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도 전업주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

프리랜서 맘의 애매한 나날

by 세실리아

프리랜서가 되고 어린이집 부모 상담 기간이 있었다. 담임교사와 근황을 나누다가 재택근무를 한다고 말하니 정말 좋아하며 “축하드려요. 어머니. 아이는 엄마가 집에서 키우는 게 좋죠”라며 연신 축하한다고 했다. 정말 좋은 소식이라 생각됐는지 지나가는 작년 담임교사에게도 “선생님, OO이 어머님 재택근무하신대요. 정말 잘됐죠”라고 소식을 전한다. 작년 담임교사가 와서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어머 잘됐어요. 집에 계시면 아이가 안정적이고 얼마나 좋아요”


엄마가 집에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잘됐다고 축하하는 두 교사의 마음과 달리 나는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그동안 교사들로부터 아이가 규칙을 잘 지킨다, 배려심이 많고 양보를 잘한다는 평을 들으며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구나 싶었는데, 혹시 내 빈자리를 선생님들이 자주 느껴졌던 걸까? 일하는 곳의 위치가 회사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역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축하를 들을 정도의 일인가 잠시 어리둥절했다. ‘집에 계시니 안정적이고 얼마나 좋아요’라는 말의 안정적이라는 단어에 확 꽂힌다. 그럼 혹시 그동안은 불안정했다는 말인가?


일하는 엄마라는 피해의식은 나를 늘 조마조마하게 했다. 같은 반 친구 생일잔치를 깜빡 해 선물을 챙기지 못하는 있을법한 일에도, 담임교사가 ‘일하는 엄마라 애를 잘 못 챙기나 보다’라고 생각할까 봐 더 마음 쓰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은 과대망상이랬다. 이 과대망상은 내가 만들었을까? 아니면 엄마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가 만들었을까?


남편은 육아에 적극적인 편이다. 어린이집도 자주 드나드는 편이고, 어린이집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도 잘 놀아준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남편에게 ‘혹시 유아교육과 나오신 건 아니죠?’라는 농담을 건네며 칭찬 세례를 한다. 하지만 어떤 엄마가 어린이집에 자주 드나들고 같은 반 친구들과 놀아준다고 생각해봤을 때 교사들이 이처럼 칭찬 세례를 하진 않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준비물을 미처 못 챙겼을 때 담임교사는 남편 얼굴보다 내 얼굴을 먼저 떠올릴 확률이 크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오며 앞으로는 준비물이나 공지사항을 빼먹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집에 있으니 아이를 훨씬 잘 챙길 거라는 기대가 있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전업주부들도 나와 비슷한 피해의식이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준비물을 빠뜨렸을 때 ‘회사 다닌다고 애 준비물도 뒷전이네’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했던 나처럼, 전업주부는 ‘집에 있으면서도 애 준비물을 못 챙기네’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할 거 같다. 이 말을 들으면 남편은 ‘준비물 하루쯤 못 가져갈 수도 있지 그걸로 왜 또 과대망상이냐’고 하겠지만.



엄마, 어린이집 안 갈래요

프리랜서가 된 후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적응기가 필요했다. 출근을 안 하고 집에서 일하니 아이가 연신 “엄마 좋아”라며 자주 껴안고 아침이면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왜 가기 싫으냐고 물으면 “어린이집엔 엄마가 없으니까요”란다. 내가 회사 다닐 땐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내가 집에 있는 걸 아니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종종 안 가겠다고 떼쓰는 거 같다. 하지만 난 일하는 곳이 회사가 아닐 뿐 집에서 늦은 오후까지 일해야 하니 안 보낼 수 없다.


“아빠가 회사 가고, OO이가 어린이집 가는 것처럼 엄마도 매일 일을 해야 해. 네가 어린이집 가지 않으면 엄마가 일을 할 수가 없어”라고 말을 하면 이내 포기하고 어린이집 가방을 멘다. 아주 가끔 스케줄이 빈 날엔 못 이기는 척 그럼 엄마랑 놀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이런 날 예정에 없던 급한 일이 생기더라. ‘아이랑 도서관에 가고, 책도 읽고, 산책도 해야지’라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뽀로로 틀어둔 채 난 일하면서 ‘아침에 어린이집 보낼걸’ 후회하는 날도 꽤나 있었다.



프리랜서의 숙명, 노트북과 한 몸

시간의 유연성을 얻은 대신 어깨의 자유를 잃었다. 마트나 은행 등 어딜 가든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고, 키즈카페 갈 때조차 챙겨간다. 갑자기 급한 요청이 올까 봐 불안해하느니,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노트북을 가지고 나가는 게 마음 편하다. 애와 함께 다니면 물티슈, 간식, 여벌 옷 등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노트북까지 들고 다니면 어깨가 빠질 거 같다.


어느 날은 어깨가 너무 아파 ‘이렇게 한 순간 노트북에서 자유롭지 않느니 회사 다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원은 출근과 퇴근이라는 기준이 있으니 일과 삶이 어느 정도 구분되는 반면, 나는 집이 일터고 일터가 집이니 일상으로의 전환이 잘 안 되는 거 같았다. 그러다 막상 아이에게 미열이 있다며 조기 하원 여부를 묻는 어린이집 교사의 전화를 받으니 이내 지금이 낫다 싶다. 내가 회사에 있었더라면 즉각 하원이 불가하니까. 부랴부랴 애를 데리고 병원으로 간다. 물론 병원에 가는 내 어깨엔 또 노트북이 매달려있다.


나도 직장인처럼 매일 주말을 기다린다. 주말은 노트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어깨는 물론 마음마저 가볍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 가방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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