 분명 책방이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책방은 ‘책’을 사러 가는 것 외에 책모임, 글쓰기, 영화, 커피와 차를 마시거나 작가와의 북토크 등 다양한 콘셉트를 즐기는 공간의 역할로 바꿔가기 때문에 책방이라는 문화는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 동네책방이야 말로 일상의 여백을 삶으로 스며드는 일이기에 중요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창원 가로수길에는 5평의 작은 책방이 있다. 이 작은 책방에는 특별한 것이 없지만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품고 가는 특별한 곳이 됐다. 아직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책방지기와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이토록 책방이라는 공간을 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민들레 홀씨처럼 소리 없이 퍼져 나는 것처럼 일어나는 모든 삶의 결을 마음밭으로 심어 가는 마음이 담긴 곳이다.
비가 온 뒤 창원의 가로수 길은 청명한 하늘과 연둣빛 신록은 이영하의 ‘신록예찬’을 노래하듯 녹음이 짙어갔다. 카페 거리에서 홀로 자리 잡고 있는 ‘민들레책밭’의 풍경이 돋보인다. 책방입구에는 좋은 글귀나 민들레 책밭에 소개하고 싶은 책을 엽서에 적는 노란 우편함이 있다. 계단에 오르면 봄꽃과 주제별로 선별된 책들이 복도를 가득 채워주 듯 책방주인장의 배려가 엮어있는 듯하다. 민들레책밭은 책을 통해 ‘나를 만나는 여행’을 추구하고 내 영혼의 성장과 나를 사랑하기 위한 여정을 함께하는 ‘에세이, 문학으로 나를 만나다’, ‘철학, 예술로 나를 만나다’, ‘과학, 영성으로 나를 만나다’ 등의 철학이 담겼다.
지난 3월 7일에 오픈한 책방은 빈티지한 소품과 LP판,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는 5평의 공간에서 오는 포근함이 인상 깊었다. 하나같이 육현희 책방지기와 닮아 있었다. 책의 큐레이션은 각별한 정성이 가득 찼다. 또 얼마나 알차게 풍기는지 한 권 한 권 소개할 때마다 빠질 수밖에 없었다. 4월 테마 ‘기록하는 즐거움’에는 관련 책과 필기도구가 매대에 담겼다. 판형, 외형이 독특하고 개성이 강하고 귀한 독립출판물로 채웠다.
철학, 자기 계발서. 고전은 늘 뽑고 싶어 하는 심정으로 책방지기가 자랑하는 책이다. 그림책은 생각의 틀을 깨는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구성하여 읽어야 할 책이 많았다. 특히 데미안과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인 사이다의 ‘태어나는 법’은 페이지마다 훅하고 들어오는 문장들 때문에 거듭해서 여러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현희 책방지기는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해 사서의 길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책방지가가 더 매력을 느껴 북큐레이션을 공부했었다. 그림책 강의를 하면서 차근차근 그 갈증의 폭을 좁혔고 손수 구입한 소품과 최소한의 인테리어로 현재의 책방을 열었다.
“민들레의 씨앗이 소리 없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잔잔한 위로가 되고 따뜻한 책들이 많이 퍼져 나가는 바람과 모두가 스스로의 마음밭을 잘 가꾸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의 이름을 지었습니다.”책방지기의 말이다.
책모임은 민들레 철학, 민들레 에세이, 마음편지 한 달 읽기 등 세 가지를 하고 있었다. ‘민들레 철학’은 일상의 허무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하여 어려운 철학책을 함께 읽고 삶을 접근해 보았다.
‘민들레 에세이’ 모임은 사업가, 박사과정, 일반인 등의 5명이 모여 함께 에세이 책을 읽고 내 생활을 점검하고 위로받으며 각자의 에세이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회원은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솔직한 표현들이 눈물을 쏟거나 내 안의 감정을 해소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마음편지 한 달 읽기’ 모임은 구본형, 홍승완의 ‘마음편지’에 있는 열 개의 질문들이 담겨 있는 마음편지를 답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인생에 대한 머릿속에 품고 있던 막연한 생각들을 가슴으로 옮겨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어요.”
현희 책방지기의 추천책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다. “짧은 한 편의 시에도 응축해 놓은 세계관을 새롭게 보는 시각이 넓혀졌죠. 작가의 가이드 역할이 시를 보는 눈을 키웠고 시가 좋아지게 됐습니다. 시에 대한 막연히 어려움 있는 분이나 굵직한 시의 내면세계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책을 읽고 추천책을 생각하고 책방 문을 열고 계단을 쓸며 테이블을 닦고 빠진 책을 배치하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책모임의 책을 읽는 과정에 그녀의 하루일과가 평범하고 단순해 보여도 책방에 오는 손님에 대한 배려요, 마음가짐이다. 그 공간이 지닌 무한한 책 속의 가치를 일깨우는 일이다.
*이 글은 경남일보 4.24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