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의 투쟁이다.

by 강상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고?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점점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글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력 같은 힘을 느꼈다.

컴퓨터 앞에서 단순히 글을 쓰다가 지웠다가 반복한 것들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될 때의 짜릿한 기분은 언제나 좋았다. 글들은 나를 표현했었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뜩 노트에 일기장처럼 써왔던 것들이 몇 번의 이사를 하고 나서 그 노트를 잃어버렸다.

젊은 날 새로운 경험이나 아팠던 연애담, 후회했던, 고민했던, 괴로웠던, 꿈을 꾸었던 것들이 한 자 한 자 노트에 적어왔던 것들이 한순간 사라졌으니 속상했다.

그나마 위안에 되었던 것은 글을 쓰고 나서 희미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기억들을 엮어 글 속에 꾸역꾸역 넣었다. 나의 상흔들이 나타났다가 글들이 잠시 아픔의 위로를 품어 주었다. 나는 그렇게 글을 쓰고 또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가끔 나의 글을 보면 나를 들여다보니 삶이 조금은 느릿 가고 있음을 위로받는 것 같은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쯤인가? 겨울방학이 다 끝날 무렵에 카드 한 장이 우편함에 놓여 있었다. 궁금하지만 왠지 설레는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그런 편지나 카드를 받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카드는 예쁘게 포장되었고 내용인즉 졸업을 축하한다는 것과 앞으로 꿈을 위해 응원한다 것의 글들이 또렷하게 나를 안겼다. 또 어느 날에 남녀 동창생의 카드가 연일 왔었다.

그 일로 나는 답장을 해야만 했었다. 친구를 위해 편지를 써보지 않아 힘들었다. 밤새워 글을 써왔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다시 새로운 카드에 옮겨 우체통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지금에 왔어야 나의 글이 부드럽게 표현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시기가 중요했기에 지금도 생각나고 아른거린다.

또 하나는 연애시절이다. 장거리 연애라 만날 때마다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었다.

그때는 어떤 표현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던 시기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연애편지를 썼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나의 생각에 글쓰기는 말보다 진하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어 담기 힘들지만 글쓰기는 여러 번 수정해서 새롭게 모을 수 있다.

나는 말도 글로 쓰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싶었다. 살아왔던 삶을 담아 한 편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오늘도 고뇌하며 생각들을 끄집어낸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꾸준히 쓰다 보면 글이 매끄럽고 약간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에 만족한다.

나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은 나의 글을 보고 힘이 되고 에너지를 얻어가는 위안’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되새겨 본다.

연애하던 때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는 나에게는 한 줄기 밑바탕이 되었다. 어릴 적 뛰놀던 순수했던 마음이 글쓰기의 단골 소재처럼 등장했었고 나의 글 속에 녹았다.



글쓰기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내어주었다. 첫 책을 출간하게 해 주었고 머물고 있던 일상을 새로운 물음표로 가득 품도록 했다. 짜릿했었다.

글을 쓰고 나면 명확하게 글로 묘사하는 순간들이 나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엮었더니 글쓰기는 몸을 깨우는 일이기도 했다.

토마스 린치의 <살갗 아래>에서 피부의 뜻을 ‘삶이 피부에 남긴 상흔 그 속의 아름다움을 보라’로 정의 내렸다.

글쓰기도 그런 의미에서 끝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고통 속에 아름다운 글이 완성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글쓰기는 나를 들여보는 것이다.

남이 평가도 하지만 나의 세계에 무수한 것들을 펼쳐 놓고 싶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이 울리지 않아도 나의 삶을 공감하는 것도 또 다른 삶의 시작에 긍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꾸준히 매일 쓰고자 노력한다면 글은 삶의 일부분이 되고 또 다른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글쓰기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온전히 다듬고 다듬어내야 하는 끝없는 인고의 시간이다. 책상에 앉아 엉덩이에 힘을 준다. 눈은 화면에 손은 자판기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생각주머니의 글들을 모은다. 오랜 시간 끝에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그 짜릿함에 몸이 풀린다.



데미안의 소설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다. 내면의 두려움, 편견, 나약함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일깨워 주는 것이 글쓰기의 힘이다.

우리는 글의 밑바탕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글쓰기의 짜임새가 부족하며 삶의 경험도 나 자신의 삶을 대면하기에 중요한 생각의 도구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다면 나의 생각들을 한 문장씩 써 내려가면 어떨까? “첫 문장이 나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일상의 가장 나다운 언어이며 표현하는 것임에 언제나 그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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