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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동네책방의 변신

책 읽는 덕후의 공간 ‘텍스트힙’

by 강상도

도서관과 책방, 독립서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실핏줄과 같은 삶을 충만 하는 곳이다. 한적한 시골의 골목골목 사이에 독특한 책방에 눈길이 가는 것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빛이 나는 가슴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건물 속에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삶의 결이 풍긴다. 우리는 이곳을 동네 책방이라 불렀다. 오랜 세월 견뎌온 책과 사람,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이다. AI 시대에 더욱 정교하게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정보의 바다에서 동네 책방은 ‘뜻밖의 발견’이라는 아날로그적 존재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설렘과 그 공간이 주는 따뜻한 시선과 책방지기의 독특한 감각은 발길을 옮기는 힘이 된다. 책방이 아직도 우리에게 발걸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인간미 넘치는 가치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 일상의 바로 곁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말에 책방이 그 역할을 충실히 이런저런 삶을 충돌해 왔었다. 일본의 츠타야 서점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담긴 삶을 제안’하는 책방이다. 책 속에 담겨있는 삶을 꺼내 개성 있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책방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스며들게 한다. 그런 살 만나는 책방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책방은 로컬을 살리고 골목을 살리는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하기에 존재적 가치가 높다.

어느 골목길에서 책방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공간의 가치는 얼마나 클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퇴근하고 창원의 가로수길 아래 책방 ‘텍스트힙’을 찾았다. 처음 마주한 것은 김남조의 시 ‘시간에게’이다. “시간에게 겸손하기, 시간 안에서 용서받기” 등 내 안에 건네는 문장이 살짝 긴장하게 한다.


불 밝힌 책방으로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여행을 한다는 것.JPG


이전의 식물카페를 개조해 작년 8월에 문을 연 45평의 책방에는 조문주 주인장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없이 정성스러움이 스민다. 찾아간 날에도 방송사를 퇴직한 남편과 함께 책을 분류하고 벽에 모임의 안내장을 손보며 젊은이 못지않은 감각과 정성을 불어넣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대 간의 경계를 허문 주인장의 정체성이 담긴 북큐레이션이다. 16가지 성격유형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MBTI 추천 책’과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생일책’, 단단한 삶의 이야기부터 봄의 계절을 담은 이야기까지 매월 선별하는 북큐레이션은 심혈을 더했다. 5월은 ‘폭싹 속았수다’가 주제다. 손글씨로 적어놓은 책방지기의 추천 책은 대형서점이 흉내 내지 못하는 동네 책방만의 흥미가 숨겨져 있음이 솔솔 하다. “독자에 맞는 맞춤형 ‘취향’의 책을 추천하는 일은 책을 사랑하고 꾸준히 읽고 고민한다는 것이죠.”

공간 공간마다 특별함으로 꾸몄다. 독서 모임과 영화를 감상하는 클래스룸,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의 멍 때리는 공간도 있다. 필사하는 공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코너 등 주인장의 세세함이 엿보인다.

조문주 주인장의 MBTI는 공감 능력형의 INFJ다. 책방과 잘 어울리는 성향이다. 일본 문학과 문화를 30년 동안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삶의 가치가 달라졌다고 했다. “코로나 때 비대면 줌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후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을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어요. 친구와의 대화는 물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죠.”


텍스트힙.JPG


“그 후 4학년 발표 수업 시간에 놀라움을 발견했어요. 자기만의 관심 분야에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늘어놓았는데요 모두가 공감하고 좋은 교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답니다.” 그녀는 이 시간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상호 교류의 기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면에 가득 찼다. 익숙하게 책을 읽어온 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책방이었다. 퇴직 후 남편과 함께 크루즈 세계여행을 위해 모은 자금으로 진짜 여행인 ‘사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책방은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을 연결하고 소통을 공유하고 멘토 역할을 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필사의 공간.JPG


책방 이름도 독특하여 상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텍스트힙은 활자 ‘텍스트’와 ‘멋지다’라는 뜻의 ‘힙’을 합한 신조어지만 유익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책 읽는 사람의 집 즉, 책을 읽는 행위가 멋지다는 덕후들의 책방으로 책으로 나누고 공유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의미를 담았다.

10대~50대까지 여러 세대가 어울린 모임과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취향러모임’, ‘일본탐구단’, ‘원서 읽기’, ‘에세이 작가 되기’,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필사하는 ‘텍스트힙 필사 북클럽’ 등 각 모임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존중하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결석 시 벌금을 받아 산불피해 기부금 등에 사용된다.


책방 주인장이 요즘 젊은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알을 깨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오늘날 젊은이에게 자신을 발견하는 힘을 전해 주는 책이에요.”라고 추천 이유를 덧붙였다.

동네 책방 예찬론자 한미화 작가는 결국 “동네 책방이 나아갈 방향은 하나다. 사적 비즈니스지만 공공적 역할 또한 수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동네 책방을 생존할 가능케 할 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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