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유치원 신입 정원이 0명이라고요?

집 앞 유치원을 두고, 옆 동네 유치원을 알아보는 현실

by 세실리아

어느 날 아이가 내게 “엄마 집에서 일해서 고마워요” 했다. 얘가 뭘 알고 하는 소린가 싶으면서도, 괜히 코끝이 찡하다. 재택 프리랜서로 일 한지 이제 꽉 채워 2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집에서 일한다 해도 온종일 애랑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 일을 해야 하니 애가 심하게 아플 때를 제외하곤 매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고, 하원 후에도 업무가 남아 있으면 영상을 틀어두고 방치 아닌 방치를 하기도 한다. 업무 관련 전화가 걸려오면 ‘쉿’하라고 신신당부하고 방에 들어가 중요한 업무 전화를 받는데, 애가 소리 지르며 방문을 두드리며 울어서 난감했던 경험도 있다.


이제 내년이면 어린이집 대신 유치원을 다녀야 할 시기라 집 주변 유치원을 알아봤다. 어린이집 다니느라 매일 2시간 운전했던 게 너무 힘들어(왕복 1시간이라 등하원 합하면 2시간) 무조건 ‘가까운 거리’를 우선순위로 뒀는데, 집 바로 앞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이 마음속 1순위였다. 도보 5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 추첨을 앞두고 어디를 지망할지 결정하기 위해 남편이랑 유치원 투어를 했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대학교 병설 유치원, 종교재단 유치원 이렇게 세 군데를 가보기로 했다.


올해 신입 원아 티오는 없습니다

마음속 1순위였던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갔다. 그런데 이번 해 티오가 아예 없다고 한다. 아예 없다고요? 명도요?” 물었더니, 우선 모집 기간에 이미 마감됐다고 한다. 다자녀 가정,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등을 대상으로 우선 모집하고 남는 자리를 일반 모집하게 되어있는데, 우선 모집에 모두 마감된 거였다. 집에서 5분이면 도보 가능한 거리에, 깔끔한 시설까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허탈했다.


오후 2시에 하원 해야 합니다

이어서 대학 부속 유치원에 갔다. 운동장도 크고, 실내 공간이 커서 아이들이 놀기엔 좋아 보였다. 마음속 1순위였던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만큼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정도면 양호한 같아 하원은 시냐고 물었더니 2시라고 한다. “? 시요?” 놀라서 물었더니 맞댄다. 9시에 등원해서 2시에 끝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점심시간 포함 5시간뿐이다.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하원 맞이하러 가는 길 등을 고려하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4시간이 될까 말까다.

맞벌이 가정을 위한 방과 후 수업이 있긴 한데, 이미 마감돼서 언제 티오가 나올지 모른단다. 그럼 일단 보내다가 방과 후 수업 티오가 날 때까지 기다려 봐야 하나? 근데 방과 후 수업 티오가 계속 안 나면 어떡하지? 고민하다 보니 여긴 리스크가 너무 크다. 1년 내내 2시에 하원 하면 너무 곤란할 거 같다.


우리 유치원은 차량 운행 안 합니다

마지막으로 종교 재단 유치원에 갔다. 아담한 크기에,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거리가 애매해 차량 운행 시간을 물었더니, 우리 유치원은 차량 운행을 해요. 직접 등원시키셔야 합니다라고 한다.

편도로 우리 집과의 거리는 2.1km, 어른 걸음 기준 도보 22분이다. 혼자라면 운동 삼아 걸어 다니겠지만 어린아이가 맨날 걸어 다닐만한 거리는 아니다. 게다가 비 오거나 폭염이거나 한파면 도저히 애 데리고 걸어 다닐 수 없다.

차로는 5분 거리긴 한데, 이 날도 주차할 곳이 없어 주변을 세 바퀴쯤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주차하고 헐레벌떡 상담 시간에 맞춰 왔었다. 아주 좁은 골목에 위치해서 정차할 곳도 전혀 없다.


마음에 들었던 건 맞벌이 가정은 늦은 시간까지 돌봄 가능하다고 점이다. 정상 하원은 2시고, 맞벌이 가정은 4시에 하원 한다고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4시 하원을 못 시킬 경우 저녁 7시 30분까지 가능하지만 가급적 4시에 하원 할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나처럼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맞벌이 부부가 어떻게 4시에 애를 데리고 가지?’ 생각하고 있는데 유치원 앞에 한 음악학원 버스가 도착한다. 애들 서너 명이 차량 선생님 인솔 하에 노란 버스를 타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권고하는 시간인 4시 이후엔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학원 몇 군데를 도는 거구나. (불가피한 상황에 19시까지 돌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하원한 유치원에 자기 아이만 덩그러니 놓는 부모도 몇 없을 것이고 그 또한 교사의 눈치가 보일 것이다)



오늘 가본 세 군데 중 한 군데는 아예 접수조차 불가, 한 군데는 2시 하원, 한 군데는 차량 운행을 안 한다. 다음 주면 ‘처음학교’라는 사이트를 통해 지망 유치원 접수를 시작하니 황급히 몇 군데 전화를 더 돌렸다. 이 날 방문 리스트에 넣지 않은 유치원이 있었는데 거기라도 가봐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전화했다. 학부모 오픈 기간이 있었는데 이미 지났다며, 홈페이지에서 사진으로 둘러보라 한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가 하루 종일 생활할 곳인데 사진만 보고 결정할 순 없으니 거긴 패스. 몇 군데 더 전화를 돌려 한 군데 상담 예약을 잡았고 다음 주에 방문해보기로 했다.


경제지 <매일경제>엔 ‘다섯 살부터 지인 찬스’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나왔다. 재학생 부모 추천서로 사립유치원에 ‘프리패스 입학’ 하기도 하고, 추천 과정에 돈거래 및 답례품 문화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었다. ‘진짜 웃기는 현실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약 나라면? 마음에 쏙 드는 집 앞 도보 5분 거리 유치원에 지인 찬스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도보 5분 거리에 시설까지 마음에 쏙 드는 유치원을 두고도, 저 멀리 마음에 안 드는 유치원까지 차 태워 보낼 생각에 막막함이 몰려온다. 지인 찬스조차 없는 평범한 프리랜서 맘은 오늘도 열심히 지역 맘 카페에서 유치원 정보를 검색해보다가 잠들 거 같다.